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작가 조세희는, 거대한 크레인과 높이 솟아오르는 콘크리트 덩어리로 치장중인 인천시를 모델로 삼은 은강시를 '기계도시'라 부른다. 그리고 작가는 100여 년 동안 변화를 거듭해온 도시와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민들의 삶과 애환을 소설에 담아낸다.
암튼 지난 2월 재개발에 의한 용산 철거민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사람들에게 다시 각인된 '난쏘공'의 무대가 된 인천. 이 도시에서 잊혀지지 않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과거 제물포를 강제로 개항시킨 일제가 오늘날의 중구 일대에 왜병을 주둔시키고 개발하자, 그곳에서 살던 조선민들은 삶터에서 쫓겨나 수도국산(송현산)일대 현재의 송현동-송림동으로 몰려들었다. 참혹한 한국전쟁으로 뭐하나 가진 것없이 피난 온 사람들과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올라온 이들도 소나무가 울창했던 산 위에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천막을 치고 살다가 힘겹게 일해 번 돈으로 시멘트와 벽돌, 슬레이트를 조금씩 사서는 등짐을 지고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며 옮겨 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송림동 달동네가 바로 잊지 못하는 곳 중 하나다.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온 서민들의 삶터 달동네특히 1960-70년대 산업화-도시화 물결 속에서 전라-충청지역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는데, 당시 산꼭대기까지 점차 작은 집들이 들어차면서 수도국산 비탈에만 3천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하면서 '달동네'라 불렸다.
달동네라 함은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미로 유래는 '달나라 천막촌'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라고도 한다.
모두가 고단하지만 참 열심히 살았던 60-70년대를 살아온 우리 어머니와 외가족들이, 북에서 피난와 고생하시다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없이 삶을 이어온 그곳이 바로 송림동 달동네이기도 하다. 90년대 초반 중학시절 어머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송림산 위에 자리한, '언덕 위에 불탄' 중학교를 3년간 다니면서 주변의 비좁은 골목골목을 친구들과 누비기도 했다.
그런 옛추억의 달동네와 마을이 '명품도시'를 외치는 인천시에 의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주거환경개선'이란 명목으로 인천시가 지난 2007년 11월부터 시작해, 2010년까지 749억원을 들여 시내 8개 구역에 아파트 등을 새로 짓기로 한 재개발사업으로 송림동 일대 달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천시의 개발방식은 철거민 참사가 벌어진 용산에서도 행해지는 '전면개량' 방식이다. 삭막한 아파트가 아닌 숲으로 되돌리면 어떨까 싶은데 말이다.
그렇게 수 십년간 살아온 서민들의 삶터마저 빼앗는 인천시의 무리한 개발로 달동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달동네는 살아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비탈길과 골목을 철없는 까까머리가 그랬던 것처럼 둘러보니 달동네는 살아 숨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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