먼저 잘못을 고백해야겠다. 앞서 카프리데이(Car Free Day, 자동차 없는 날) 기원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1997년 프랑스 서부 해안도시 라로쉐(La Rochelle)에서 시작됐다고 썼다. 만약 (사)자전거21 오수보 사무총장이 쓴 <오수보의 자전거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계속 오보를 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1982년 자전거와 인연을 맺은 뒤 1992년부터 자전거정책을 바로 세우는 일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오수보 총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자전거 전문가다. 1997년 국내 최초 자전거지도인 '서울특별시자전거교통지도'를 비롯해 제주도, 창원시, 오산시, 수도권과 5대강 자전거지도를 만들었다. 전국을 자전거로 누비며 익힌 그의 삶은 자전거판 '김정호'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서울특별시를 비롯 수많은 지자체의 자전거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그가 이번에 펴낸 책은 일반인이 대상이다. 자전거 마니아들과 자전거를 즐기는 보통사람들, 자전거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물론 자전거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필독서다.
오 총장은 "자전거를 알고 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이다. 자전거란 제대로 알고 타면 녹색교통을 이끄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모르고 타면 단순한 레저도구나 놀잇감에 머무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껏 마음만 앞설 뿐, '자전거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전거 공무원들이 자전거정책을 이 꼴로 만들었다고 개탄해왔다. 이 책은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 쓰였다.
오 총장은 아주 쉬운 질문들을 던지면서 '자전거란 무엇인지'에 대해 해답을 내놓는다.
"외발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이용해도 될까? 유아용·아동용 자전거가 차도를 달려도 괜찮을까? 세발자전거와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의 이용자는 누구인가? 제동장치가 부착되지 않은 자전거가 자동차와 함께 달릴 수 있을까?"글쓴이가 던진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자전거 정책은 이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오로지 '자전거는 차다'라고 정의할 뿐이다. 그러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자전거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교통경찰도 헷갈릴 뿐이다. 자전거선진국이라 알려진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서 자전거는 길이 190cm 폭은 60cm를 넘으면 안된다. 유아용 좌석을 빼고 탑승자석 이외 승차 장치를 붙이면 안된다. 제동장치를 작동하기 쉬운 곳에 붙여야 하고, 보행자를 위협할 수 있는 예리한 돌출부가 없어야 한다. 평탄한 포장 노면에서 제동 직전 속도가 시속 10km일 때 제동장치를 쓴 곳에서 3m 이내에서 안전하게 멈춰야 한다. 전조등 색깔은 주황색이나 적색으로 해야 한다. 아주 자세하다.
우리나라에 이런 법규가 없다는 것은 이런 조항을 만들 정도로 머리 아프게 고민한 이가 정부 책임자 가운데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전거 자동차 겸용도로'라는 해괴한 말이 나타났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니 자전거도로가 없을 때 자전거는 차도를 달려야 한다. 차도 자체가 자전거 자동차 겸용도로인 셈이다. 그런데 '자전거 자동차 겸용도로'는 도대체 어떤 도로를 뜻하는 것일까. 오수보 총장은 책에서 계속 한숨을 내쉰다.
'차 없는 날'이란 용어에 대해선 아주 분개한다. 이 용어는 녹색교통으로서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기 위한 날을 만들면서 생겨났다. 그런데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다'. 그런데 승용차 대신 자전거를 타자는 날 이름이 '차 없는 날'이니 졸지에 자전거는 차가 아닌 것이 된다. 글쓴이는 '자동차 없는 날' 또는 '승용차 없는 날'이 돼야 한다면서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라고 안타까워한다.
글쓴이는 '카프리데이'에 대해 대부분 언론이 1997년 프랑스 서부 해안도시 라로쉐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나 보다. 온갖 자료를 뒤져 찾아낸 자료를 꼼꼼하게 꺼내놓는다.
1958년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를 넓히기 위해 워싱턴 광장 공원을 없애려는 계획에 공원 주변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했다. 당시 시위 지도자 중 한 명인 제인 제이콥(Jane Jacobs)이 1961년 <위대한 미국 도시들의 삶과 죽음(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라는 책을 펴냈다. 도시 내 자동차 이용에 대해 문제 제기한 이 책이 카프리데이 시초라는 게 글쓴이 주장이다.
1968년 네덜란드에서는 본네프(Woonerf)를 설치하며, 자동차 대신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니기 좋은 길을 만들었다. 1981년 동독, 1996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1996년 영국 바스에서 카프리데이가 열렸으니 '카프리데이' 시초가 1997년 프랑스 라로쉐라는 것은 터무니 없는 잘못인 셈이다.
1박2일 동안 자전거 이야기를 해라고 해도 거뜬히 할 정도로 글쓴이는 자전거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그런 그에게 요즘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하는 자전거정책은 어떻게 비쳐질까. 대놓고 언급하진 않았으나 체코 자전거길을 다녀온 뒤 쓴 감상문에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1010번 노선으로 들어서는 순간 앞쪽에서 탄성이 터졌다. 앞을 보니 끝이 없을 것 같은 숲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숲속을 느릿한 속도로 십여 분을 달리고 나니 1011번 노선과 교차하는 사거리이다. 숲속에서 만나는 자전거 노선의 교차로이다." - p272"아름드리나무로 가득 찬 숲이 부러웠으며, 이런 숲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전거길을 만들어 서유럽 자전거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한 시간에 8백여km를 날아가는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의 멀고 먼 대한민국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오게 만든 체코 정부의 자전거 정책 수준이 우리보다 몇 수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74글쓴이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믿는다. 1994년부터 자전거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운영하는 이유다. 이 책도 자전거교육 가운데 하나다.
일본 독일 미국의 자전거도로 설계속도, 우리나라 도로교통 관련 최초 근대식 제도, 우리나라 각 지자체들의 자전거 교통수단분담률, 자전거도시 코펜하겐이 만든 자전거 통계 등 저자가 알차게 찾아낸 자료들이 책엔 가득하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자전거 통계와 정보들에 둘러싸여 있었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