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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119주년 세계노동절 범국민대회 조직위원회' 주최로 열린 '민생살리기, 민주주의 살리기, MB정권 심판 범국민대회'를 마친뒤 종로3가 지하철역에 모인 시민과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하자 경찰들이 지하철 구내까지 들어와서 최루액을 분사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강제진압을 하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119주년 세계노동절 범국민대회 조직위원회' 주최로 열린 '민생살리기, 민주주의 살리기, MB정권 심판 범국민대회'를 마친뒤 종로3가 지하철역에 모인 시민과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하자 경찰들이 지하철 구내까지 들어와서 최루액을 분사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강제진압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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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에 머리를 세 번 조아린 게 그리 억울했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 촛불이 타오르면 정부의 '일방통행'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일까. 

정부는 엄포대로 촛불1주년 불길을 한 방에 제압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밀어붙이기에 돌입힌 모양새다.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시민 총 221명을 연행한 경찰은, 4일 오전 서울 미금동 경찰청 앞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연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6명을 또다시 연행했다. 기자회견에서 "폭력경찰 규탄한다" 등의 정치 구호를 외쳤기 때문이란다.

이어 이날 오후에는 용산철거민대책회의가 용산참사 현장에 설치한 천막을 기습 철거했다. 불길을 잡은 김에 모든 불씨를 싹 제거하겠다는, 한 마디로 지난 1년 동안 줄기차게 진행된 촛불을 향한 '복수혈전'에 마침표를 찍을 기세다.

이제 이명박 정부에게 촛불은 금기를 뛰어넘어 '경기'(驚氣)의 대상이 됐다. 촛불만 보면 판단력이 급격히 흐려지고, 유연성은 현저히 떨어지는 듯하다. 촛불을 횃불로 보고, 그것이 들불이 될까봐 노심초사다.

정부 촛불 '복수혈전'에 마침표 찍나

정부는 애초부터 '촛불 1주년' 불길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대검찰청 공안부와 경찰 등은 일찌감치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었고, 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행정안전부 장관은 2일 오후 대국민 담화문도 발표했다.

정부는 이 담화문을 통해 "전 국민이 합심해 경제를 살려야할 때에 폭력시위로 국력을 낭비할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며 "우리는 지난해 무분별한 시위로 많은 국력을 낭비한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고 자제를 요청했다.

촛불 1주년 행사가 열리기도 전에 모든 행사는 "폭력시위"로 규정됐고, 작년 촛불집회는 "무분별한 시위로 많은 국력을 낭비한 값비싼" 사례로 지목됐다. 결국 시민-경찰의 충돌과 대규모 연행 사태는 정부가 '엄포'를 놓을 때부터 예견된 셈이다.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예정돼있는 서울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차량으로 에워싸 원천봉쇄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가 진행중이다.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예정돼있는 서울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차량으로 에워싸 원천봉쇄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가 진행중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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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일 청계광장과 서울광장 그리고 서울역 등에 경찰 161개 중대 1만 3000여 병력을 배치해 모든 집회시위를 봉쇄했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시민들은 항의했고, 경찰은 무차별 연행으로 화답했다. 작년의 '촛불 여대생 군홧발 구타 사건'은 '방패 구타'로 재현됐고 221명이 연행됐다. 취재중이던 <로이터통신> 기자는 연행되어 가다 풀려나기도 했다.

한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2일 밤 9시 열릴 예정이던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행사는 시위대의 무대 점거로 무산됐다.

현재 서울시는 "직접 피해액은 3억7500만 원이지만 간접비용과 축제 이미지 실추까지 고려하면 피해액은 훨씬 더 크다"며 "정확한 피해 규모를 산정해 사법기관이 시위 주체의 신원을 밝히는 대로 민형사상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찰 역시 "주도세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촛불집회 불관용의 원칙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그리고 작년 촛불정국에서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에 화들짝 놀란 <조선><중앙><동아> 역시 사설과 기사로 "촛불이 서울의 주말을 망쳤다"고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정부와 보수언론이 지난 1년 동안 진행해 온 촛불에 대한 '반격'을 고려하면 사실 이번 대응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집계에 따르면 작년 촛불 정국 이후 촛불관련 구속자는 100여 명, 불구속 1000여 명, 체포된 사람은 총 2500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사법부의 촛불재판 개입은 사실로 드러났고, 검찰의 MBC <PD수첩>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 행사 무산과 도심 '불법시위'의 모든 책임은 시위 참가자에게 있는 것일까. 정녕 정부의 주장대로 "한 푼의 관광수입도 아쉬운 이때에, 외국 관광객의 발길을 막은 건" 신종 인플루엔자가 아닌 촛불 시민들일까?

정부 발표대로라면 2일 오후 4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범국민 추모대회와 촛불 1주년 행동의 날'에는 고작 시민 600여 명(주최 측 추산 3000명)이 참석했을 뿐이다. 역시 서울광장에서 예고된 촛불 1주년 행사 주최 쪽도 "많아야 1000여 명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를 신종플루보다 촛불을 혐오하고, 촛불은 마음을 안 열고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작년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을 게 뻔했는데도 경찰이 '오버'해 충돌이 커졌다"고 경찰 쪽의 책임을 지적했다.

또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도 "민주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이 국정이 반영되는 건 매우 중요한 절차"라며 "집회시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건 매우 부득이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경찰의 집회 불허를 비판했다.

그리고 외국 관광객 감소는 이미 언론에 보도됐듯이 신종 플루와 세계적인 경제 위기 때문이지 촛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100여개 인권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노동절 및 촛불 1주년 경찰 과잉진압 규탄' 기자회견을 갖던 중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하자 한 참가자가 경찰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100여개 인권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노동절 및 촛불 1주년 경찰 과잉진압 규탄' 기자회견을 갖던 중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하자 한 참가자가 경찰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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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난 재보선에서 5대0으로 전패했다. 민심이 반영된 결과였고, 시민들은 "네가 히딩크냐 5대0 기록하게"라며 비아냥댔다. 하지만 이번 촛불 1주년 대응에서 나타났듯이 정부의 변화를 기대하는 건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정부는 촛불을 신종 플루보다 혐오하고, 국민들은 그런 정부에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출범 이후 대부분 기간 동안 40%를 밑돌고 있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는 아직도 '명박산성'이 존재한다. 이쯤에서 다시 작년 촛불에 고개를 숙인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되새겨 본다.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2008년 5월 22일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습니다."- 2008년 6월 3일.
"청와대 뒷산에서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며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 2008년 6월 22일.

촛불에 대한 '복수혈전'이 계속될수록 이 대통령의 사과는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는 인상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소통의 단절은 신종 플루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촛불을 끌 수 있는 건, 힘이 아니라 소통일 수밖에 없다.


#촛불1주년#이명박#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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