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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동정의 눈길

 

.. 전국대회에서 승승장구하는 그놈들은, 저희를 동정의 눈길로 볼 뿐입니다! ..  <우라사와 나오키/서현아 옮김-야와라 (1)>(학산문화사,1999) 99쪽

 

 '승승장구(乘勝長驅)하는'은 '내처 이기는 '이나 '잘나가는' 쯤으로 다듬습니다. '거침없는'이나 '거칠 것 없는'으로 다듬어도 어울립니다.

 

 ┌ 동정(同情)

 │  (1)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

 │   - 동정이 가다 / 동정을 느끼다 / 동정을 보이다

 │  (2)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풂

 │   - 동정을 구하다 / 동정을 베풀다 / 따뜻한 동정의 손길이 아쉽다

 │

 ├ 동정의 눈길로 볼 뿐

 │→ 딱하다는 눈길로 볼 뿐

 │→ 불쌍하다는 눈길로 볼 뿐

 │→ 가엾게 여기는 눈길로 볼 뿐

 │→ 안됐다고 여길 뿐

 └ …

 

 "동정의 눈길"이 아니라 "동정 어린 눈길"이나 "동정하는 눈길"입니다. 한자말 '동정'을 쓰고 싶다면 토씨 '-의'를 붙이는 말투가 아닌 씨끝 '-하는'을 붙여 "동정하는 눈길"로 적든, "동정 어린 눈길"로 적든 해야 올바릅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 우리 말 '딱하다'나 '불쌍하다'나 '가엾다'나 '안되다'나 '안쓰럽다' 같은 낱말로 털어낼 수 있다면, "딱하다는 눈길"이나 "불쌍하게 여기는 눈길"이나 "가엾게 생각하는 눈길"이나 "안되게 보는 눈길"이나 "안쓰러워 하는 눈길"로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동정'을 털어낼 수 있다면, 사이사이 꾸밈말을 넣으면서 "저희를 참 불쌍하게 볼"이라든지 "저희를 몹시 딱하게 볼"이라든지 "저희를 더할 나위 없이 안쓰럽게 볼"이라든지 "저희를 누구보다 안됐다고 볼"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 저희를 불쌍하게 볼 뿐입니다

 ├ 저희를 딱하게 볼 뿐입니다

 ├ 저희를 안쓰럽게 볼 뿐입니다

 ├ 저희를 안됐다고 볼 뿐입니다

 └ …

 

 마음을 쓰기 나름이며, 생각을 하기 나름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조금 더 알맞게 쓰고자 마음을 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알맞게 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나누는 말을 한결 살갑게 쓰고자 마음을 쏟을 수 있으면 언제라도 살갑게 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건네는 말을 좀더 아름다이 갈고닦고자 마음을 바칠 수 있는 매무새라면 한결같이 아름다이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 동정이 가다 → 딱한 마음이 들다 / 걱정하게 되다

 ├ 동정을 느끼다 → 가여움을 느끼다 / 불쌍하다 느끼다

 ├ 동정을 보이다 → 내 일처럼 도와주다 / 딱한 마음에 걱정하다

 ├ 동정을 구하다 → 도움을 바라다

 └ 동정을 베풀다 → 따스함을 베풀다 / 사랑을 베풀다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니 제대로 못 쓰는 말입니다. 곰곰이 따지지 않으니 올바로 못 쓰는 글입니다. 속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니 따뜻한 사랑을 담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ㄴ. 동정의 여지는 없어

 

.. '요령이 이렇게 없는 녀석을 봤나. 차라리 주문서에 써서 제출하면 모를 텐데. 바보처럼 솔직하게. 안 돼, 안 돼, 이 녀석에게 동정의 여지는 없어!' ..  <다카하시 신/박연 옮김-좋은 사람 (3)>(세주문화,1998) 8쪽

 

 '요령(要領)'은 '재주'나 '머리'나 '꼼수'로 다듬어 봅니다. '제출(提出)하면'은 '내면'이나 '내놓으면'으로 손보고, '솔직(率直)하게'는 '꾸미지 않고'나 '있는 그대로'로 손봅니다. '여지(餘地)'는 '구석'이나 '자리'로 손질해 줍니다.

 

 ┌ 동정의 여지는 없어

 │

 │→ 불쌍히 여길 구석은 없어

 │→ 딱하게 생각할 마음은 없어

 │→ 가엾게 볼 수 없어

 │→ 안쓰럽게 돌아볼 수 없어

 └ …

 

 다른 분들은 어떨까 모르는데, 저한테 '동정'이란 우리 옷에 다는 헝겊 오리입니다. '불쌍함'이나 '딱함'을 가리키는 한자말 '동정'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동정'을 꺼내면, 속으로 '옷이 어떠하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나' 하면서 씨익 웃곤 합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한자말 '동정'을 널리 쓰는 분들은 우리 옷에 다는 '동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동정빛'이란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 동정빛과 흰빛이 어떻게 느낌이 다른가를 알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 걱정스럽지 안아

 ├ 근심되지 않아

 ├ 불쌍하지 않아

 ├ 딱하지 않아

 ├ 안쓰럽지 않아

 └ …

 

 그렇지만 모르는 분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모르는 분들이 하나하나 알려고 애쓰지 못하는 매무새는 탓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모르는 대목은 탓할 수 없습니다. 그저, 모르는 분들이 모른다고 하여도 당신을 깨우쳐 주는 사람을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생각하고, 저 스스로 아직 모르는 대목이 있음을 헤아리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한다면 얼마나 즐거우랴 생각합니다.

 

 ┌ 걱정해 주기 싫어

 ├ 근심해 주기 싫어

 ├ 불쌍히 여기기 싫어

 ├ 딱하게 여기기 싫어

 ├ 안쓰럽게 생각하기 싫어

 └ …

 

 우리 말을 잘 모르면 잘 모를 뿐입니다. 우리 터전을 잘 모르면 모를 뿐입니다. 우리 나라나 겨레를 잘 몰라도 모를 뿐이에요. 역사를 모르고 문화를 몰라도 아직은 모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말을 잘 아는 사람이 조곤조곤 따뜻하게 가르쳐 주면 됩니다. 우리 터전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 사랑과 아낌을 듬뿍듬뿍 베풀어 주면 됩니다. 역사를 아는 사람이 역사를 손쉽게 풀어내어 일러 주고, 문화를 아는 사람이 문화를 넓고 깊이 보여주면서 맛보게 하면 됩니다.

 

 앎이란 자랑이 아니며, 모름이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앎이 하나 더 있다고 우쭐댈 구석이 없고, 모름이 하나 더 있다고 고개숙일 구석이 없습니다. 늘 같고 언제나 한 자리입니다. 오늘은 제가 하나 더 알는지 모르나, 내일은 제가 하나 더 모를 수 있어요. 그뿐입니다. 말을 다루든 경제를 다루든 농사일을 다루든, 언제나 매한가지입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내어 가다듬을 뿐입니다. 나눌 수 있을 만큼 마음을 쏟아 갈고닦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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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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