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자꾸 더 슬퍼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같이 슬퍼하고 있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영화 <다우트>에 나온 대사다. "케네디 대통령이 죽었을 때, 우리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함께 모여 사라진 희망에 대해 공감하면서 서로에게 연대감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함께 고통을 나누며 끔찍한 경험을 나누었고, 그렇게 그 슬픔을 받아들였습니다." 추모와 애도의 행렬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낀 어떤 연대감이었다.
슬픔에 공감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연대의 정치라 한다면, 나는 이 슬픔을 함께 느꼈다는 것만으로 이미 그 어떤 때보다 값진 연대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슬픔이 연대를 넘어 치유와 화합의 정치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랬다. 그게 "아무도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는 고인의 뜻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영국의 다이애나 비는 출신성분과 언행으로 영국 왕실의 보수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왕실 내에서 다이애나 비는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적인 인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소외된 이웃에 대한 지속된 그녀의 관심은 '오지의 왕족'이라는 찬사를 얻게 하고, 결국 영국 왕실은 다이애나 비에 대한 국민적 사랑 덕분에 왕실의 위엄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다이애나 비가 서거하자 영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책임 논란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지만, 그녀를 추모하며 흘린 눈물의 결과는 놀라웠다. 영국인들의 우울증은 급감했고, 이를 '다이애나 효과'라고 부를 정도였다. 왕실과 사이가 나빴던 다이애나 비였지만 그녀의 죽음 앞에서 영국의 왕실도 최대한 예를 갖춰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고 이를 통해 왕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거부감이 상쇄되었다.
다이애나는 한때 갈등의 상징이었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하나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 영국인들을 묶어주는 화합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가시는 길에라도 그동안 그가 해내지 못했던 이런 화합의 상징이 되기를 바랬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공감이 아니라 다른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슬프지 않는데 슬프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너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하는 심보, 참으로 고약하다.
더구나 현 정권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를 '다른 전직 대통령과의 형평을 고려해서' 거절했다는 얘기, 서울광장 개방을 시민들의 애도가 '정치적 목적으로 변질되는 것이 우려되어서' 불허했다는 얘기, 경찰의 버스벽을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유로 유지한다는 얘기, 심지어 오늘 영결식장에 '노란 스카프'를 반입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얘기 등은 단순히 이 슬픔에 동참하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겠다는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경악스러웠던 것은 북핵 문제에 대한 현 정권의 대응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건데,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정부가 보여야할 반응은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초상집에 불을 지른 이들에 대한 국민정서를 대변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만약 현 정권이었다면 북핵실험 직후에 PSI 가입을 바로 선언해서 무력충돌의 긴장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현재 남한 사회의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북한 당국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집중했을 것이다.
국제 사회의 발빠른 움직임은 우리가 PSI에 가입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놀라움에서 비롯된 것이니, 적어도 그들이 '보수' 정권이라면 남한만이라도 한반도 핵위기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우방국가들의 우정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초상집 분위기에 불지른 북한을 욕하는 일을 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시작전통수권까지도 다시 돌려주겠다고 한나라당이 발벗고 나선 마당에, 강대국 형님들을 모시는 어리고 약한 동생 흉내라도 이 애도의 분위기에 편승해 '정치적'으로 제대로 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국민 정서를 무시한 정부가, 정치를 하지 않는 정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차피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문제는 우리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으로는 어떠한 외교적, 현실적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저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조차 1976년 판문점 비무장지대에서 미루나무의 가지를 전지하던 미국의 노무장교들이 북한군의 도끼에 의해 살해된 사건에 대한 대응을 미루나무를 베는 것으로 갈음하지 않았었던가.
나는 현 정권이 이 슬픔에 아무리 공감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 슬픔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국제 사회에 전달하고자 하지도 않았다는 것, 또한 이런 시기에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시하는 외교적 어법들을 제대로 어필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들에게 지금 북한이 당장 쳐들어올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울고 불고 할거냐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 현 정권은 실용에도 평화에도 국민통합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신하게 되었다.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노 전대통령을 비판하는 보수세력에게 다시 묻고 싶다. 정말로 화해와 상생을 바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고개를 조아리는 백성을 바라는 것인가. 누가 이 슬픔에 함께 하지 않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는 묻고 싶다. 과연 누가 이 슬픔을 '정치적'인 고려조차 하지 않고 무시하는가. 누가 이 슬픔을 욕되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