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자회견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올해 안에 다 잡혀가야 하나, 고민스럽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현 상황을 '공안탄압'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명서의 의례적 표현이 아니었다. 이미 단체 활동가들은 공안탄압의 피해를 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집회신고를 내면 불허되기 십상이고, 허가된 집회에서도 구속과 연행이 다반사다. 이 때문에 사회적 여론 형성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일상적 사업과 조직 운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지난 20일 시위 관련 관계부처 장관회의 결정에 따르면, 앞으로는 서울 안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상 허가대상이 아닌 기자회견에서도 구호는 외칠 수 없다. 황순원 한국진보연대 민주인권국장은 "사회적 여론을 만드는 것이 사회단체의 기본 활동인데, 이것을 못하는 것만큼 큰 제약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진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단체들이 이미 집회신고를 포기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학생들이 등록금 인하해달라고 기자회견을 해도 연행되는 상황이다, 이런 행사를 기획할 때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잇따른 구속으로 활동가 '반토막'
허가를 받은 집회나 농성에서도 연행과 구속을 감수해야 한다. 올해 내내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여왔다. 지난 3월 경찰은 '상습시위꾼 검거 특별수사본부'를 발족했다. 4월 30일 용산참사 규탄집회에서는 참가자 43명을 연행했고, 다음날인 5월 1일과 2일에는 노동절 집회와 촛불집회 참가자 183명을 연행했다.
이러다보니 주요 활동가들이 구속돼 사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한국진보연대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0명 활동가 중 10명이 구속당해 부서 업무가 마비됐다. 참여연대 역시 광우병대책회의 활동과 관련, 박원석 협동사무처장과 안진걸 민생희망팀장이 구속되는 바람에 지난해 하반기 민생사업을 거의 진행하지 못했다.
일반 참가자들이 구속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로 나타난 양상이다. 다음 '촛불연행자 카페'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소환된 참가자들을 보면 폭력행위가 없었는데도 채증사진을 찍어 연행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누리꾼들이 많이 위축돼 집회 참가는 물론 카페나 아고라 참여율도 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집회 도중 기물파손 등에 대한 손해배상과 벌금도 단체들의 발목을 잡는다. 경찰, 광화문 인근 상인들이 광우병대책회의 소속 13개 단체에 청구한 손해배상금은 약 40억원. 이를 다 물어내려면 몇몇 단체들은 재정 문제로 아예 활동을 접어야 할 정도의 액수다.
'불법폭력시위단체'로 낙인찍혀 국민들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것도 단체들이 입는 손실 중 하나다.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혐의를 받는 단체도 있다. 국정원과 검찰은 지난 7일 범민련 남측본부 간부들의 북한체제 찬양·고무 혐의를 포착했다면서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활동가 6명을 연행했다.
단체들의 딜레마... 불복종운동 벌이면 효과 있을까
지난 20일 '민주주의 수호, 공안탄압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와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서울시내 100군데 집회 신고 내기 운동을 벌이고 오는 23일 민주인권수호대회를 개최한다"고 공동대응 방침을 밝혔다. 황순원 국장은 "한승수 총리 등을 집시법상 집회방해 혐의로 고소하는 등 법적 대응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체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현재 정국을 돌파할 뚜렷한 방안은 없다, 혼란스럽다"고 털어놓았다. 한 활동가는 "시민단체네트워크는 고민만 나누는 수준에서 우왕좌왕하고 있고, (대안을 내놓을) 희망이 별로 안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지침을 피해가면서 '합법적' 집회를 열 것인지, 전면적 불복종운동에 나설 것인지를 놓고 단체들끼리는 물론 한 단체 안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강윤경 민주노총 금속노조 공보부장은 "산하 노조들의 집회가 계속 불허되니까, 다 잡혀갈 것인지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단체 안에서도 불만과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불복종의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강경투쟁을 벌여도 정부가 반응을 보이지 않을뿐더러, 자칫하면 폭력 논란만 남고 정작 단체들의 주장은 사라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구속·손배소를 감수하면서 집회를 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재근 팀장은 "비판 목소리를 내면 정부가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예 무시로 일관하니 답답한 심정"이라면서 "우리는 대규모 집회보다 정책 대안활동을 주로 하는데 정부 탄압에 대응하다 보면 정작 할 사업은 못하게 된다"고 고민을 내비쳤다.
그렇다고 정책제안을 하거나 대화를 제안해도 이명박 정부가 귀를 막는다는 데 단체들의 고민이 있다. 최근 민주노총이 연일 기자회견을 열어 "총파업을 앞당기겠다"는 경고와 "대정부교섭에 나서자"는 대화제안을 번갈아 한 것은 이러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당장 이번 정부지침에 직접 영향을 받는 것은 민주노총의 22일 '쌍용차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와 23일 '박종태 열사 정신 계승 및 대정부 교섭 촉구 결의대회'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일단 서울 시내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금속노동자 결의대회' 장소를 쌍용차 평택공장 앞으로 옮겼다. 이승철 민주노총 대변인은 "무리하게 나서지는 않겠지만 계획된 집회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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