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가 "농부"인 매장에서는 무엇을 팔까? 설마 농부를 파는 인신매매 조직이거나, 농업 노동력을 공급하는 인력시장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무엇일까? 직접 가게 앞에 가면 간판 가운데의 상호 좌우로 쓰인 '지역 우수 농산물, 친환경 먹거리'를 보게 되니 대뜸 매장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지만 "농부" 두 글자만으로는 정확하게 그 의미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모두들 상호를 "아주 잘 지었다"고 이구동성 찬탄을 연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부"는 서로 의기투합하는 사람들끼리 손과 마음을 잡고 차린 지역공동체 사업이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차려 운영하고, 거기서 창출되는 이익금은 지역 공동체를 가꾸는 데 재투자하는 우리 농산물 매장이 대구 최초로 북구 칠곡 읍내에 차려졌다. 5월 7일 오후 5시, '친환경․지역 우수 농산물 생산자 직거래 매장'임을 자랑하는 "농부"가 문을 열고 도시 소비자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농부"의 설립 취지는 인사 말씀을 하는 분들의 발언 속에 생생히 녹아 있다.
"다른 곳에서 배추를 사서 김장을 담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여기 농부들이 생산한 배추를 가지고 김장을 담다 보면 배추가 살아서 슬슬 밭으로 달아나요. 그만큼 싱싱하다니까요." (소리풍물패 줌 석은희 대표)
"우리는 참농부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를 소비자들이 마음놓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지금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신뢰와 존중으로 서로 도와가며 일하다 보면 마침내 이곳이 우리 농산물을 전국에 공급하는 보급처로 성장할 것입니다." (한국양봉협회 군위지회 신상균 지회장)
우리영농 조합법인, 의성농민회, 영월농민회, 한울친환경영농조합법인, 칠곡 동명 한우물 작목반, 군위 부계 외뚜들 농장, 부계 참농부식품, 소보 금수강산 농원 등에서 일하는 30여 생산자와, 지역에서 공동체 운동을 하는 주민 50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출자를 하고, 몇 달 동안 함께 머리를 맞대어 운영 논의를 한 끝에 드디어 문을 연 "농부"의 개업식은 조촐하면서도 따스한 정이 오가는 자리였다.
생산자와 소비자 수십 명이 출자금을 갹출하여 설립한 대구 최초의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매장인 덕분인지, 개업 첫날 찾아온 손님들 중에는 칠곡 주민도 많았지만 대구 전역에서 멀다 않고 방문한 이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대구 MBC 텔레비전의 카메라와 기자가 찾아와 취재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개업식 행사는 오후 5시에 열렸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합하여 세운 친환경․지역 농산물 직거래 매장답게 개업식의 인사 말씀도 소비자와 생산자를 대표하여 두 명이 연이어 하였다. 강북 우리마을 생활공동체 반상호 대표는 소비자를 대표하여, 신지식인이자 한국양봉협회 군위지회 신상균 지회장은 생산자를 대표하여 간략하면서도 뜻깊은 인사를 하였다. 두 분 이외에도 대천초등학교 홍연성 교장 선생님, 국악원 원장이자 소리풍물패 줌의 대표 석은희 선생도 하객들에게 인사 말씀을 하였다.
생산자 돕고, 이익금은 지역공동체 사업에 재투자
반상호 대표는 "이곳은 생산자들이 직접 운영합니다.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가 스스로 가격을 결정합니다. 또한 우리 마을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을 원칙적으로 공급하며, 소비자들의 건강과 자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만을 공급합니다. 앞으로 이 매장에서 발생하는 익금은 우리 지역을 아름다운 공동체 마을로 만들어 나가는 일에 전액 재투자됩니다."하고 말했다.
개업식의 끝은 고사였다. 고사 직전은 풍물패의 공연으로 힘차고 화려하게 꾸며졌다. 소리풍물패의 소리는 지신밟기에서 따온 듯한 비나리였다. "주인 주인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들어갑니다./ 소지하니 황금출 개문하니 만복래라./ 생기복덕 날을 받아 대문장군 모시거든/ 천석재수 들어오고 만석재수 왕래할 때/ 손자액살 막아주고 사업재수 많이주소." 소리풍물패는 굿거리를 생략하더니 계속 자진모리를 창공에 휘날린다.
향후 협동조합으로 나아갈 것으로 여겨지는 "농부"의 설립 제안문 일부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각자의 활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권리 신장을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추구해온 공동체 사회를 향한 새로운 사업의 시작으로 생활의 터전 강북 지역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이 일은 우리가 추구해온 공동체 사회를 먼 먼 미래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고, 우리 안에서부터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며, 우리가 앞서 시작하되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해나가자는 것이며, 우선 가능한 부분부터, 그리고 가능한 곳에서부터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지역에서 공동체적 삶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한 연대와 협력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 사회, 지역운동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고, 그 성과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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