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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도심 속 열리는 유성 5일장의 모습이 이채롭다.
대전 도심 속 열리는 유성 5일장의 모습이 이채롭다. ⓒ 곽진성

재래시장은 언제부턴가 젊은이들에게 낯선 공간이 되어버렸다. 낡고 불결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대신 그 자리는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메웠다. 재래시장의 투박함 대신 쇼핑몰과 할인마트의 세련됨을 택한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적에는 자주 갔던 재래시장이었지만 언제부턴가 할인마트에 익숙해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성 5일장, -국산콩- 문구가 정겹다
유성 5일장, -국산콩- 문구가 정겹다 ⓒ 곽진성
그 뒤바뀜 속에 얻은 것이 편리함이라고 답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나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시장에서의 가격 흥정 대신 할인마트에서 값싼 물건을 골라 사면 되고, 시장 아래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 대신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물건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아진 것 같은 그런 변화의 틈 속에서 잃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혹 그런 뒤바뀜 속에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져갔다는 것은 필자의 과민한 억측에 불과할까?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할인마트를 보며 한 움큼 더 퍼주던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생각났던 것은 왜일까, 아마도 정 때문일 것이다. 외가 할머니 할아버지같이 때로는 정겹고, 또 때로는 투박했던 그 순박한 사람들이 전하는 감동, 문득 그 정이 그리웠다. 순박한 이들이 전하는 사람 내음 말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정이 넘쳐나던 재래시장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낯설어졌을망정 소멸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정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재래시장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렇기에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안 보이게 되었을 뿐, 재래시장은 어느 외딴 한 곳에서 살아남아 오늘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로 가득 찰 그 한 가닥 희망을 기다리며 재래시장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전 유성 5일장에 가다

재래시장의 기나긴 역사에서 대전의 유성 5일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로 나라 전체가 어려움에 직면했던 1916년에 시장이 형성된 이후 근 90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매달 4·9·14·19·24·29일에 열리는 유성 5일장은 원래 5일과 10일 열렸으나 비가 자주 내리는 바람에 바뀌었다고 한다.

4일, 대전 유성구 장대동에서 열리는 유성 5일장을 찾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취재 때문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재래시장의 사람 냄새가 그리워서였다. 그렇기에 나는 나대로 재래시장 모습을 상상하며 현장을 찾았다. 처음 가본 5일장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조그마한 시장일 줄 알았는데 규모가 제법 컸고 파는 물건의 종류도 다양했다. 대전 안에 이런 곳이 있었나 놀라웠다.

 유성 5일장 가축전의 강아지들, 잠자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유성 5일장 가축전의 강아지들, 잠자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 곽진성


놀라움과 동그랗게 떠진 시선으로 유성 5일장 상인들이 가져다 놓은 갖가지 물건들이 엿보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다양한 동물들이었다. 강아지부터 닭, 토끼, 오리, 고양이, 흑염소까지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활발한 몸놀림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강아지의 재롱에 잠시 유년 시절처럼 마음이 들떴다.

"이봐, 청년, 강아지 하나 사려고? 강아지 사서 데려가 봐. 키우면 좋아"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를 좋아해서인지, 정말 한 마리 사서 키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여운 강아지들, 상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오늘 유성 5일장을 찾은 이유는 취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걸음을 옮겼다.

 유성 5일장, 홍화씨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열매, 나물, 약초를 팔고 있다
유성 5일장, 홍화씨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열매, 나물, 약초를 팔고 있다 ⓒ 곽진성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잡곡을 비롯해 제각각의 채소, 과일하며 약초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시장에 나와 있었다. 인삼이나 쑥처럼 아는 약초들도 있었지만 계피나 익모초 같은 것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관심이 쏠렸다.

"인삼 한 근 주세요. 저건 뭐죠?"
"자, 여기요 감사합니다. 저건 익모초입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었던 것일까? 건강에 관심 많은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그런 생소한 약초들에 관심을 가지며 발걸음을 늦추었다. 유성 5일장에 오는 상인들의 모습에는 삶의 활력이 넘쳐보였다.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로 서민들의 삶이 곤궁해진 시기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정성스레 수확하고 기른 농식물을 가져온 상인들의 모습에서는 걱정의 기색보다는 희망의 표정이 엿보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곤 했어. 지금은 할인마트나 쇼핑몰이다 해서 사람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찾는 사람은 계속 찾으니까 다행이지(웃음)

희망 찾기가 어려워진 사회에서 긍정이 모습이 넘쳐나는 상인들의 표정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런 상인들을 보며 나도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5일장 내의 먹거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5일장 내의 먹거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 곽진성

유성 5일장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양각색의 음식들 천지였다. 칼국수부터 시작해서 순대는 물론 술안주로 딱인 김치전과 빈대떡까지 한눈에 보아도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만들었다. 맛있는 냄새가 시장 구석구석을 찌르고 있다.

결국 식욕을 참지 못하고 한 식당에 둘러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나이가 지긋이 든 식당 주인에게 잔치국수 가격을 물었다. 비쌀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놀랍게도 2000원이란다. 그럼에도 양은 다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푸짐했다. 값싼 가격에 놀라고 푸짐한 양에 놀라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이것이 재래시장의 정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배가 든든해져서인지 5일장을 보는 재미도 한결 더 해졌다. 오징어, 조개, 꽃게 등의 바다 생선을 비롯해 미꾸라지, 참게, 장어 등의 민물고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어패류가 있었다. 정말이지 유성 5일장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쳐진 유성 5일장을 놀이하듯 둘러보니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사람냄새를 만끽하기 위해 들른 곳이었지만 어느새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정겨웠던 사람들, 맛있는 음식, 그리고 다양한 물건들. 이번 유성 5일장 취재는 내게 재래시장이 어떤 낯설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유성 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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