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북미관계에 훈풍이 불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 지난 4월 5일 북한의 장거리로켓발사 이후 양측의 비난전이 연일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더욱 더 깊은 무덤을 파고 있다. 현 상태로는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은 절대 없다"(4월 30일, 클린턴 국무장관)고 비판하고, 북한은 이에 맞서 "우리를 변함없이 적대시하는 상대와 마주 앉았댔자 나올 것은 아무 것도 없다"(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고, 미국과의 대화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북 '6자회담 불참-기존합의 파기' 선언 이후 분위기 급랭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이후 지금까지 3개월 반 동안 북한에 대한 워싱턴의 분위기가 두 번 바뀌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오바마 행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포괄적인 대북협상에 나설 테니 북한이 도발을 삼가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했고 그 뒤 분노감이 팽배한 가운데서도 6자회담을 살려내야 한다는 여론이 유지됐으나, 북한이 '6자회담 불참-기존합의 파기' 방침을 선언한 뒤에는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이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워싱턴은 혼란스럽다"면서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확립되지 못한 가운데, 일련의 북한의 도발적인 행위들이 미국 정부를 혼란에 빠트리면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북한 핵문제는 단순히 핵을 없애는 안보과학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전체제와 북한과 미국의 대결구조라는 역사적인 배경과 정치적 성격을 가진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클린턴 국무장관-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분명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립하고, 접근해야 하는데, 정치적 리더십은 확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교환하는 '포괄적 패키지딜'을 원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와 2005년 9·19공동성명까지 일관되게 미국과의 평화공존전략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미국을 자극하는 장거리로켓(광명성2호)을 발사했을까. 그는 북한의 체제내적 요인이 결정적이라고 분석했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제2차 천리마 운동'의 시작을 경축함으로써 전 인민 총동원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현재 북한은 김정일이 후계정치를 하는 상황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외적으로는 핵카드를 들고 미국과 맞서고 있고, 내적으로는 제한적이나마 시장경제요소 도입 등 개방의 부작용과 싸우고 있는데, 이 생사를 건 '2대 전선'에서의 싸움이 완결됐다고 믿는 때가 돼야, 비로소 후계정치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다음은 7일 오후 세종연구소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
-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싸늘해져가고 있다는 시각이 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워싱턴의 분위기는 두 번의 변화가 있었다.
오바마 후보가 대선 때 '고위급 직접 양자회담'(정상회담 포함)을 통해 북핵 문제 등 주요 현안들을 해결하겠고 공약했었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 후 대북정책 검토기간에 들어가면서 북한과 미국 서로 간에 기대가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임할 테니, 북한도 정책 검토기간에 도발적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오바마 쪽의 입장이었다.
힐러리 미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에 나서기 직전인 2월 13일에 '내가 북한과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은 북한이 이번에 도발적인 행동을 삼가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할 준비가 돼 있으면 미국은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북한이 로켓을 발사했다. 워싱턴의 분위기를 바꾼 첫 번째 사건이었다. '세계가 보는 앞에서 보기 좋게 뺨을 맞았다'는 분노감, 절망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로켓발사는 북한의 국내정치적인 필요성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이해를 하면서, 로켓발사건은 조속히 마무리하고 6자회담을 살려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유지됐다. 북한 비핵화가 최대 목표이기 때문에 냉각기가 길어져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로켓발사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에 대해 북한 외무성이 '6자회담 불참-기존합의 파기' 방침을 밝히는 성명(4월 14일)을 내고, 이어 '유엔의 사과가 없으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겠다'(4월 29일)고 하면서, 워싱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3개월 반도 안됐는데 북미 간에 불신과 좌절이 깊어지는 방향으로 두 번이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4월 한 달동안 워싱턴의 핵심적인 질문은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취하는 여러 정책 그룹들이 워싱턴 조야에서 분파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현재 워싱턴은,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고 있다"
- 워싱턴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강경-온건론이 얽히면서 혼란스러운 느낌이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는 방안으로 나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워싱턴은 크게 두 입장, 세분하면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동맹국들과 협력해서 비확산-봉쇄정책으로 가자는 강경파 그룹이 있다. 부시정부가 처음 6년 동안 취하였던 대북 강경정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이 완전히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는 쪽으로 결정해 버린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그룹이 있다. 여기에도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북한이 국내정치적 이유 때문에 강공으로 나오는데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고 기다리자는 것이다. '북한은 9개월 내에 돌아올 것'이라고 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게리 세이모어 대량살상무기(WMD) 조정관이 이런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이대로 방치하면 북한이 진짜 핵보유국이 될 수 있으니, 마냥 기다리지 말고 북한에 '고위급 사절'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워싱턴은 북한에 대해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북한과 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일단 기다리자'는 사람들이 더 힘을 쓰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바마정부 내에서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는 사람들은 NSC, 국무부 모두 북한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들은 아직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6자회담 틀 내에서 양자회담'이라는 식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북미양자회담을 하겠다는 뜻이다.
오바마 정부가 바로 북미대화로 나가지 못하는 데는 미국 국내정치적 요인도 있다. '경제 살리기' 등 현안을 위해 의회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북한의 강공에 대해 머리를 숙이게 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의회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하원 세출위원회가,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에너지 지원용으로 배정한 예산을 포함해 북한 비핵화에 사용할 예산 가운데 총 1억5300만 달러를 삭감한 것이 의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 워싱턴에서 강경파라고 부를 수 있는 그룹은 어떤 사람들인가.
"두 그룹이 있다. 첫째는 예전 부시정부 당시 네오콘과 강경파들의 대북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시행했던 이들과 그것을 지지했던 인사들이다. 이 그룹은 오바마 행정부 밖에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둘째 그룹은 오바마 정부 안팎 양쪽 모두에 있는 인사들로, 북핵문제의 발생 원인을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성격을 가진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기본적인 맥락 속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 보다는, 강대국 미국에 대항하는 북한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 등을 바탕에 깔고 문제를 미국 중심의 시각에서 문제를 보고 있다. 안보과학기술적인 입장에서 완벽하게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해 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 넓게 '비확산 레짐 전문가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보즈워스, 권한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
- 그렇다면, 워싱턴에서 누가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라인 즉,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라인이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NSC의 게리 세이모어 조정관, 제프 베이더 동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북핵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보스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선, 북한의 대미 강경책에 대한 미국 조야의 심각한 좌절분위기가 그를 힘들게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북한이 그를 만나주지 않음으로써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그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합의를 이뤄가면서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스타일인데 미국 정부 내부의 의견, 미국 정책커뮤니티의 의견, 일본과 한국 등 6자회담 관련국들의 의견을 모으고 조정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또 그는 터프츠대학 플레처스쿨 학장직을 유지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만 워싱턴 근무를 하고 있는데, 북한 등 관련 당사자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제점도 있다.
보스워스 특별대표로 하여금 자신의 권한과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도와줄 측은 북한이라는 점에서 북한은 북핵문제를 다루는 데 좋든 나쁘든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일정한 냉각기를 거칠 수밖에 없겠지만, 결국 고위급 직접 양자회담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한다. 내년 5월로 다가온 핵비확산조약(NPT) 검토회의와 NPT의 연장문제, 북한의 핵보유로 촉발될 수 있는 동아시아에서의 핵무기경쟁과 그에 따른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리더십, 헤게모니 상실 문제,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비전에 대한 타격 등은 오바마 정부로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 외교협회(CFR)가 최근에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랜트 스코우크로프트가 참여한 태스크포스팀이 쓴 '미국 핵무기정책(U.S. Nulcear Weapons Policy) 보고서'를 발표했다.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오바마 행정부는 관련 국제행위자들과의 면밀한 협력을 하면서 오바마정부가 '전면적으로 개입하는'(fully involve) '공격적인 외교'(aggressive diplomacy)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이 태스크포스팀은 북한의 로켓발사 이후에 발족된 것이 아니었고, 보고서도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대해 심사숙고한 것이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레온 시걸 같은 북핵문제 전문가는 역대 미국정부가 북핵협상을 중심으로 한 대북관계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행위 패턴을 제시한 적이 있다. 하나같이 부정(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좌절(depression), 그리고 수용(acceptance)이라는 5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1, 2단계 상황에 있지만,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자신의 국가이익 때문에 '협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좌절감을 겪겠지만, 결국은 상호간에 이익이 되는 합의안을 '수용'할 것이다. 지금 워싱턴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일련의 북한의 도발적인 행위들이 미국 정부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오바마정부 사람들은 현재 상황이 이처럼 어려워진 이유는 오바마의 대북정책 자체가 변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도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또 북핵문제를 비확산 문제 자체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지역문제'의 맥락 속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들은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하고, 한국과 일본과의 의견 조정과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 보즈워스 대표가 동북아 순방을 하고 있는데.
"두 가지 맥락이 있다. 하나는 중국이 동맹국인 북한에 대한 압력과 설득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 '과잉 대응'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한 것이다. 미국무부는 보즈워스 대표가 이번 순방에서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는 1차 순방에서처럼 북한에게 방문의사를 미리 표시했겠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중국에 가서 북핵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이 그런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 중국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 왕자루이 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에 파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는데.
"북한-중국은 국가 간의 관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형제당의 사이다. 그 동안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중국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더러 있었지만, 왕자루이는 항상 김정일 총비서를 만났다. 그가 조선노동당의 형제당인 중국공산당의 대외관계 책임자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평양에 간다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게 될 것이고, 중국 지도부의 북핵문제 관련 뜻이 북한에 전달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난 주 중국에 다녀온 인사에 의하면, 왕자루이의 북한 방문 관련 보도가 반드시 정확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북핵문제와 관련해 내년 NPT검토회의가 주목받고 있는데.
"미국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당장 내년 5월로 예정되어 있는 NPT 검토회의 때문이다. NPT는 오바마가 강조하고 있는 '핵무기 없는 세상 만들기'을 위한 핵심적인 법적·제도적 장치인데,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NPT를 강화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문제가 더 악화되고, 심지어 제2차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오바마정부는 최소한 내년 NPT 검토회의 때까지는 절대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옛날 클린턴정부가 제1차 북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의 타결에 온 힘을 썼던 이유도 바로 다음 해인 1995년에 NPT 검토회의가 있었고 이를 통해 NPT를 무기한 연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소련 멸망 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공존전략' 일관"
- 북한이 과연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나.
"소련 멸망 후 북한의 '21세기 생존과 번영전략'은 대외생존전략을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과의 평화공존전략을 짜는 것이다. 1차 북핵위기를 종료시킨 1994년 북미기본합의서와 2차 북핵위기를 종료시키기 위한 2005년 9·19 공동성명에 반복적으로 '포괄적 패키지딜'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6자회담의 5개 '실무그룹'의 '명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6자회담 참여국들이 상호간에 포괄적으로 주고받기를 약속한 교환 아이템의 명칭 그 자체이다. 우리가 '한반도의 비핵화'(북핵문제 해결)를 달성하려면, 북한으로서는 핵이 없더라도 생존과 번영이 가능한 조건들, 즉 나머지 4개 아이템('북미관계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경제 에너지 협력', '북일관계정상화')을 받아야 하고, 또 6자회담 참여국들은 위의 4가지를 북한에게 주기로 약속한 것이 바로 6자회담의 합의 내용이다.
소련 멸망 후 북한의 전략에는 이런 일관성이 있었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일관되게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정책목표를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6·25전쟁을 종료하는 평화협정을 맺고, 관계정상화 하면서 정상적으로 무역, 금융 등 경제협력을 함으로써 국제사회로 나와 생존하고 번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북한의 생존이 가능하지도 않다. 북한이 핵무기 몇 개 더 갖는다고 하자. 중국과 러시아까지 힘을 합쳐서 처벌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대외안보환경이 증진되는 것이 없다. 그리고 핵무기 경쟁이 일어나면 북한은 또 꼴등이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북한의 계속되는 강공 드라이브는 어떻게 봐야 하나.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보인다. 첫째, 북한은 핵협상의 틀 자체를 '재구조화'시켜 '엄격한 검증', '시료 채취' 등의 낮은 기술적인 문제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높은 수준에서 9·19공동선언에서 약속한 것을 본격적으로 이행하는 방식으로 협상의 판(프레임)을 새롭게 짜려고 작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이 바로 그러한 방향에서 직접 양자회담에 나오도록 최대한 집중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북한은 일단 말을 하면,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식의 패턴을 보여 왔기 때문에, 미국은 그냥 기다리기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최근 잭 프리처드 전 대북특사는 "6자회담은 끝났다, 앞으로는 4자회담(남한, 북한, 미국, 중국) 형태로 북핵문제를 풀게 될 것으로 본다"고 했고, 자유아시아 방송도 미국의 고위급관리를 인용해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끝내 복귀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형태의 다자 대화'를 시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6자회담의 전망은 어떠한가.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고 있으니, 다른 형태 즉 일본, 러시아를 제외하는 형태를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표현은 안했지만, 사실은 일본 때문이다. 일본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계속 납북자 문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북한도, 다른 나라들도 일본에 질린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6자회담이 존속되고 그 속에서 부시 말기에 그랬던 것처럼 북미 양자회담이 활성화되고 6자회담이 이를 추인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이전보다 양자회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북한 로켓은 '제2천리마" 운동 경축... 전국민 총동원 분위기"
- 마지막으로, 북한의 후계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계정치를 띄우기 시작하면 현직 권력자는 바로 레임덕에 빠진다. 따라서 현 권력자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레임덕 현상을 피하려고 한다. 그것이 후계정치의 핵심이다. 그리고 '새로운 리더는 새로운 정책을 의미한다'는 것이 리더십 변경의 핵심이다.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시작하였던 1960-70년대는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안보 우산 속에서 실질적으로 국가안보 걱정이 없었고, 경제도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다. 또 김일성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후계정치를 시작한다고 해도 북한 사회에 정치적 불안정이 야기될 걱정은 없었다. 김정일의 권력 승계는 김일성의 권력 누수가 아니라 권력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금 두 가지 전선에서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련 멸망이후 대외 생존과 번영을 틀을 짜기 위해 핵카드를 사용하면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생사의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대내적으로는 시장경제 요소의 도입과 비록 제한적이었다 할지라도 그 동안 대남 및 대외 개방의 부작용을 통제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정치를 시작한다는 것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김정일이 올 들어 '제2천리마 운동'을 선포했는데, 이로써 북한의 정치는 2012년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강성대국'을 개막할 때까지 아주 단순한 판이 된 것이다.
이번 북한의 장거리로켓발사도 제2차 천리마 운동의 시작을 경축함으로써 국민 총동원의 분위기를 띄우려는, 국내정치적인 요인이 가장 큰 것이었다.
김정일이 후계정치를 본격화 한다면, 그것은 지금 현재 자기 자신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양대 전선에서의 싸움이 완결되어 자신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믿는' 때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 권력자인 김정일 자신이 그렇게 '인식하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김정일이 결코 후계정치를 허용할 때가 아니다."
- 제2 천리마 운동을 강조하는 것 같다.
"천리마 운동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1950년대 제1차 천리마운동도 그렇고 올해부터 시작된 제2차 천리마운동의 목표는 정치, 사상, 노력, 기술 등 온갖 자원을 총동원해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차원의 국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1950년대에는 '사회주의 공업화 국가'였고, 지금은 '강성대국'이다.
정치적으로 몸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김정일 자식들을 포함하여 그의 최측근들이다. 지금북한의 정치는 김정일의 건강에 어느 정도 문제가 생겨도 총동원된 정치적인 힘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요사이 언론에 북한의 후계 이야기가 뜸한데, 앞으로도 김정일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현지지도를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는 한, 후계정치 이야기는 더욱 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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