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엔 인조잔디가 깔려있다. 지지난핸가 운동장 잔디공사 때문에 운동회를 안 한다고 하기에 '웬 잔디?' 했는데 알고 보니 축구부 연습 때문에 까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잔디를 깔 것이면 천연 잔디를 깔 것이지 인조잔디가 웬 말이냐'며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근 대학에서 '인조' 잔디 까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인공적이어서 그것이 과연 잔디역할을 할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학교에 인조잔디가 깔리고 한참 지났어도 그곳을 한번 밟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지 않았다. 뿐인가 인조라고 하니 밟으면 괜히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았다.
그런데, 선입견과는 달리 인조잔디는 직접 체험해보니 너무 좋았다. 맨발로 걸어도 전혀 발밑이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을뿐더러 부드럽기까지 했다. 맨발로 뛰어보면 어떨까 싶어 뛰어 봐도 발바닥에 전혀 불이 일지 않았다.
해서 나는 이 초등 인조잔디운동장에 대해 무관심에서 급호감으로 마음이 움직였고 한동안 열심히 애용하기도 하였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많이 애용하고 있다. 오며가며 볼 때면 이 초등 운동장에선 항상 이용자가 있다. 학교 방과 후에는 축구부들이 주로 연습을 하고 주말에는 동호회 사람들이, 그리고 저녁에는 동네 사람들이 운동장을 거닐거나 공을 차고 있다.
주중 낮에도 보면 운동장 곳곳에서 체육수업이 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들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일단 먼지로부터 자유로우니 아이들도 마음껏 뛰고 또 앉고 뒹굴 수도 있기에 선생님들이 체육수업을 진행하기도 수월해 보였다.
반면 바로 옆 중학교의 경우는 그냥 흙 운동장인데 어쩌다 체육수업을 하는 것을 볼 때면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느 날은 학생들이 두 줄로 서서 뛰는 것을 보았는데 뛰는 발걸음 걸음마다 먼지가 푹푹 이니 아이들이 호기롭게 뛰고 싶어도 뛸수가 없어 보였다.
또 흙바닥 그대로이니 마음대로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이거나 대개는 계단에 정렬해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경우가 많아 보였는데 이래저래 부자유스러워 보였다. 공부 때문에 활동이 적은 아이들이기에 그나마 있는 체육시간을 최대로 활용해야 할 것인데, 열악한 운동장 여건 때문에 조심하면서 수업에 임하는 모습이 인근 초등학교에 비하자니 안타까웠다.
영어 수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잔디 운동장이 아닐까...아무튼 흔하지 않게 잔디 운동장이 있는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세상에 이런 혜택이 어디 있나 말이다. 서울의 어느 학교들은 운동장이 좁을뿐더러 다들 깨끗하게 살다보니 흙먼지를 싫어해서 학생, 교사 공히 체육수업을 싫어하기도 한다던데, 이곳은 반대로 학생, 교사 모두 체육수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아마, 우리 동네에서 근무하다 잔디 운동장 없는 다른 동네로 전근 가는 선생님들의 경우 분명 한동안 잔디 없는 운동장에 적응 못하기도 할 것이다. 나만해도 잔디 없는 운동장을
상상할 수가 없다. 초등은 이미 있으니 다행이지만 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 인근의 잔디 없는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거나 뛰어 놀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갑갑하다.
하여 생각하노니. 어쩌면 영어몰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 학교의 잔디 운동장 완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거의 꿈같은 얘기일까. 천연잔디라면 관리도 힘들고 중간 중간 농약 값도 들고 환경오염도 일으키고 등등 골프장만큼이나 문제가 많겠지만 인조잔디구장의 경우는 초기 비용만 들면 그 이후론 별 비용이 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리 또한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워낙 운동장이 인물이 좋으니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면, 인조 잔디운동장이 만들어졌을 초기, 몇 년 못가고 망가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 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지저분한 전봇대 옆에는 쓰레기가 쌓여도 전봇대 옆에 깨끗한 화분이 있으면 쓰레기를 못 버리듯 초등운동장의 경우도 워낙 깔끔하니 감히 누가 소주병 버리고, 깨고 등의 일을 하지 않았다. 있어봐야 플라스틱 물병이 나뒹구는 정도였다.
하여간, 인조 잔디 운동장은 너무 좋다. 또 다른 인근 대학의 경우 천연 잔디를 깔았는데 들어보면 천연 잔디구장은 뛰는 운동장이 아니라 모시고 바라보는 운동장으로 느껴졌다. 잡티하나 없는 듯 파랗고 매끈한 운동장을 보면 마구 달려가 뛰놀고 싶은 충동이 일겠으나 실상은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일반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나 보았다.
잔디 담당 직원은 누가 혹시 잔디를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나 감시도 해야 되고 지금처럼 가뭄이 심할 때는 호스로 물도 뿌려줘야 되는 등 상전이 따로 없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인조잔디는 가난한 우리 실정에 딱 알맞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잔디 있는 초등학교를 원한다면 우리 동네로 유학 오시라. 아니면, 왜 사람 차별하냐며 우리 동네 초등에도 인조 잔디 깔아달라고 교육청에 진정을 넣으시든지.(ㅎㅎ) 어느 아파트 광고에선가 삶의 질이 달라지느니 어쩌니 하던데 정말 초등학교에 잔디가 깔리면 아이들의 유년의 질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