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5분짜리 동영상 하나가 1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것은 EBS <지식채널e>의 '17년 후' 편이다. '17년 후'는 1990년 영국의 존 검머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자신의 딸과 함께 영국의 쇠고기를 먹으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17년 후인 2007년, 존검머의 친구 딸인 엘리자베스 스미스가 광우병으로 죽었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이 동영상이 화제가 되자 EBS 경영진은 <지식채널e> 제작진에 방송중단 지시를 내렸고, 청와대의 외압설까지 이어졌다. 자칫 사장될 뻔 했지만 어려움 끝에 방영(5월 12일)된 '17년 후'는 광우병의 위험을 알리고, 광우병 촛불집회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1초' 편부터, '17년 후', 지난해 8월 마지막 작품이 된 '괴벨스' 편까지 3년 간 지식채널e를 진두지휘하며 EBS의 간판프로그램으로 키워낸 EBS 제작본부 김진혁 PD를 만나봤다.
'17년 후' 만든 <지식채널e> 김진혁 PD를 만나다
<지식채널e>를 통해 스타 PD의 반열에 오른 그는 처음에는 PD가 아닌 영화, 드라마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김 PD는 "특별히 PD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해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영상분야의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PD는 EBS의 PD 공채에 합격하며 영상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EBS는 그가 원했던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는 대중과의 호흡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김 PD는 "EBS는 수능과 어린이 프로그램과 같은 시사·교양·다큐 프로그램의 비율이 높았다"며 "처음에는 원하는 분야가 아니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영상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대중과 호흡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김 PD가 생각했던 2%의 아쉬움은 대중과의 호흡, 즉 '대중성'이었다. EBS는 양질의 프로그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이 부족했다. 김 PD의 아쉬움은 선배의 권유로 기획하게 된 <지식채널e>를 통해 채우게 됐다.
일명 '5분의 미학'이라고도 불리는 <지식채널e>의 첫 모습은 3분 가량의 동영상으로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김 PD는 "방영초기 사실 전달만을 했기 때문에 재미도 없고 그다지 새로운 지식도 없는 어중간한 프로그램이었다"며 "기승전결을 가지고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5분짜리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5분의 짧은 시간임에도 지식채널e는 지식전달과 함께 가치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며 인지도를 넓히기 시작했다. 그 후 6개월 뒤 '박지성' 편을 통해 <지식채널e>는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김 PD는 박지성 편을 통해 "EBS는 내용은 좋으나 너무 뻔한 내용으로 대중성이 없다는 지적을 극복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3분짜리 프로가 5분짜리 프로된 사연이렇게 해서 <지식채널e>는 자극적인 소재 없이 대중성을 확보했으며, 소외되고 배척된 사람·지식에 대한 이야기 전달을 통해 지식을 전달해 '지식채널e즘'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김 PD는 "재미가 있으면서 공부까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50분의 다큐멘터리보다, 5분을 투자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 '지식채널e즘'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식채널e의 특징은 단순한 사건과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 PD는 "제작진이 지식을 계몽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제작진은 단순히 화두를 던지고 시청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감한 주제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부담감은 없었냐는 질문에 김 PD는 "부담감은 있지만 100% 옳다는 확신이 들면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을 했다"며 "시사·교양·다큐를 제작하는 사람이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며 상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의 제목만큼 '지식'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있어 지식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일까? 그는 지식을 '정보'와 '가치'로 나눴다. 또한 정보라는 것은 단순한 사실을 말하지만 '가치'를 담고 있는 지식은 메시지를 전한다고 보았다. 어떠한 정보가 누구 앞에 놓이느냐, 어떤 맥락 속에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의미화 된다는 것이다.
"나는 화두만 던질 뿐, 판단은 시청자 몫"
<지식채널e>는 그런 면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치'로서의 지식을 제공했다. 사실만을 보여주지만 그것들을 통해 맥락을 만들어 나가고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다.
그는 "중요한 사실(fact)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우리 프로그램을 비판하기는 어렵다"며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정보와 가치로서의 지식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어떠한 사실이 정보성만 강하다면 그 안에서 가치를 찾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어떠한 사실이 가치로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정보전달의 균형을 맞춰나간 것이다.
김 PD는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의심할 줄 아는 사고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김 PD는 "사안에 대한 허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며 "어떠한 지식도 없다면 무비판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PD의 개인 블로그에는 <지식채널e>의 'e'가 180도로 뒤집어져 'a'가 돼있다. 이것은 김 PD가 올바르지 못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한'이자 '아쉬움'이라고 한다. 김 PD는 "YTN 돌방영상 중지 사태, MBC PD수첩 사과 사건 등 모든 언론이 보이지 않는 검은손에 영향을 받고 있다"며 "이 검은손을 어쩔 수 없다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는 김 PD. 그는 <지식채널e>를 통해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희대학교 학보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