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을 또 다시 찾게 된 연유
약 2년 전 뜨거운 여름 가야산 해인사를 거쳐 황매산 영암사를 찾은 적이 있다. 이때 우리의 답사 목적은 문화유산 탐사였다. 쌍사자석등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삼층석탑과 귀부 그리고 영암사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했다. 당시 절터 축대의 웅장함에 놀랐고, 법당 석축 기단에 새겨진 사자상의 우수한 조각기법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또 영암사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의 웅장한 모습에 반했던 기억도 난다. 신령스러우면서도 압도적인 모산재의 암봉 때문에 영암사가 폐사지가 된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바위의 기운이 너무 세면 그 아래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기운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모산재의 바위 기운은 절과 그곳에 사는 사람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웅장한 모산재와 그 산 너머에 있는 황매산(1,108m)을 꼭 올라보리라 마음먹은 바 있다. 그런데 내가 회원으로 있는 산악회에서 지난 4월 공지를 했는데 5월 첫 주 일요일에 황매산 철쭉을 보러 특별산행을 간다는 것이다. 나는 흔쾌히 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황매산의 자연과 영암사의 문화유산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걸고.
마침 5월 첫째 주에 철쭉제행사가 열려서 우리는 혼잡을 피해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3시간 반쯤 걸려 우리는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떡갈재를 넘어 합천군 대병면으로 이어지는 1026번 지방도가 포장중이어서 우리는 산행 들머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있어 그 분을 통해 너백이 쉼터 방향으로 길을 잡을 수 있었다.
아래쪽에는 다 피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덜 피었네
마을길을 따라 5분쯤 올랐을까?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고 등산로 입구임을 알리는 리본이 걸려 있다. 그리고 표지판에는 황매산 정상까지의 거리와 걸리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우리는 황매산 정상을 넘어 황매평전을 지난 다음 모산재로 해서 영암사로 하산하는 6시간 정도의 종주를 계획하고 있다. 이곳에서 황매산 정상까지는 5㎞ 정도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산으로 들어서자 노랑붓꽃과 홀아비꽃대와 얼레지가 보인다. 그리고 길 옆 곳곳에는 어제 비가 와서인지 고사리가 쑥쑥 올라오고 있다. 지금 올라오는 고사리라면 올 고사리라고 볼 수 있다. 늦 고사리는 아직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길옆에는 또 철쭉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잎에는 빗방울이 촉촉이 맺혀 있다.
동북쪽으로 피어오르는 구름 사이로 가야산이 보인다. 가야산과 황매산은 합천군을 대표하는 산이다. 가야산이 해인사 때문에 유명하다면 황매산은 철쭉 때문에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다. 황매산은 1983년 군립공원이 되었다. 1988년 황강을 막아 합천댐을 만들고 그로 인해 합천호가 생기면서 산과 물이 어우러진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너백이 쉼터(960m)에 오르니 떡갈재에서 황매산 정상에 이르는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는 이제야 봄이 오고 있다. 나무의 순도 연한 연두색이고 철쭉도 봉오리를 아직 활짝 피우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이나 열흘은 지나야 만개할 것 같다. 또 억새는 지난 겨울의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누런 잎 사이로 새순이 돋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저 아래 동북쪽으로 합천호가 구름 속에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황매봉 정상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산철쭉
975m봉에 이르니 차황면 남쪽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황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갈라진다. 여기서 우리는 황매산 정상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곳에서부터 황매산 정상까지가 철쭉 군락지이다. 그런데 이곳의 철쭉은 조금 덜 피었다. 황매산의 북쪽 능선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해발 1000m지대로 봄이 조금은 덜 온 듯하다.
황매산의 철쭉은 떡갈재로부터 황매산 정상까지 북릉 외에도 황매평전, 베틀봉(946.3m)에서 모산재로 가는 남릉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들을 철쭉 군락지라고 부르는데 황매산 철쭉은 바래봉 철쭉, 소백산 철쭉과 함께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제 철쭉꽃은 황매산을 지나 5월 중하순 소백산에서 붉은 봉오리를 터뜨릴 것이다.
황매산 정상에 이르기 전에 능선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줄기는 북동쪽 방향 삼봉, 중봉, 하봉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가야 할 정상은 남쪽 방향으로 100m 지점에 있다. 이곳에서는 지척지간이다. 그런데 아침에 비가 와서인지 안개가 정상을 가렸다 열었다 한다. 자신의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황매산 신령의 조화로 느껴진다.
황매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바위를 타고 넘어야 한다. 두 바위가 갈라져 있어 마치 쌍봉낙타의 등같이 보인다. 그런데 왼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이다. 정상에 오르니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거기다 정상표지석 앞에서는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경쟁이다. 정상에 서서 지나온 길 돌이켜보고 앞으로 갈 길을 조망해 본다. 앞으로 내려갈 황매평전 방향으로 나무계단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붉은색의 철쭉 융단이 길 좌우에 넓게 펼쳐져 있다.
흐드러지게 피기엔 조금 이른 황매평전의 철쭉
황매평전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봉우리를 세 개쯤 넘어야 한다. 이곳에는 철쭉은 별로 없고 떡갈나무가 지배종으로 되어 있다. 해발이 높아서인지 이제야 나무에 잎이 돋아나고 있다. 이 능선 왼쪽은 합천군 가회면이고 오른쪽은 산청군 차황면이다. 중간에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끝에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황매평전을 다시 한 번 조망할 수 있다.
다시 경사가 있는 나무계단을 한참 내려오면 철쭉군락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곳의 철쭉은 전체의 3/4 정도가 개화된 상태다. 해발이 상대적으로 낮고 또 황매산의 남쪽 사면이기 때문이다. 또 잠시 안개도 걷혀 황매평전이 오래간만에 아주 깨끗하게 드러난다.
정상에서 베틀봉으로 이어지는 황매산 주능선을 중심으로 왼쪽에 황매산 철쭉제단이 있다면 오른쪽에는 황매산 제단이 있다. 원래 황매산에 제를 올리는 곳이 행정구역상 산청군의 황매산 제단이었다. 그런데 황매산 철쭉제를 개최하면서 합천군에서 현재의 위치에 화강석으로 더 크게 황매산 철쭉제단을 만든 것 같다.
황매산 철쭉제단에서는 제13회 황매산 철쭉제례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11시부터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아직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서인지 사물놀이패가 음악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꽹과리, 징, 장고, 북을 맡은 12명 정도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북의 종류가 두 가지로, 한 가지는 개량형처럼 보인다.
철쭉제단 옆에서는 땅을 갈아 철쭉을 심고 있다. 그것은 황매평전의 상당 부분을 철쭉이 뒤덮고 있지만 아직도 흙이 드러난 공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십 년은 가꿔야 진정한 철쭉군락지가 될 것 같다. 사실 황매산 철쭉제 행사도 지역경제 활성화란 실리 외에 철쭉군락지 조성 재원 확보라는 경제적인 측면이 상당히 고려된 듯하다. 황매평전은 지금 철쭉과 사람 그리고 음악이 한데 어울려 5월의 첫 주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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