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의 공원에 토끼가 사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의 한 공원 풍경은 다른 공원과 다를 바 없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마라톤 연습을 하는지 땀 흘리며 뛰는 젊은이들, 아기와 함께 자연을 즐기는 엄마와 운동기구를 이용해 열심히 운동하는 주민들.
우리 집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감나무실 공원'이 있다. 하지만 그 공원에는 다른 공원과 달리 토끼가 살고 있다. 빙 둘러 아파트 단지이기에 찾는 사람들도 늘 많다.
내가 이곳에서 본 토끼는 스무 마리 정도인데 내게 선을 보이는 녀석들은 매일 다르니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느 날은 검정 토끼, 어느 날은 줄무늬 토끼, 어느 날은 점박이 등 공원을 찾을 때마다 다른 토끼와 마주하게 되니 오늘은 어떤 토끼와 만날까 기대를 하고 가게 된다.
내겐 그들이 특별하다. 주인도 아니지만 그들은 나를 주인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겨울 그들의 먹이를 주기 위해 난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공원을 찾았다.
우리 부부 손에는 늘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그 비닐봉지 안에는 토끼들이 좋아하는 배춧잎이나 야채, 과일껍질 또는 찬밥 남은 것 들이다. 다른 분들도 토끼먹이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난 조금 특별하게 그들을 부른다. 비닐봉지를 바스락 거리며 그 소리로 내가 왔다는 신호를 요란하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토끼야! 토끼야!" 부르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나곤 한다.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다가오기도 하고 앞발을 들며 예쁜 짓도 하니 더 사랑스럽다.
그 토끼가 새끼를 낳았다. 여러 색의 토끼 새끼를 보니 귀엽기도 하고 가슴이 뛰기까지 한다. 행여 그들이 놀랄까봐 조심스레 다가가지만 새끼들은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놀라 도망가기 일쑤다. 아직은 사람 사는 세상이 두려운가보다. 제 집으로 쏘옥 들어가 버리니 아쉽지만, 그들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하니 어쩌면 다행이다.
그런가하면 며칠 전엔 이곳저곳에서 흩어져 풀을 뜯고 있는 녀석들에게 과일을 주고 돌아오는 길에 하얀 토끼가 자꾸 따라 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줄 것도 없는데 두 앞발을 들며 자꾸 애교를 부리는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에 돌아 서려는데 못보고 가는 줄 알고 앞에 다가와 내 발을 핥고 있다.
"아이쿠! 이 녀석아."
이러니 어찌 매일 공원을 찾지 않을 수 있나. 오늘도 숲 속을 보니 어미 옆에 새끼 두 마리가 배를 쭉 깔고 한가롭게 쉬고 있는 것이 보여 부리나케 카메라를 들고 다시 올라갔다. 도망이라도 갈까봐 살며시 셔터를 누르는데 마치 모델이라도 된 듯 빤히 쳐다보며 포즈를 취해준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이젠 풀도 많이 나고 날씨도 좋으니 너희들에게 더없이 좋은 계절 아니냐.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길고양이가 그랬는지 토끼가 다친 걸 봤다고 하시니 걱정이 된다. 탈 없이 잘 자라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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