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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옆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옆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PRESS 엄금"

김해 봉하마을 노사모 사무실 앞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며칠 뒤 이 종이는 사라졌다. 대신 지금 이런 종이가 붙어 있다.

"<조선><중앙><동아><KBS>는 불가"

모든 언론에 대한 불신이 조중동 그리고 KBS로 좁혀진 것이다. 그러면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은 사라진 것일까? 글쎄, 다른 기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느낌은 'NO'다.

563. 내가 25일 밤 봉하마을에 도착해 받은 기자 등록 번호다. 즉 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봉하마을에 도착한 563번째 기자라는 뜻이다. 이미 봉하마을에는 수백 명의 기자가 다녀갔고 지금도 수백 명의 기자가 상주하며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기자를 환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환영은커녕 큰 불신과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27일 봉하마을에서 만난 한 추도객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을 결심한 이유를 언론이 잘 보도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 보복, 언론의 표적수사가 이런 참극을 빚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가 빠졌다. 언론의 책임. 언론은 검찰과 작전이라도 짠 듯이, 검찰의 말을 그대로 받아쓴 뒤 세상에 전하지 않았나."

28일 땡볕 아래에서 자원봉사를 한 김모씨의 말도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을 그렇게 모욕 준 게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뿐이었나? 언론도 거기에 한몫하지 않았나. 언론이 이번에도 비판의 대상에서 빠져나가려 한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이 언론을 냉대하는 것 아닌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돌변한 언론의 태도

이들의 말대로다. 언론은 지금 정부와 검찰의 책임론을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책임은 거론하지 않거나 아주 작게 다룬다.

검찰은 많이 알려진 대로 자신들이 수사하는 사건을 언론에 흘리며 피의자를 압박한다. 이는 검찰이 자주 구사하는 전술이다. 그리고 언론은 검찰의 말을 매우 자주 그대로 받아쓴다. 그것이 진짜 '팩트'인지 아닌지는 거의 따지지 않는다.

피의사실공표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검찰과 언론은 이를 오래전부터 어기고 있다. 검찰은 "언론이 원해서"라는 이유를 들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근거를 댄다.

하지만 우리 언론이 정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복무했을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언론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는 대개 언론인이 누군가에게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서 쓰는 수사로만 머물 때가 많다.

사실 조중동만 탓할 것도 아니다.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한 것은 조중동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이 언론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짓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도 언론의 정도를 가며 사명을 다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많은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그를 '노간지'라 불렀다. 현직 이명박 대통령과 비교되면서 '노간지 열풍'이 분 적도 있다. 어떤 언론은 이런 현상을 두고 "낯간지럽다"고 썼다. 현직에 있을 땐 그렇게 미워하다가 퇴임 후에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꼬집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많은 언론은 지금 그를 다시 조명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무능력을 거론했던 지면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서민 대통령"이라는 평가로 채워지고 있다. 1억 원짜리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는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던 언론은 지금 앞다퉈 검찰 수사의 부실함을 지적하고 있다.

'노간지 열풍' 속 사람들의 이중성을 "낯간지럽다"고 꼬집던 언론들은 지금 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을 공개하며 '이게 바로 노간지'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물론 고인에 대한 예의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과 이후가 다른 언론의 보도 태도 역시 낯간지럽다.

낯간지럽지 않은 사과와 반성은 언제쯤

봉하마을 주민들은 지금 "우린 언론에 이야기하지 않겠다"며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조중동 기자들은 봉하마을에서 신분을 감추며 '위장 취재'를 하고 있다. 노트북에는 자기 회사 스티커도 붙어 있지 않다.

한때의 유행어처럼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일까, 아니면 "국민의 알 권리" 거론하길 좋아하는 언론의 낯간지러운 태도 때문일까. 세상의 인심은 투박하지만 솔직한 법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하고만 '악연'이 아니었다. 언론과도 참 오랜 세월 대결을 펼쳤다. 지금도 봉하마을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땡볕 아래에서도 길게 줄 서 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에게 유독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뙤약볕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땀보다 눈물이 더 많다.

언론인들의 낯간지럽지 않은 사과와 반성은 언제쯤 이뤄질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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