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5월 23일 아침, 온 국민은 '설마?' 하는 마음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충격으로 정신적 패닉상태에 빠져 들었다. 안동지역을 포함한 경북북부지역민들도 하던 일을 잠시 멈추었고, 적극 지지자들은 삼삼오오 차를 몰아 봉하마을로의 길을 재촉했다.
안동지역의 시민사회단체인 '안동평통사'와 '참교육학부모회', 민주당과 전교조, 노사모 및 시민광장 회원들은 오후 2시 서둘러 신한은행 앞 문화의 거리에 대형천막을 세우고 분향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분향소를 찾은 몇몇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오후 5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민장'으로 결정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안동시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의 추모행사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오후 6시, 고 노무현 국민장 안동지역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공동위원장에는 윤지홍 교수(안동대·민주당 안동시당원협의회 위원장)와 이천우 목사(동안교회)가 추대되었고, 집행위원장은 박명배(전 열린사회를위한안동시민연대 사무국장)씨가 맡았다.
26일 오후 현재, 문화의 거리 분향소에는 약 2천여 명의 시민들과 지역의 기관장 및 단체대표들이 조문을 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5월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화인을 남기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2009년 5월 23일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새롭게 씌여지고 있다. 조선조 6백년을 통털어 아니 해방 이후 60여 년의 시간 속에서 나라와 국민의 대통령으로 봉직했던 분이 전 민족적인 화두를 던지며 온몸을 던진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지도층과 국민들의 마음은 정신적 충격을 넘어서서 이 '엄중한 사실과 현실' 앞에서 깊은 상념에 빠져 들고 있다.
정치사회적 국면은 어느 누구도 아예 한치 앞을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젖어 들고 있다. 누구나 길을 걷다가도, 일터에서도, 머물고 있는 현장에서도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하는 깊은 생각에 잠겨 들고 있다. 5월은 또다시 우리 모두에게 붉은 핏덩이를 토하고 싶은 고통과 상처를 화인(火印)처럼 선명하게 남겨놓고 있다.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는 서울과 봉하마을의 추모 현장 분위기는 5천만 국민의 생각과 행동을 집단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겨 놓은 이 엄청난 화두와 죽음으로 보여준 가치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국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눈물을 흘리며 바보처럼 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차려진 안동시 문화의 거리에는 26일 하루에도 5백여 명의 시민들이 추모의 마음을 가지고 줄을 이어 찾아왔다. 향을 피우는 내내 숙연하던 젊은 여성 한 분은 끝내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갈구했던 20대의 청춘이 이제 어버이의 마음으로 미래를 이끌어 갈 자녀들에게 다시 행동으로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국화꽃 한 송이를 정성스럽게 고이 놓는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들. 작디 작은 꼬막 손은 무엇을 쓰고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를 순박하게 기억하는 아이들은 곧 민주시민으로 반듯하게 자라날 것이다.
여고생들의 묵념을 환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계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잠시나마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사람사는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이들이, 작은 소망을 방명록에 적고 있는 그이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고 앞날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온 5살 꼬마는 아직 글을 깨우치진 못했지만 마냥 신이 났다. 잠시 농촌일손을 접고 분향소를 나온 이 젊은 부부는 오랜만에 시내나들이를 했다. 대학 시절 자주와 민주주의, 통일을 위해 애썼던 이 부부는 생각이 착잡했다.
종교와 직업, 사상과 입장은 다르지만 각계각층 국민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두 분의 수녀님, 직장일을 마치고 달려온 40대 후반의 넥타이 부대, 노사모 회원이자 안동시민광장 회원들이 함께 분향소를 찾아 바보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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