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이야기는 안 했어. 듣다 보니 화가 나서 가만히 못 있겠다." "교수들이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학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이래? 당신들이 서울대 교수가 맞느냐 말야." 3일 오전 11시 서울대학교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 노인들이 시국선언에 나선 서울대 교수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목청을 높였다.
일부 노인들은 격분해 교수들 앞에까지 나아가 시국선언문을 찢어버렸다. 이들을 막으려는 학생들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뒤엉켜 기자회견장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됐다. 뒤편에 서 있던 서울대 학생들은 야유와 함께 "앉아라"고 외쳤다.
자제를 요청하며, 충분한 질의응답 시간을 보장하겠다는 교수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이날 시국선언의 사회를 맡은 이준호 교수(생명과학부)가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절차와 형식도 지키지 않았다"며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교수들은 침착하게 답했다.
김인걸 교수는 "여러분께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 자리에 참석해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국기를 게양하지 못하고, 국가도 부르지 않고, 선열에 대한 묵념도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정중하게 사과를 드린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명박 정부가 500만 표 이상의 차로 당선됐는데 소수파와 화합해야 할 것이 뭐가 있느냐"는 비난에 우희종 교수(수의학과)는 "더욱 중요한 것은 소수의 의견이라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 저희들의 의견"이라며 숫자를 넘어 서로 다른 의견을 포용할 줄 아는 민주주의를 말했다.
"출범한 정부를 단결해 이끌 생각을 해야지, 왜 자꾸 분열시킬려 하냐"는 질문에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현 정권이 물러나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돕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번 시국선언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둘러싸고 보수단체 회원들은 "서거라 하면 안 된다, 서거는 높은 사람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 쓰는 말이다"며 "노무현은 투신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가 "노 전 대통령이 비리 의혹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수사 과정 자체가 인격적 모독을 가하는 등 정치 보복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고 해명했지만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시국선언 발표 기자회견은 '소통'에 실패하고 시작 38분 만에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