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기운이 빠집니다. 약속을 했기에 손을 거들어 보고자 먼길을 달려왔는데 말없이 약속을 깨 놓고 있었다면 더없이 힘이 빠지고 맙니다.
요즈음 제 삶은 '아기한테 온통 바치는 삶'으로 뒤바뀌어 있습니다. 잠이고 뭐고 모자라 살이 쪽 빠져 있습니다. 이런 몸으로 몇 시간에 걸쳐 먼걸음으로 달려왔으나 정작 약속은 나중으로 미루었고, 이런 약속 어그러짐을 알려주지 않아 애먼 시간을 버리고 힘든 몸은 더욱 지칩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그러나 괘씸하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마음씀씀이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소리인가 싶어 씁쓸하고 쓸쓸했습니다. 약속을 깬 그네들이 불쌍하고 안쓰럽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깨져 버린 약속을 어찌 돌릴 수 없습니다. 생각그릇이 좁은 사람을 탓한다고 나아지거나 달라질 길이 없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뿐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다스려야지요. 믿을 사람을 믿고, 사귈 사람을 사귀며, 함께 일할 사람은 좀더 찬찬히 속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새로 다짐해야지요.
난데없이 아침나절이 붕 뜨게 된 지난 수요일 아침나절, 붕 떠 버린 마음을 어찌 달래야 하나 곱씹다가, 어차피 이렇게 자전거 끌고 먼 마실을 나온 김에, 요사이는 거의 찾아오지 못하고 있던 '우리 집에서는 좀 먼' 골목길 마실을 하자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침 약속을 시원하게(?) 깨 주신 분들 때문에 이렇게 '먼 골목마실'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볕 좋고 바람 알맞고 하늘 파란 아침에 자전거 끌고 골목마실을 하도록 마음을 써 준 셈(?)이라고 생각하기로 합니다.
인천 부평구 십정1동과 2동을 샅샅이 누빕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지난해 겨울과 올봄(아직 꽃이 피지 않던)에 이어 여름을 코앞에 둔 때에 찾아오게 됩니다. 길그림책에는 '철거민촌'이라는 이름이 굵직하게 새겨져 있기도 한 '십정1동 달동네' 골목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꽃그릇을 보고,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를 봅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골목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 저를 보고는 "사진사 양반, 우리들도 찍어 주지? 아줌마들은 못 생겨서 안 찍나?" 하면서 깔깔 웃습니다. "찍어 달라 하시면 얼마든지 찍어 드리지요. 그러나 아직 잘 모르고 처음 만난 사이인데 함부로 찍을 수는 없어요. 다음에 또 길에서 뵈면 그때 찍을게요" 하고 말씀을 드리며 한참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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