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보건지소에 들어온 지 이제 한 달이 되어 갑니다.
이곳은 다른 보건지소들이 그러하듯이 안동 시내에서도 차로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자그마한 동네 구석에 있습니다.(보건지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렇게 의료 소외지역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높이기 위해서이니까요^^:) 사실 찾아오시는 환자라고 해봐야 많아도 하루에 10명을 넘기기 힘든, 그것도 근처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부분인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간혹 찾아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환자분들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만성질환자들로 한 달에 한번씩 약을 받기 위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병력청취를 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저는 자세히 병력청취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행히 처음에는 너무 수다스러운(?) 제 모습에 당황하시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 주시는 편이구요. ^^;
이농현상(?)
처음 이 곳에 와서 놀랐던 것이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개 아들 몇 명에 딸 몇 명씩 자식들이 주렁주렁 있는 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다들 돈 벌기 위해서 도시로 떠나 버리고 두 분이서 시골을 지키시거나 그마저 한 분이 돌아가셔서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만성질환은 치료에 있어서 관리가 가장 중요한데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라는게 관리가 쉽지 않습니다. 음식 조절도 잘 해 주어야 하고 적절하게 운동도 해주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약을 먹어 주어야 하는데, 이곳에 계신 분들처럼 가족이 없이 혼자서 사시거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 두 분이서만 지내시는 집에서는 제대로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또 실제로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또 이곳에는 심지어 자기 증손자까지 맡아서 키우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할머니 한분이 어린 아이 두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방 접종을 뭘 맞아야 하는지 이때까지 어떤 접종을 맞았고 또 맞지 않았는지 잘 모르십니다. "할머니 애들 아빠나 엄마는 많이 바쁘세요?"라고 물었더니 애들 엄마는 얼마 전에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지금 보는 애들이 손자가 아니라 증손자라고 하셨습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서 농사지으랴 살림하랴 힘들게 사셨을 할머니지만 말년에는 아들에 손자에 증손자까지 떠 맡고는 힘겹게 하루하루를 지내시고 계셨습니다.
고슴도치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제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들어오시면 틈을 노려서 자식들 자랑하시기에 바쁩니다. 어제는 누가 왔다 갔다면서 자기 심심할까봐 애들이 자주 들르고 서로 모셔가려고 한다는 분들도 있고, 누구는 맛있는거 사 먹으라고 애들이 용돈을 많이 준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귀찮을 정도로 안부 전화한다는 분들도 있고 또 어떨때는 자식들이 서울에서 어마어마하게 성공했다는 이야기까지. 어르신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도 결론은 항상 자식들 자랑 뿐입니다.
사실 정말 효자라면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렇게 혼자 두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물론 각자 사정이 있으시겠지만요)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 눈에는 모두가 효자에 착하고 성공한 자식들인가 봅니다. 항상 자식들에게는 잘해 준 것보다는 못해준 것만 기억하시고, 자식들은 자신들에게 못한 것은 빼고 잘해 준 것만 기억해 주시는 어르신들. 이래서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이쁘다고 한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요약 |
1.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2.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안부전화라도 자주 하시는게 어떨까요?
3. 어르신들을 치료하는데는 비싼 약보다 자식들의 전화 한통이 더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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