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아! 저게 뭐야?"
"밥그릇이잖아?"
"뭘, 밥인데"
"아니야, 누룽지야"
"천만에, 멋진 공예품이야, 밥으로 만든 예술작품!"
지난 5월5일 충남 공주에 있는 마곡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음식점들이 즐비한 길을 걷는데, 일행 한 사람이 어느 식당 앞 평상에 놓여 있는 이상한 모양의 하얀 물체를 보고 하는 말에 너도나도 한 마디씩 던진 말이다.
일행들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생긴 모양은 분명히 밥그릇 같았다. 그런데 재료는 밥이었다. 밥그릇 모양으로 눌린 누룽지 밥. 그것도 그냥 밥이거나 그냥 누룽지가 아니라 어느 정교한 도공의 손으로 빚은 듯 아름다운 모양의 공예품, 밥을 재료로 빚은 예술작품이었다.
"아주머니 저거 한 개에 얼마씩이에요?"
마침 마당으로 나온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에게 일행이 묻는다. 난생 처음 본 멋진 모양의 누룽지를 사고 싶었던가 보았다.
"저 누룽지요? 한 개에 4천원 씩만 주세요."
"너무 비싸네요, 밥 한 그릇 밖에 안 될 텐데."
일행이 고개를 내젓는다. 일행은 밥 한 그릇으로 눌린 것이니 밥 한 그릇의 두 배쯤 되는 2천원을 예상했었나 보았다.
"저게 그냥 밥 한 그릇으로 보이세요? 그냥 누룽지로 드시면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모양이 다르잖아요? 그냥 누룽지로 먹어버리기엔 아깝지 않으세요?"
일행이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래도 누룽지는 누룽지다. 멋진 누룽지를 사겠다고 나선 일행은 처음 발견하고 한 마디씩 말할 때 누룽지라고 말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모양이 아무리 예쁘고 멋있는 예술작품이어도 그냥 누룽지일 뿐이었다. 고소하게 씹어 먹을 수 있는 있는 누룽지 말이다.
그러니 4천원이란 값은 너무 비싼 것이 분명했다. 밥으로 빚은 공예품, 예술작품이라고 말한 사람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멋진 공예품 한 개의 값으로 4천원은 결코 비싼 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운반 중에 아차하면 부서져버릴 가능성이 많은 누룽지 공예품은 어쩌면 상품가치가 누룽지 이상 없었는지도 모른다. 공예품 같은 멋진 누룽지는 오랜 동안 보존하기 어려운, 한 순간만 존재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밥으로 빚은 멋진 공예품 두 개, 누룽지 밥그릇 예술작품은 구매 흥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식당 아주머니도 더 이상 사라고 권하지 않는다. 모두들 돌아서서 휘적휘적 마곡사를 향해 걸었다.
"어 저길 좀 봐? 오늘 어린이 날인데 부모가 아이 사진을 찍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부모 사진을 찍어주고 있네."
"어, 정말 그러네, 오늘은 이상한 풍경들만 눈에 들어오는 날이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이상한 풍경이겠는가? 사진은 아이나 부모 그 어느 쪽이라도 서로 찍어줄 수 있는데 말이다. 어린이 날이라고 어린이 사진만 찍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매일 먹는 밥이 멋진 공예품으로 나타난 일이 다른 사물까지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밥이 그냥 밥이 아니고, 누룽지가 그냥 누룽지가 아닌 예술 공예작품으로 한 순간 태어났듯이 부모와 아들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한 순간의 멋진 기록으로 남기면 되는 것이다. 그들 가족의 사진을 내가 찍어 이렇게 순간의 기록으로 남긴 것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