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가 이달 초 3세 이하의 영아 전담 보육시설인 시립 '세류1동 어린이집'을 5월말까지 운영한 뒤 폐쇄하기로 결정하면서 이곳에 아기를 맡기고 직장에 다니는 '워킹 맘'들이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수원시의 어린이집 폐쇄결정은 정부가 출산장려정책의 하나로 영유아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있는 것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10곳을 더 건립하겠다던 김용서 수원시장의 선거공약을 무색하게 만드는 조치여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지난 2003년부터 11월부터 민간 시설장(원장)을 선임해 운영 중인 '세류1동 어린이집'은 수원에서 단 하나뿐인 공립 영아전담보육시설로, 현재 보육교사 11명을 포함해 모두 17명의 종사자들이 36명의 아기들을 보살피고 있다.
그러나 수원시는 어버이날인 지난 8일 학부모들을 불러 놓고 "어린이집을 5월말까지 운영하고 폐쇄키로 했다"면서 "다른 민간시설을 알아보라"고 통보했다. 수원시의 폐쇄방침에 따라 이들은 이달 말이면 어린이집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영아보육시설 늘려야 할 판에 있던 시설마저 폐쇄라니...수원시는 어린이집 폐쇄 이유로 원아 정원이 48명에서 36명으로 12명이 줄어 매월 400여만의 수입 감소와 지난 3월 기준 700만원의 재정적자 발생, 어린이집 내부 갈등과 민원으로 인한 파행적 운영, 주변지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추진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겨온 직장인 엄마들은 수원시가 사전에 한마디 협의도 없이 갑자기 폐쇄방침을 정해 통보한 것은 맞벌이부부 등 생활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인구 110만에 이르는 수원시가 영아보육시설을 크게 늘려야 할 판에 그나마 하나밖에 없는 공립 시설을 없애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저소득층이나 맞벌이 부부 등의 자녀보육을 돕기 위해 정책적 차원에서 운영되는 보육시설을 수익시설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수원시가 어린이집의 재정적자를 폐쇄 이유 중 하나로 내세운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의 파행운영과 관련해서도 과거 원장의 독선적인 운영 등으로 인해 민원발생과 내부 갈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해결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어린이집 주변지역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내년 하반기에나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폐쇄 이유라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폐쇄 20여일 전 통보 '행정 불신'
학부모 L씨는 "어린이집 운영이 어렵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면서 "별 문제가 없는데 왜 갑자기 서둘러 폐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원시가 어린이집 폐쇄를 불과 20여일 앞둔 시점에서 폐쇄방침을 통보한 것도 워킹맘들에게 혼란과 함께 행정에 대한 불신을 안겨주고 있다.
일부 워킹만들은 수원시의 폐쇄통보 이후 아기를 맡길 다른 보육시설을 찾고 있지만 마땅한 영아전담시설이 없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사립시설도 이미 정원이 채워졌거나 운영여건 등이 달라 아기들을 맡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워킹맘은 "어린이집 폐쇄통보 이후 매일 여러 시설들을 찾아다니지만 운영시간이 다르거나 영아반이 있어도 만1세 이하 아기는 받아주지 않는 곳이 많아 아직까지 헤매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면 직장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원시 홈페이지 '열린시장실'에도 최근 어린이집을 이용해온 워킹맘들이 원망과 고충을 호소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와 있다.
임아무개씨는 "수원시의 보육시설 폐쇄통보 이후 제대로 잠을 잔 날이 없고, 그동안 사립·가정시설 등을 돌아다녔지만 갓 돌 지난 아기를 맡아줄 곳을 찾지 못했다"면서 "먹지도, 잠도 자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시장님이 아실까하는 생각에 글을 쓴다"고 밝혔다.
임씨는 또 "(보육시설을 폐쇄할 방침이었다면) 지난 3월에 신입 아기들을 받지 않았으면 이렇게 속상하고 화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수원시의 보육시설 폐쇄통보로 인해 물질적·정신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워킹맘'들 "우리 아이 어디다 맡기나... 폐쇄 말고 유지를"생후 15개월 된 아기 엄마라고 밝힌 김아무개씨는 "시립 보육시설이라 안심하고 아기를 맡겨왔는데, 갑자기 폐쇄하면 나 같은 '워킹맘'들은 어디에 아이를 맡겨야 하느냐"면서 "직장을 그만두라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아무개씨도 "말도 못하는 아기들이 몇 달 동안 아파가면서 겨우 적응한 곳을 아무런 대책 없이 폐쇄한다니,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이러면서 출산율 떨어진다고 출산장려정책은 왜 추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7개월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임길예씨는 "저출산이 사회문제라며 엄마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겠다던 보육정책이 수원시의 유일한 영아전담 어린이집 폐쇄냐"면서 "제발 폐쇄하지 말고 유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임씨는 공공서비스노조 경기지부 조합원인 일부 보육교사들과 지난 18일부터 수원시청 앞에서 어린이집 폐쇄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 <다음> 아고라에서 청원서명을 받고 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1571)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5월말 이후 어린이집이 폐쇄되면 대부분 실직자로 전락할 위기에 있다. 한 보육교사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 막막하다"면서 "보육교사 결원이 생기지 않으면 취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수원시 "대체시설 없어 완전 폐쇄결정... 고심했지만 어쩔 수 없다"그렇다면 수원시는 왜 서둘러 어린이집을 폐쇄하려는 것일까. 수원시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매월 700여만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데다, 현재 운영책임을 맡고 있는 시설장이 힘들어 못하겠다고 한다"면서 "새로운 시설장을 뽑으려 해도 적임자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주거환경개선사업 추진 기간 동안 대체시설을 마련해 어린이집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적당한 대체시설을 확보할 수 없어 내부적인 논의 끝에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시에서도 고심을 많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어린이집 폐쇄에 따른 대책으로 "학부모들이 원할 경우 오는 10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수원지역 19개 시립 어린이집에 입소를 알선해주고, 민간이 운영하는 가정보육시설에도 입소가 가능하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원시의 이런 대책에 대해 학부모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10월 말까지 입소가 한시적이기 때문에 그 때가서 다시 어린이집을 옮겨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 임시적인 미봉책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임길예씨는 "어린 영아들에게는 안정적인 보육환경, 선생님과의 애착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어린 아이들이 무슨 짐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느냐"면서 "영아전담 어린이집을 폐쇄하지 말고 인근 지역으로 옮겨 유지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