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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5월 28일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성년이 된 전교조를 다각도로 돌아본다. [편집자말]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게 파면 및 해임 처분 결정이 최종 통보된 가운데 지난해 12월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민 촛불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교사,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이 부당한 징계 철회와 일제고사 거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게 파면 및 해임 처분 결정이 최종 통보된 가운데 지난해 12월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민 촛불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교사,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이 부당한 징계 철회와 일제고사 거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생을 돌아보면 누구나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말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전교조'가 바로 그런 말이다. 전교조라는 이름 속에는 내 청춘의 온갖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1989년 5월 28일, 한양대 앞은 삼엄했다. 교문은 경찰에 의해 물샐 틈조차 없이 막혀 있었고, 전교조 창립 기념식에 참가하려던 교사들은 학교 앞 골목골목에 숨어 있었다.

그때, 누군가 지나가며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시장으로 가세요. 시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장은 신촌 시장을 의미하는 암호였고, 신촌 시장은 연세대를 뜻하는 말이었다. 급하게 지하철로 이동한 연세대에는 아직 비밀이 새지 않았는지, 막는 경찰이 하나도 없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출동한 경찰을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뛰어나와 막아주는 사이, 전교조 창립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겨레의 교육 성업을 수임 받은 우리 전국의 40만 교직원은 오늘 역사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을 선포한다. 오늘의 이 쾌거는 학생, 학부모와 함께 우리 교직원이 교육의 주체로 우뚝 서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며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 실천을 위한 참교육 운동을 더욱 뜨겁게 전개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민족과 역사 앞에 밝히는 것이다."

그날, 5월의 햇살은 따가웠다. 그러나 전교조의 출발은 늘 햇살 빛나는 나날이 아니었다. 이제는 기억을 되살리면 가슴 한 편이 아련해지는 수많은 일들이 그 이후에 일어났다. 굴비처럼 엮여 끌려가던 교사들이 있었고, 가입 교사에 대한 대대적 압박과 그에 뒤이은 해직 사태, 조직에 대한 탄압과 여론몰이식 매도가 그 당시 우리 앞에 놓인 정권의 무기들이었다. 나도 그해 해직된 교사들 중 한 명이었다.

20년 전... 해직됐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게 그때는 오히려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길거리 시위에서 만난 제자들은 휴지를 건네주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밤새도록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 가득한 토론을 나누던 그 시절의 제자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혹한 탄압이 있었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함께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없이 행복했다. 맞서야 할 분명한 상대가 있고, 바꾸어야 할 분명한 교육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동에는 오히려 망설임이나 고뇌가 필요하지 않았다.

머리를 맞대고 교육 선전 자료를 만들고, 공동수업이나 주제 분과 자료 제작을 위해 하루 종일 원고를 쓴 뒤 밤에는 다시 기획사와 인쇄소를 쫓아다니며 교정을 봐야 했지만, 이 일이 학교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당당했다.

한 달에 십여 만원의, 현장 교사들이 피땀으로 모아 준 생계비로 견디면서도,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청춘의 시절은 이제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 그리움의 시절로부터 벌써 스무 해가 흘렀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도 오월의 햇살은 따갑다. 스물이면 인간으로 치면 성년이 되는 나이다. 그런데, 청춘의 시간을 온전히 다 바쳐 일궈낸 전교조의 성년식이 마냥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왜일까? 가장 혈기 왕성한 나이에 나 자신의 전부를 바쳤던 조직이 어른이 되는 날, 오히려 가슴이 무겁고 답답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20년이 지난 지금, 교육의 '공적'(?)이 돼버린 전교조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 회원들이 지난 1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열린 '전교조 공안탄압 분쇄 서울교사 결의대회'에서 전교조 탄압 중단과 공정택 교육감의 구속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 회원들이 지난 1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열린 '전교조 공안탄압 분쇄 서울교사 결의대회'에서 전교조 탄압 중단과 공정택 교육감의 구속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지금 전교조는 안팎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그런 모습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은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온갖 교육 현장의 문제들은 모두 전교조 탓인 것처럼 매도당하고 있다. 인터넷에 전교조를 옹호하는 글 하나를 쓰면 비방 댓글이 줄을 잇는다. 철밥통이니 밥그릇 싸움이니 하며, 전교조에서 하는 모든 일은 이기주의로 매도된다. 극우 세력들의 비난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심지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도 비난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조직은 답보 상태에 있고, 학교 현장에서조차 전교조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전교조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희생양으로 인식된다. 교육감 선거의 구호가,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망가진다'는 것이고, 전직 대통령의 조문소를 경찰차로 막으면서 그 핑계까지도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불법 시위가 우려되어서'라는 국무총리의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진다. 전교조가 그만큼 영향력이 막강해서일까?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전교조의 힘은 결코 그렇게 강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미미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희생양이 하나 필요하고, 그 희생양이 전교조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 전교조는 우리 교육의 공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대체 왜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보면, 여전히 가장 열심히 교육하고 아이들 처지에 서서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전교조 교사임에도 상황은 그러하다. 그러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에 의한 사회적 희생양이 전교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교조 내부에도 그런 빌미를 줄 소지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정파 견해 너무 강조 말라, 소수의 관심사다

그동안 전교조는 지나치게 정파 견해를 내세우는 활동을 해 왔다. 선거 때마다 정파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왔고, 그 결과가 조직의 확대보다는 오히려 축소를 가져오기도 했다. 사실 일반 대다수 조합원에게 정파 문제는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일반 노동운동의 방법이 교사집단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교직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 집단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특색이 강하다. 대부분의 전교조 조합원은 양심적이고 올바른 교육을 해 보겠다는 생각에서 전교조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그런 조합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정파가 아니라,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문제다.

서로 상처를 주고, 결국은 함께할 수 없는 상대라는 인식까지 확대된다면, 조직은 공허한 형식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정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길, 정파를 넘어서는 것이 전교조를 살려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아울러 처음 전교조가 출발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전교조 출발의 이데올로기는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다. 그런데 요즘 이 세 덕목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일상화된 싸움만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교육의 세 축을 흔히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 전교조의 방향은 지나치게 교사 중심으로 잡혀 있다. 학생 인권 문제나, 학부모의 교육 참여권에 대한 문제는 그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초기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 학생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전교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이들은 그때보다도 더 심하게 입시에 짓눌리고, 사회는 더 반교육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전교조가 그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할 때에야 교육의 대안 세력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년 된 전교조, 비판 앞에 겸손해지길

 초·중학생들의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하루 앞둔 지난 3월30일 오후 전교조 서울지부는 서울시교육청앞에서 '일제고사 불복종 실천 명단 공개기자회견'을 열고, 학부모통신 등을 통해 일제고사의 부당함을 알린 조합원 122명(초등 47명, 중학교 24명, 고등학교 51명)의 명단과 소속 학교를 공개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전교조측이 기자들에게 명단이 적힌 보도자료를 나눠주고 있다.
초·중학생들의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하루 앞둔 지난 3월30일 오후 전교조 서울지부는 서울시교육청앞에서 '일제고사 불복종 실천 명단 공개기자회견'을 열고, 학부모통신 등을 통해 일제고사의 부당함을 알린 조합원 122명(초등 47명, 중학교 24명, 고등학교 51명)의 명단과 소속 학교를 공개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전교조측이 기자들에게 명단이 적힌 보도자료를 나눠주고 있다. ⓒ 권우성

달라진 현실 조건에서 교사들의 위상, 새로운 세대로 접어드는 아이들에 대한 인식도 전교조가 깊이 있게 천착해 봐야 할 문제들이다. 문제제기보다는 문제에 대한 대안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전교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로잡는 길일 것이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국민들의 전교조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은 진정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진정성은 순결함에서 나온다. 전교조의 순결함은 학생과 함께, 학부모와 함께, 아니 이 땅의 교육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겠다는 마음에서 나온다.

스무 살이면 이제 어른인 셈이다. 어른이 어른다운 것은 자신의 삶의 철학을 지니고 있을 때다. 스무 살, 성년이 된 전교조가 비판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문제 앞에서는 대안을 낼 수 있는 어른다운 조직이 되기를 나는 누구보다도 기대한다. 그것은 전교조야말로 이 땅의 교육의 진정한 대안 세력이며, 점점 기승을 부리는 기득권 중심의 교육 체제에 맞설 유일한 세력임을 믿기 때문이다.

스무 해, 수많은 사람들의 선한 눈망울 속에서 전교조는 커왔다. 전교조가 걸어온 발걸음은 세상이 전교조에 건 꿈과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꿈의 희망 속에서 나도 청춘의 한때를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전교조는 추억이고, 그리움이고, 여전히 꿈이고 희망이며 사랑이다. 그 씨앗을 세상으로 퍼트리기 위해, 이제 전교조는 성년의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볼 일이다.

그 해, 나 억지로 세상 밖으로 밀려났을 때
우리 반 교실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육십 몇 명
아이들의 눈을 기억한다
그렁그렁하던 눈망울에
할 말 못하고 목이 메이던
그 아이들

물참대 꽃처럼 서로 기대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들

물참대꽃은 피어 여름이 오고
그 해 여름처럼 햇살 또 쨍쨍한데
지금은 세상 어느 갈피에 숨어
저 혼자 피고 있을
그 아이들

바람은 불고,
물참대꽃은 흔들린다
상처가 머문 자리에 돋아난 새 살처럼
내 몸이 기억 때문에 간지럽다 - 졸시 <물참대>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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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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