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대체 : 5일 밤 10시 20분]
6개월의 임기를 남겨놓고 중도 하차한 임채진 검찰총장이 5일 오후 퇴임식에 앞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법무부로부터 종종 수사 지휘를 받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도 수사지휘가 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사건에 대해서는 얘기 안 한다고 했지 않았냐"며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임 총장은 그러나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많이 흔들렸다, 정권교체기의 검찰총장직은 엄중하고 무거운 자리이자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다"며 재임 기간동안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임 총장은 법무부와의 갈등설에 대해서도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총장으로 와도 수사는 건드리지 말라고 발톱을 세운다"면서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수사'나 '시위엄중 대처' 등을 예로 들며 "수사지휘권 발동은, 늘상은 아니지만 문건으로 내려오는 게 있다"고 설명했다. 또 "청와대와 '직거래'는 안하지만 법무부와는 긴장관계"라며 "장관과 안 맞아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관계이고, 그게 건강하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정부의 수사지휘 간섭을 인정한 것으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임 총장은 이후 '수사 지휘' 발언이 부각되자 대검 대변인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검찰이 정부의 수사지휘를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급히 진화에 나섰다.
이후에 진행된 퇴임식 때도 임 총장은 이번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부정부패 수사로 규정짓고 "부패혐의 수사가 예상치 못한 변고로 차질을 빚었고, 그 과정에 많은 아쉬움이 있다 하여 전체 사건 수사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모두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수사의 당위성을 천명했다.
임 총장은 또 "검찰 수사와 관련된 최근의 논의가 검찰의 부정부패 수사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서는 안 된다"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여론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단 지금을 계기로 이제까지의 수사관행과 기법, 브리핑, 보안사항 유출 등에 대한 문제점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더 절제된 검찰권 행사 않으면 설 땅 잃어갈 것"
임 총장은 퇴임사를 통해 "강한 검찰이 아닌 바른 검찰, 원칙과 정도, 절제된 검찰권 행사, 그리고 인권을 존중하는 품격 높은 수사, 이런 모습의 검찰, 이런 모습의 수사를 항상 추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지금보다 더 낮추고 더 겸손해야 한다"며 "지금보다 더 절제되고 더 세련된 모습으로 검찰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강하고 교만하다는 국민적 지탄과 비판 때문에 검찰이 설 땅을 잃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족한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아니하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아니하다는 말이나,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의 의미를 더욱 더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며 "이제까지의 수사관행과 수사기법, 수사상황 브리핑, 보안사항 유출 등에 대한 문제점을 바로잡고, 수사와 언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임 총장은 "비리혐의 수사과정에는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때로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차마 견딜 수 없는 비난을 검찰에 쏟아 붓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당위의 세계를 추구하는 검찰이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그간의 검찰 수사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임 총장은 또 "최근의 수사에 대해 국민적 오해와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검찰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며 "검찰이 부패 사건 수사에 흔들림없이 매진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형사법제 도입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도 전력을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다.
"거친 파도가 가라앉고 물결이 잔잔해지면 물 스스로가 사물의 본모습을 제대로 비춰준다. 언젠가는 오늘의 검찰에 대한 국민과 역사의 평가가 정확하게 이뤄질 것을 확신한다."
"검찰수사 기능 약화시키면 부패공화국 전락"... 중수부 폐지 반대
한편, 임 총장은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대검 중수부 폐지론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임 총장은 퇴임사에서 "이를 기회로 검찰의 수사 기능을 약화시킬 경우, 부패혐의자만 유리한 부패공화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에 부정부패가 존속하는 한 검찰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산 권력이건 죽은 권력이건 아무런 성역 없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총장은 이어, "제가 직을 떠나는 의미를 알고 검찰의 명예회복을 위해 여러분 모두 최선을 다해달라"며 "어려움 속에서도 숭고한 소명을 받들어 더욱 더 국민의 믿음과 사랑을 받는 검찰로 번영해 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임 총장은 앞서 기자간담회에서도 "중수부 폐지가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건지 생각해보라"며 "직접 연결시키기는 어폐가 있지만 (박연차) 수사가 제대로 되길 바라는 사람이 정치권에 있다고 보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떻게 제재할 것인가는 내가 매번 이야기했던 '절제'(를 되새기면 된다)"며 "수사 관행과 기법 이런 부분을 논의하는 것은 좋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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