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게 있든 없든지 간에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풍경과 마주치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하물며 다른 나라의 시장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못 보던 진귀한 물건을 구경하고, 또 현지인의 삶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장 구경은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코스입니다.
그래서 우린 이스파한의 최대 시장인 보졸그 바자르에 들어가기 전에 한껏 들떴습니다. 아이들도 모스크나 궁전 등 볼거리 위주의 유적지를 탐방할 때보다 신나했습니다. 거기다 애들에게 잔돈을 몇 푼씩 쥐어줬더니 그 돈을 쓸 재미에 더 들떴습니다.
앞에서 이란은 유적지와 삶이 혼재해있다고 했는데 바자르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스파한의 최대 시장인 보졸그 바자르의 출입문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이맘광장 북쪽에 있는 이 출입문의 천장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17세기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레자 아파시의 작품으로 우즈베키스탄 인들과 샤 아바스의 전쟁을 묘사한 프레스코화입니다. 가장 적나라한 삶을 보여주는 시장에서 또한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걸 보면 이란이 5000년 역사의 나라라는 게 실감이 납니다.
벽화 아래쪽에는 다소 조잡해 보이는 카펫을 리어카에 잔득 실어놓고 파는 상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게 수염을 기르고 승복을 입은 성직자입니다. 이란에서 가끔씩 성직자를 보게 되는데 그들의 모습은 또한 이란의 특별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이 리어카 옆 성직자는 늘 이곳에 있는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에서도 그의 모습을 봤는데, 리어카 옆이 그의 아지트인 모양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여행가는 사람은 혹시 보졸그 바자르 출입문 벽화 아래서 성직자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시장은 좁고 긴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구조로 돼 있으며 돔 모양의 지붕이 덮여 있는 반 개방형 구조입니다. 그러나 답답한 느낌은 안 줬습니다. 왜냐하면 천장이 매우 높고 또 천장에는 작은 구멍을 뚫어 공기의 순환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현지인들이 장을 보러 나올 시간이 안 돼서 그런지 바자르는 한산했습니다. 그래서 느긋하게 구경할 수가 있었습니다. 카펫, 은세공, 향신료 등 이란의 특산품을 취급하는 가게도 즐비하고, 또 현지인들이 이용할 것 같은 과일가게나 견과류가게, 최신 유행을 알 수 있는 옷가게도 많습니다.
우리는 먼저 파란 색 구슬을 파는 가게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목걸이나 구슬, 귀고리 등 여자들의 장신구를 파는 가게입니다. 시장에는 이런 가게가 많았습니다. 이란 여자들이 검은 차도르로 몸을 가리고 있지만 꾸미는 걸 은근히 즐기는 모양인지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액세서리나 귀금속을 파는 가게입니다.
큰 애는 친구들에게 줄 메달을 사고 싶어 했습니다. 강낭콩 크기만한 파란 색 메달이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이걸 몇 개 사서 애들에게 목걸이를 만들어서 줄 생각입니다. 우리가 100원짜리 구슬 몇 개를 사고 있을 때 우리 옆에서 어떤 여자는 우리가 산 파란 색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린 메달 정도로 이 구슬을 이용했는데 그녀는 구슬로 목을 다 감을 모양입니다. 애들이나 걸고 다니는 구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란에서는 여자들이 치장하는 액세서리인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비즈를 많이 하고 다니는 것처럼 나중에 보니까 이란 여자들은 커다란 파란 구슬을 목에 걸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린 구슬을 사고 나서 마그넷을 사려고 찾아다니다가 출입문을 놓쳤습니다. 미노스왕의 미궁에 갇힌 것 마냥 어디가 어딘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보졸그 바자르는 골목과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현지인이 아니면 길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물건 구경하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대담한 작은 애는 그냥 다니다보면 나올 것이라고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는데 소심하고 겁이 많은 큰 애는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맘광장을 찾아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사려고 했던 마그넷을 아직 못 샀지만 큰 애가 겁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나갔다가 다시 바자르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해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출입문을 통해 바자르로 들어가 출입문과 일직선으로 연결된 골목만 다녔습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실컷 구경했지만 아직 우리 목적인 마그넷을 사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마그넷은 안 보였습니다. 지나가는 청년에게 머리에 쓰는 시늉을 하면서 '히잡'이라고 했더니 어떤 가게를 일러 주었습니다. 우리가 보고도 지나쳤던 가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가게에는 머플러만 잔득 걸려있습니다.
가게를 지키고 있던 남자가 구석에서 마그넷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이 많이 가는 곳에는 머플러를 전시해놓고 마그넷은 구석에 처박아 놓은 걸 보면 요즘 대세가 머플러인 모양입니다. 이곳 이스파한은 특히 차도르 보다는 머플러를 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머플러가게 아저씨는 여러 컬러의 마그넷을 보여주었습니다. 베이지 색, 그린 색, 블랙, 자주 색 등. 작은 애는 그린 색을 고르고, 큰 애는 검정 색을 골랐는데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아저씨에게 씌워달라고 했더니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남녀가 유별한 이란에서 여자에게 마그넷을 씌워준 적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외국인이라 마그넷을 쓸 줄 모르고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늙은 아저씬 마그넷을 씌어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처음 해보는 거라 그도 요령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참 헤매다가 씌워주었습니다. 둘 다 어울렸습니다. 작은 애는 귀여웠고, 큰 애는 견습 수녀님처럼 보였습니다.
마그넷을 사서 밖으로 나오면서 견과류가게에서 호두를 500원어치 샀습니다. 호두가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싸서 500원어치도 세 주먹은 됐습니다. 우리에게 호두를 파는 할아버지는 아주 적은 양의 호두지만 저울에 정확하게 달아 주었습니다. 맛도 좋았습니다. 우린 고소한 호두를 씹어 먹으면서 보졸그 바자르를 빠져나왔습니다.
보졸그 바자르의 좋은 점 |
1. 샤프란 등 향신료, 호두와 같은 견과류를 저렴하 게 살 수 있다 2. 진귀하고 다양한 물건이 많아 구경거리가 많다 3. 사라고 보채거나 하지 않아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다 4.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다. 적은 양도 저울에 달아서 정확하게 계산해서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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