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지도부와 비전위원회가 내놓은 뉴민주당 선언 초안에 대해 19일 열린 첫 번째 공식토론에서는 초안이 지향하는 민주당의 '탈이념화'에 대한 반대와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중산층을 끌어오는데 한나라당과 겹치는 게 어떠냐'며 뉴민주당 선언 초안을 옹호하는 의견도 나왔지만, 비판하는 의견보다는 소수였다.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뉴민주당 선언 국회의원·지역위원장 전체회의'에서 정세균 대표는 "뉴민주당 선언 초안은 답안지가 아니라 문제지"라며 "함께 참여해서 비판하고 의견도 제시해서 답안지를 같이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혹하고 냉소적인 비판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을 용광로처럼 선언에 녹여내서 우리 모두의 것이 되도록 할 수 없을까 하는 제안을 한다"며 활발한 토론을 당부했다.
초안을 마련한 김효석 비전위원장은 지난 17일 뉴민주당 선언 초안이 발표된 직후부터 계속된 당내 비판과 반발을 의식한 듯 "'한나라당 2중대'라는 표현은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은 '무능한 민주화 세력'이고 한나라당은 '냉혹하지만 유능한 경제 세력'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깨지 못하면 영원히 필패"라며 선언 초안의 '탈이념화'를 두둔했다.
[비판] 이종걸 "지지층 배반"... 이목희 "비전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이날 토론에서는 신랄한 비판과 반박이 이어졌다. 토론의 첫 포문은 이종걸 의원이 열었다. 이종걸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민주연대는 토론에 앞서, 이날 오전 성명서를 통해 이번 선언 초안을 강력히 비판하고 관련 논의를 6월 이후로 미루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올바른 반성이 결여돼 있다"며 "과거 어느 신문에서도 지적했듯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 차선으로 달렸던 이것이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훼손했던 것이고, 구체적 실천이 따르지 않았던 것이 지지층 이탈의 원인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은 지금 한나라당의 매서운 공격에 모든 것을 내주고 골목으로 쫓겨나 마지막 회전을 앞둔 아주 절박한 시기에 있다"며 "한나라당의 반대(로)만 철저히 해도 민주당은 성공할 수 있는데 점점 더 한나라당과 비슷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선언 초안은 전 국민을 상대로 미사여구를 동원해 수필을 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전 국민을 지지층으로 발전전략을 세우는 민주당이 지지층을 배반하고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목희 서울 금천 지역위원장은 선언 초안에 있는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라는 개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내가 경제학을 했지만 이런 모호한 비과학적 개념을 사용하면 누구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민생은 더욱 큰 위기에 빠지고 있다"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뉴민주당 선언을 읽어보고 자신의 어려움도 극복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선언 초안을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사회경제 분야의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것이 지금 민주당이 내세울 수 있는 비전이 될 것"이라며 "좀 더 선명해지고 좀 더 전향적으로 보이게 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민주당이 축소시킬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영 "수정자본주의, 대안으로 검토해야"
이인영 서울 구로갑 위원장도 "지금은 세계 경제의 판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지고 다시 케인즈주의가 부각되는 시점"이라며 "사회주의도, 신자유주의도, 권위주의도 대안이 아니라면 수정자본주의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진보와 보수의 논쟁을 초월하고 싶은 분들을 있는데, 충격적인 경제 위기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 중산 서민의 실제 삶과 직결된 요구를 야기할 것"이라며 "지금은 사회정책을 강력하게 추구하는 정당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부자 정책, 독재와 같은 나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거대한 전선이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며 "이 전선을 명료하게 살려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상수 전 의원은 "선언 초안에 큰 불만이 없다"면서도 "지금은 당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를 예로 들어 "한나라당에서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을 반대만 해서 되겠느냐"며 "차별 시정 문제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시정권을 주는 문제에 우리가 적극 뛰어들어야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해주지 않겠느냐"고 구체적인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옹호] 최인기·박상천 "중산층 끌어오려면 한나라당과 겹칠 수밖에"
이들과 달리, 뉴민주당 선언 초안을 옹호하는 의견도 나왔다. 최인기 의원은 "선언 초안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적절히 조화하려는 고심이 엿보인다"며 "선언 초안이 중도개혁 노선을 선택한 것은 야당인 민주당에서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이어 "중산층을 타깃으로 하지 않으면 정권을 잡을 수 없고, 중도개혁주의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지역과 계층을 포괄하는 가장 폭넓은 주의"라고 말한 후 "중산층을 지지층으로 끌어오는 것은 모든 정치세력의 염원이기 때문에 한나라당 정책과 겹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탈이념화'에 반대하는 토론자들을 반박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합류하지 않고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했던 최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실책에 대한 반성론을 꺼내들었다. 최 의원은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버릴 것과 지킬 것을 명확히 해야 하고, 필요하면 사과도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과 차별되는 점을 국민들이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천 의원도 "중산층을 끌어오지 않고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서민 보호는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어느 정당이 중산층을 끌어오느냐가 선거 승패를 가른다"며 뉴민주당 선언 초안이 내세운 중산층 포섭 전략을 지지했다.
민주당은 이날 토론회를 시작으로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경남 창원·충북 청주·광주·대구·제주·서울 순으로 순회 당원 토론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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