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든, 검사든, 법학교수든 모든 법조인의 뿌리는 사법부에 두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해석은 그래서 법원의 판결례를 기초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신뢰는 모든 법조인의 신뢰의 기초입니다. 법원이라는 다른 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더라도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 법조인으로서 자랑스럽고, 국민의 신뢰를 잃을 때 동시에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대법원 윤리위의 '최악의 판단'신영철 대법관의 행위와 그에 대해 대법원 윤리위원회의 심의결과는 법조인 모두를 고개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윤리위원회는 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해 '사법행정권 남용이고 재판권 침해'라고 인정한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판단을 하였습니다.
'사법행정권의 일환이나 외관상 재판관여로 인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라는 윤리위원회의 발표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법행정권의 남용 또는 재판권 침해라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윤리위원회는 법관의 징계에 관해서는 언급할 권한이 없다면서도 '주의촉구' 권고를 하고, 그러면서 또 주의촉구는 법관징계법상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족을 다는 것은 고심한 흔적으로 인정받기는 충분하나 윤리위원회에 걸었던 국민들의 기대에는 충분히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윤리위원회의 심의결과는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처사입니다. 대법원은 처음부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신 대법관의 행위가 부당한 재판 관여였음을 인정하였고, 지난 4월에는 전국 법관이 모여 진지한 논의 자리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국민들은 이런 움직임을 보며 적지 않은 기대로 지난 두 달간 법원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번 윤리위 결정은 그런 모든 자구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리고 법원의 자체 조사 결과마저 부정했다는 점에서 개탄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조차 "윤리위 회부 자체도 못마땅했지만 그 결정이 주는 충격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대법원장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조치를 내려줄 것이라 믿고 싶다", "법관으로 몸담고 있는 동안 요즘처럼 법관의 독립이란 명제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너무 머리가 아프다"라며 "왜 헌법의 소중한 기본이념이 법원 내부에서조차 무시당하고 있는지, 자꾸 마음이 자질구레해진다"며 반발이 터져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미 연방대법관의 자진사퇴대한민국 사법부 전체의 신뢰가 추락하고 법원 내부의 법관들마저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면서 혼란이 더해지고 있는 가운데 저 멀리 미국 연방대법관의 퇴임소식은 우리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5월 11자 <법률신문>에서 주미대사관의 사법협력관으로 있는 강한승 판사는 종신직인 미국 연방대법원 데이비드 해켓 수터 대법관의 은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글은 신 대법관 사태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지만 한국의 법조인으로서는 수터 대법관을 신 대법관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강 판사의 글에 따르면, 69살인 수터 대법관의 은퇴선언은 88살인 스티븐스와 췌장암 수술까지 받은 76살의 긴스버그 대법관도 은퇴의사가 없다고 밝힌 가운데 나온 것이라 이례적으로 보이지만, 매일 12시간의 업무를 위해 독신으로 살았고, 사법부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고향인 뉴햄프셔의 소박한 농가에서 평범한 전원생활을 그리며, 운전기사를 마다하고 항상 직접 운전하며 낮은 자세를 유지했던 것으로 미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수터 대법관은 판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판결을 내리는 화려한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후배 판사들에게 과연 50년 혹은 40년이 지난 판결을 인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 묻고는 대부분의 판사가 하는 일이란 흐르는 물줄기 속으로 아주 빨리 가라앉고 마는 것이며, 판사는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그 거대한 물줄기의 일부가 되는 것에서 성취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추구하듯이 흠잡을 데 없는 재판진행이나 그 다음해 판례집에 실릴 만한 완벽한 판결문을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운이 좋아 판사 시절 그런 판결을 몇 개 남긴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그 의미가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헌사후임 대법관을 임명하게 될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헌사를 보냈습니다.
"수터 대법관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판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지난 20년 동안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고, 어떠한 신조도 절대적이라고 고집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 하나하나에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그는 훌륭한 판사이기 이전에 훌륭한 사람이었다. 나는 미국 국민을 대표해서 그의 헌신적 봉사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아울러 그는 후임자 선정기준에 대하여 "추상적인 법이론이나 판례집의 각주까지 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법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고, 국민들의 희망과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에게 '화려한 순간'만을 좇는 대법관을 내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것인가요. '거대한 물줄기의 일부'가 되는 대법관을 찾는 것은 지나친 기대이고 망상일까요.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법관의 임명권을 가진 우리 대통령에게 오바마의 선정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정녕 무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