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즉 법무법인은 법률가 집단이다. 그것도 법무법인 최상위권에 꼽힌다면 막강한 법률 전문가 집단일터로 볼 수 있다. 보통 소속 변호사 숫자만 수백 명에 이른다.
이 같은 법률전문가 집단인 법무법인을 상대로 1심과 2심에서 패소하고 상고심인 대법원에서 승리한 사람이 있다. 김창식(56)씨다.
중앙대학교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지난 2006년 1월 해고당한 후 자신의 해임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학교 측이 김씨의 해임을 의결한 징계가 타당하다며 중앙대의 손을 들어줬다.
2007년 5월 31일 1심 선고 직후 김씨의 변호를 맡았던 K 변호사는 '전관의 장난 때문에 역부족이니 자신보다 더 영향력이 큰 변호사를 찾으라'며 변론비용을 더 지급하겠다고 하는데도 변호를 거절했다. 중앙대를 대리해 변론을 맡은 상대가 유명 법무법인이었기 때문. 당시 해당 법무법인은 김씨를 상대로 한 소장에 변호인단만 여러 명을 올렸다.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이 법무법인 소속 간판급 변호사들의 이름을 공동대리인으로 올렸던 것이다.
자신하는 변호사가 없어 결국 김창식씨의 나 홀로 소송이 시작되었다. 2심 재판에서 스스로 공부해 터득한 법률지식만 가지고 중앙대와 법무법인에 맞섰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에도, 2008년 12월의 2심 결정도 1심과 같았다. 중앙대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타당하다며 김씨의 해고가 문제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
하지만 상고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5월 14일 대법원 민사 제1부가 극적으로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해임처분의 무효 확인 청구, 해임처분이 무효임을 전제로 한 미지급 임금 등 청구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는 주문을 선고했다.
1심과 2심에서 패소하고 최종심인 대법원에서 뒤집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별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게 법원가 정설이다. 그것도 초대형 법무법인을 상대로 자신이 스스로 각종 소송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는 나 홀로 소송으로 승소를 이끌어냈기에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도대체 왜 중앙대는 당시 교학계장으로 재직 중이던 그를 해임해 4년씩이나 소송에 매달리게 되었으며, 김씨는 어떻게 했기에 끝내 승소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김창식씨를 인터뷰했다.
- 2006년 1월 해고당하기 전인 2001년도에도 중앙대로부터 해고당한 사실이 있다고 하는데."그렇다. 이번 해고는 두 번째였다. 2001년에 이어 연속해 직장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 계기는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2월 13일 중앙대 이사장 표창을 받은 사실이 있다. 중앙대 사범대 부속고등학교 신축공사 과정에서 부실공사를 막고 예산 16억 원을 절감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학교에서는 특별승급을 안 해줬다. 바로 여기서 11년에 걸친 싸움이 시작되었다.
총장이나 이사장 상을 받게 되면 1호봉 특별승급을 하는 것이 전례인데 당시 학교측은 나에게 표창만 주고 특별승급을 안 해줬던 것이다. 1호봉이 승급되면 매월 5만 원 정도의 월급을 더 받는다. 중앙대의 경우 직원 보너스가 연 1200%인데 그것까지 더한다면 1호봉 승급에 따라 매월 10만원을 더 받게 된다. 또 그에 따라 퇴직금도 몇 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특별승급을 해달라고 했으나, 학교 측은 계속해서 안 해줬다. 학교 측이 안 해주는 이유가 모호했다. 담당자는 답변을 회피했다. 아마도 당시 내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 전임 감독인 이사장의 가까운 친척 이아무개 때문이 아닌가 하고 판단했다. 그는 감독으로 재임했음에도 공로가 없어 표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와는 승진에서 경쟁하고 있는 사이였고, 그가 이사장 표창을 받지 못하자 내 승진에 유리한 특별승급을 학교 측이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봤던 것이다.
참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당시 교육부 장관에게 청원을 했다. 학교 측이 규정대로 인사지침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다. 예산 16억 원을 절감한 공로가 있으니 당연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청원했다. 청원에 대해 교육부가 서면조사에 착수하자 중앙대는 자기 잘못을 곧바로 인정하고 1호봉 특별승급을 해줬다. 이때부터 학교 측은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 첫 번째 해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정보산업대학원에서 행정개혁을 하는 등 5억 원의 예산을 절감한 공로로 2000년 10월 10일 개교기념일에 총장상을 받기로 했는데, 교육부장관에게 진정을 했다는 이유로 총장상을 무한정 보류했다. 이 상은 지금도 안 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2001년 1월 12일 학교는 나를 파면했다. 교육부장관에게 진정하고 감사원에 이런 사실을 감사요청 했다는 것을 근거로 '학교 위신을 손상시켰다',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등의 사유를 들어 파면했다.
이에 굴복할 수 없어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법원 등을 거쳐 파면무효소송에서 이겼다. 그랬더니 학교는 '해임'으로 바꿨다. 학교 측의 횡포에 또다시 소송으로 맞설 수 밖에 없었다. 2004년 7월 8일 대법원에서 다시 한번 승소판결을 받았다. 해임이든 파면이든 해고임에는 변함없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에서 개인이 큰 대학 조직을 상대로 두 번 승소한 것이다."
- 그렇다면 복직이 된 상태에서 학교는 또다시 해고를 했다는 것인가?"그렇게 해서 2004년 10월 1일 복직을 했는데 6개월여 만에 보직교수와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2005년 4월경 학교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는 그 보직교수가 청탁을 해왔다. 아들이 휴학을 해야겠다는 거였다. 고민했다. 그 교수의 아들을 학칙에 어긋나게 학기 중 휴학처리를 해줄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였다.
국적은 바꿀 수는 있어도 학적과 학점은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사회 진출하는 데 평생 따라다니기에. 중간고사에서 전 과목 F 학점을 받았는데 이걸 삭제하는 방법은 휴학을 하는 것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합산해서 한 학기 성적이 나오기 때문에 휴학을 하게 되면 나쁜 성적 전부가 삭제되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학칙상 학기 중 휴학은 '질병' 또는 '군 입대'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허용이 안 된다. 개강 후 4주 이내에는 누구나 휴학을 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을 넘기면 안 된다.
중앙대 교학계장으로 휴학업무를 담당하는 내가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줄 수는 없었다. 결국 깊은 고민 끝에 그 중요 보직교수에게 휴학처리가 불가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 같이 등록금 내고 학교를 다니는 것 아니냐. 똑같이 대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거절했다. 이로 인해 그 보직교수와 심각한 갈등이 있었고 이 부분이 두 번째 해임이 되는 그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1차 해고에서 법원 판결을 받아 복직한 후 그렇게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되던 중 중앙대 측으로서는 나를 해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내가 학교 측에 청구한 해임 기간 중 미정산 임금부분 문제였다. 1차 해임처분 기간인 4년 동안 교직원들의 임금이 5~5.7% 인상되었다. 그래서 나는 매년 1호봉씩 자연승급되는 부분 등을 포함해 학교 측에 약 3천만 원 남짓 되는 금액의 정산을 요청했다.
법원 재판 중에 재판장은 임금청구금액에서 정확한 금액을 특정하라고 하여 중앙대 측에 인상된 임금자료를 달라고 하였으나, 학교 측 변호사는 복직이 되면 임금인상분을 모두 정산하겠다고 했다. 나는 순진하게 이를 믿었으나, 재판에서 승소 후 실제 복직이 되자 학교 측은 임금정산을 전혀 해주지 않았다.
이에 앞서 나는 4년의 해임 기간 동안의 임금채권 약 1억 8천만 원을 학교법인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했었다. 이 부분이 학교 측에 결정적으로 미운털이 박힌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쨌든 학교 측에 미정산된 월급 3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더니 안 줬다. 어쩔 수 없어서, 승소 판결한 강제집행문을 가지고 받을 돈 3천만 원 중 1100만 원을 강제 집행했다. 그러자 학교 측은 판결문에 따르면 미정산 급여는 복직 시까지만 유효한 것인데도 그 이후 승급분까지 따져 강제집행문을 가지고 돈을 찾아간 것은 '소송사기'라면서 나를 노량진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서 조사과정에서 조사관은 '판결문을 가지고 복직된 이후 강제집행을 한 것은 잘못이다'고 말했다. 조사관이 '임금청구소송은 별도로 해야 한다'고 말해, 법률적 판단이 그렇다면 내가 잘못 집행을 한 것 같다고 말하고 경찰의 첫 조사 후 1주일 만에 찾아온 돈을 다시 중앙대에 입금해줬다.
그랬는데도 경찰은 사기라며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에서는 1100만원을 반환했더라도 사기죄가 성립된다면서 300만원 벌금형에 약식 기소했다. 학교 측은 바로 이 부분을 트집 잡아 곧바로 해고절차에 들어갔다. 중앙대에서는 약식명령이 나자마자 이를 빌미로 직위해제하고 2006년 1월 11일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해임을 의결했다.
사립학교법 및 중앙대 정관 인사규정 등에 의하면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될 시 면직하게 되어 있다. 안 되는 걸 뻔히 알기에 징계위원회에서는 내가 300만원 벌금을 받음으로써 '학내외 명예를 훼손'하고 '학교발전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이유와 함께 대기발령 기간 중 '무단결근을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무단결근 부분도 나중에 검찰 수사에서 그렇게 안 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 나 홀로 소송에 들어가게 된 과정을 설명해 달라."2006년 1월 중앙대가 해임조치하자 나로서는 또다시 소송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년여만인 2007년 5월 31일 내려진 1심 재판 결과는 허무했다. 중앙대의 징계 조치가 옳다는 거였다. 나의 패소였다.
이때 눈물겨운 일이 벌어졌다. 1심 변론을 맡았던 K 변호사가 2심을 맡을 수 없다는 거였다. 그에게 져도 좋으니까 2심을 맡아달라고 간청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더 이상 변론을 맡을 수 없다고 했다. 사건이 명백한데도 진 것은 바로 전관들이 장난을 친 것이니 더 큰 변호사를 찾아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상대측 법무법인의 진용은 화려했다. 서울고등법원 법원장 출신 및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출신에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법학박사 등 이 법무법인이 자랑하는 스타급 변호사를 상대로 재판한 결과 진실과는 전혀 거리가 먼 판결이 나왔으니 그들만의 높은 벽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다른 법무법인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높은 벽을 다시 한 번 실감했을 뿐이었다. 이들 대형로펌들은 내가 패소한 후 온 사건이기에 수임료로 7천만 원을 요구했다. 원래 최하 수임료가 3천만 원이고 보통은 5천만 원인데 1심에서 패소한 후 왔기 때문에 그 정도 수임료를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또한 성공보수금은 별도로 한다고 했다. 따져보니 1억 원 가까운 돈인데 가까스로 승소한다고 해도 변호사 좋은 일만 시키는 거였다.
주택까지 저당 잡혀 이자만 한 달에 40~50만원이 나가는 상황에, 처남의 퇴직금까지 빌려다가 생활하는 형편에서 그 정도 돈을 마련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연금공단에 대출 여부를 문의했다. 연금 2억 원을 먼저 지급받은 후 승소할 경우 다시 돌려주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더니 이자가 너무 높았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2007년 6월 20일 접수된 항소심부터는 나 홀로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1심에서 중앙대의 변론을 맡아 승소를 이끌어냈던 법무법인은 서울고법 사건에서도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서울고등법원 사건에 서울고등법원 법원장 출신 전관 변호사와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출신,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법학박사 등이 중앙대 측 소송 대리인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석궁사건으로 이름을 날린 박홍우 부장 판사가 재판장이었다. 변론준비절차만 1년간 4번을 거쳤다. 쟁점다툼만 계속했다.
변론준비기간을 거쳐 쟁점이 확정되었다. 법관은 300만원 벌금에 해임과 퇴직금 4억여원 몰수가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를 판단해야 할 사건이라고 쟁점사항을 부각시켰다. 이 사실은 내가 법원에 녹음 신청을 하여 녹음된 내용을 법원으로부터 받았고 법원도 녹음사항을 보존하고 있다.
즉 '300만원 벌금에 4억여원 퇴직금 몰수가 정당한지 아닌지를 따지자'는 거였다. 중앙대측은 내가 정상적으로 퇴직했다면 받을 수 있는 4억여 원의 퇴직금을 전액 몰수하는 해임을 했기 때문이다. 2008년 2월에 인사이동으로 석궁사건의 박홍우 재판장을 비롯하여 재판부 판사 3명 전원 모두 교체되었고 후임으로 온 김상철 재판장이 본 재판을 맡게 되었다.
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첫 변론기일을 지정해 달라고 탄원하는 한편 변론기일 지정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무응답이었다. 항소 후 2년 넘게 변론준비절차만 하고 첫 변론을 열지 않았다. 민사소송법에 의하면 변론준비절차를 마친 후 첫 변론을 바로 열어야 되는데, 아예 첫 변론을 열지 않았다. 이에 '피고 1' 대법원장 이용훈, '피고 2' 김상철 재판장으로 하여 직무유기에 따른 늑장 재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한편 김상철 재판장을 직무유기로 형사고소를 했다. 재판장은 나에게 2008년 11월 24일 첫 변론을 열겠다고 통지하는 한편 민사소장을 반송했고 대법원장은 민사소장을 수령했다. 목적한 바 변론기일이 지정되어 민사소송과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면서 노력했지만 재판은 2008년 11월 24일 첫 변론과 동시에 종결했다. 2심 결과도 허무했다. 아니 더 괘씸죄에 걸려들었는지 2008년 12월 12일 내려진 선고에서 '원고의 항고를 기각한다'면서 판결이유에서 '중앙대에 중대한 재산상의 손실을 입혔다'며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중앙대 측에 나의 300만 원 벌금에 대한 징계사유인 학내외 위신 손상과 학교발전에 지장을 초래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석명하라고 했는데, 중앙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또한, 쟁점사항 중 하나로 '내가 수차에 무단결근했다'고 내세웠던 중앙대 측 주장은 또 다른 형사사건에서 '무단결근을 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밝혀졌음에도 그렇게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29일 10시에 중앙대 박범훈 총장을 비서실에서 만나기도 했다. 학교퇴직금을 돌려주면 상고를 하지 않겠다고 제의했지만 거절했다.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줄 수 없는 이유는 법무법인에 변호사비가 워낙 많이 나갔고. 서울고법 2심 판결문에 학교퇴직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시되어 있기에 주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상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 29일이었다. 2009년 1월 15일 대법원에 모든 기록이 이관되었다. 2009년 2월 9일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중앙대에서는 답변서를 안 냈다. 10일 이내에 상고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했어야 함에도 안 냈다. 상대방이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법률적 방어행위를 계속해 나갔다.
3월 10일 상고이유 보충서를 제출했다. 3월 22일 날 피고가 답변서도 안 냈으니 기일을 지정해 달라며 법원행정처에 신청도 했다. 그렇게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일이 지정되었다. 5월 14일에 선고한다는 통지가 왔다.
이날 결과는 앞서 말한대로 '직위해제는 상고기각 한다. 해임무효확인소송은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 한다'고 판결했다. 징계사유가 안 된다는 이유가 아니라 징계사유에 비해 너무 지나치고 가혹하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중앙대가 원고에게 행한 처분은 그 징계재량권을 일탈했다', '징계권 남용으로 본다'며 판단해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마침내 가장 중요한 해임부분과 관련해 승소한 것이다."
- 해고 노동자로서 또 다른 해고노동자나 또는 직장인들에게 할 말은. "중앙대에서 여기저기 소송을 제기해 나를 죽이려고 했다. 수영장에 빠트려 놓고 물을 사정없이 틀어 익사시키려고 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나 스스로 수영을 하는 방법을 배워서라도 살아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들고 있는 것은 법률책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에도 법률공부를 했다. 지하철에서 졸다가 내릴 곳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4년 1500여일 동안 다닌 곳은 집, 도서관, 법원 등 단 세 곳뿐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이곳만 맴돌았을 뿐이다. 뒤늦게 '열공'했다 할 것이다. 덕분에 역사, 종교, 철학에 심취해 섭렵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인격을 수양하는 계기였다면 계기였을 것 같다.
어쨓든 해고가 되었다면 자포자기하지 말고 특히 노동사건의 경우 노동 판례를 완전히 숙지해야만 한다. 관련 판례도 몇 개 안 된다. 자기 스스로 법률지식으로 무장하고 이겨내야만 할 것이다. 증거가 뚜렷하면 재판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언론에 폭로함으로써 뒤집을 수도 있다.
또한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 밑에 있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조직은 돈이 많아서 영수증 처리하지만 개인은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빚을 얻어야 한다. 해고되면 일단 집안 분위기가 침통해지고 초상집처럼 우울해지고 눈만 뜨면 괴로운 나날들만 보내게 된다. 정신적 충격과 고통은 짧은 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괘씸죄에 걸리지 마라. 일을 열심히 해도 걸리고 일을 못해도 걸린다. 직장동료들과 보조를 맞춰가라. 너무 빨리 가지도 말고 늦지도 말고 중용의 도를 걷는 게 가장 현명하지 않는가 한다. 손자병법에도 싸움을 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피해 가는 게 원칙이다.
아무리 직장에서 기분 나빠도 참아라. 대적하지 말라. 하루 참으면 백날이 편하고 집안이 편하다. 손해 볼 것은 아예 손해 봐라. 소탐대실이다. 나의 경우만 놓고 본다고 하더라도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놓은 덫과 죽창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었을 뿐이다. 건강도 엉망진창이다. 장기간 치료와 요양을 해야만 한다. 남하고 싸우면 변호사만 살찌울 뿐이다."
- 4년 간 해고 노동자로 싸우다가 이겼는데 끝으로 중앙대에 할 말은. "명예롭게 내가 퇴직하는 게 피차 바람직하지 않은가 한다. 또다시 고소사건과 법정 재판을 계속한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먼지구덩이에서 뒹굴어야만 한다. 진흙탕 싸움에 불과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학교측의 부담도 더욱 커질 것이다.
지난 5월 14일 대법원 판결 이후 학교 측에 수차례에 걸쳐서 화해를 요청했음에도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 아무쪼록 학교 측과 원만히 해결이 되었으면 한다. 내 건강도 심각한 상황이다. 끝으로 그동안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아내가 도망가지 않고 살아 준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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