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란 일을 자랑으로 여겨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우세스럽게 여겨 본 적 또한 없습니다. 다만, 문학에서 읽는 골목동네라든지, 신문에서 기사로 읽는 골목동네라든지, 영화나 연속극에 나오는 골목동네라든지, 아니면 동화책에 그려지는 골목동네라든지, 때때로 사진쟁이 눈에 비치는 골목동네는 언제나 '가난 = 꾀죄죄 = 낡음 = 재개발 = 쫓겨남 = 사라지는 추억 = 옛날이야기'일 뿐입니다. 예나 이제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땅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아파트에 삽니다. 아파트가 싫든 아파트에 살 만한 돈이 없든 하는 사람들은 빌라에 삽니다. 기름이나 연탄으로 때는 집에서 살아가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으며, 기름이나 연탄으로 때는 집이 모인 골목동네는 '주말을 맞이해 으리으리한 장비를 앞세운 사진쟁이'들한테 모델이 되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바뀌기 나름이고, 바뀌는 세상에 따라서 달리 바라보려는 눈길을 탓할 수 없습니다. '사는 사람(주민)'이 아닌 '구경하는 사람(관광객)' 눈으로서는 '아직도 이런 골목길이 남아 있어?' 하는 놀라눈 눈길일 터이나, 구경하는 사람이 아닌 사는 사람 생각으로는 '돈이 없어 그냥 사는 집'이기도 하지만, '먼 옛날부터 뿌리내려 살냄새 짙게 밴 고향'입니다.
저는 이 고향 골목동네를 그저 제 고향 모습 그대로 느끼고 싶어 골목마실을 합니다. 새벽에도 하고 아침에도 하고 낮에도 하고 저녁에도 하고 밤에도 합니다. 비오는 날에도 하고 눈오는 날에도 하고 흐린 날에도 하며 맑은 날에도 합니다. 그러던 지난 5월 24일 일요일 낮, 잠깐 구멍가게에 들러 빨래비누 몇 장 사려고 나선 골목마실에서 고추꽃을 만납니다. 하얀 고추꽃이 이제 피나 저제 피나 하고 날마다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은 꽃그릇도 많으나, 몇 군데 꽃그릇에서는 어른 새끼손톱만 하거나 아기 손끝만 한 앙증맞은 하얀 꽃망울이 살며시 고개 숙인 채 햇볕을 머금고 있습니다.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한테는 보이지 않는 하얀 꽃입니다. 서둘로 길을 나서려는 사람한테도 보이지 않는 하얀 꽃입니다. 자동차를 골목에서도 무섭게 싱싱 내모는 사람한테도 보이지 않는 하얀 꽃입니다. 천천히 거닌다 하여도 무릎을 꿇고 고즈넉히 들여다보려는 매무새가 아니어도 보이지 않는 하얀 꽃입니다.
골목길 조그마한 꽃그릇에 한 포기씩 심어 가꾸는 고추꽃은, 꼭 이만큼 고추하고 눈높이를 맞추어 다가서려는 사람한테만 베푸는 '여름 문턱' 꽃선물이요 꽃잔치입니다. 마침, 고추꽃과 함께 방울토마토 노오란 꽃도 활짝활짝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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