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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도 우습게 여긴 카사

내 집 고양이 카사 5년 전 집 안에서 기를 때 모습
내 집 고양이 카사5년 전 집 안에서 기를 때 모습 ⓒ 박도
카사를 실내에서 키울 때는 천장의 쥐조차 겁내지 않고 설쳤다. 그럴 때마다 카사란 놈이 '야옹, 야옹' 큰소리치면서 천장을 향해 높이뛰기를 해도 쥐들은 그때뿐, 곧 더 요란스럽게 설쳤다. 보다 못한 아내는 카사를 놀렸다.

"바보야, 쥐도 겁내지 않는 네가 고양이이니?"

그럴 때마다 카사는 존심이 몹시 상한 양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자리를 피했다. 하기는 천장의 쥐들은 실내에 갇혀 있는 카사가 아무리 자기를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카사를 바깥에 놓아서 기르자 지난날 쥐도 못 잡는다는 조롱을 보상이라도 하듯 그 녀삭은 거의 날마다 쥐를 잡았다.

이놈은 쥐를 잡으면 '으응, 으응' 소리를 내면서 꼭 우리 내외에게 신고를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바깥에 나가면 쥐를 입에 물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으스댔다. 아마 자기도 이제는 당당한 고양이로 제 밥값은 한다는 것을 우리 내외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위인가 보다.

이는 마치 아이들이 학교에서 100점 받은 답안지를 들고 부모에게 자랑하는 장면과도 같고, 일본 규슈 구마모토 근교 키쿠치 신사 역사전시관에 전시된 전투 장면 그림에서 일본무사들이 적군의 목을 베어 창에 꽂아 자기네 대장에게 보이면서 전공을 자랑하는 모습과 같아 나는 그때마다 사람이나 동물의 생각이나 행동이 비슷하다고 쓴 웃을 지었다.

"저보고 쥐도 못 잡는 고양이라고 놀렸지요? 보세요, 이렇게 잡아왔잖아요."
그러면 아내나 나는 그에게 다가가 쥐를 잘 잡았다고 칭찬을 해 준다.

"아이고 우리 카사가 이제는 쥐도 잘 잡네."

그런 뒤 나는 삽으로 카사가 잡아온 쥐를 뒷산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카사가 실내에서 사는 동안 산골 마을에는 쥐들이 엄청 많았다. 특히 아래채 내 방 벽과 천장은 밤낮으로 쥐들이 '찍 찍'거리며 천장이나 벽을 갉아 몹시 신경을 건드렸다.

하지만 카사를 집 바깥에 놓아기른 뒤부터는 쥐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카사란 놈은 용케도 쥐의 냄새를 잘 맡아 내 방 천장까지 기어들어 쥐들을 모조리 잡았다.

나도 고양이에요 처음으로 쥐를 잡고는 의기양양하게 신고하는 카사
나도 고양이에요처음으로 쥐를 잡고는 의기양양하게 신고하는 카사 ⓒ 박도

새 새끼를 물고 있는 카사

카사란 놈은 내 집뿐 아니라 옆집 앞집 두 노씨네 집의 쥐까지도 씨를 말려버린 듯, 우리 동네(비록 세 집밖에 안 되지만)에서 쥐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쥐가 사라져 더 이상 잡을 수 없게 되자 카사는 대신 뒤꼍에서 다람쥐를 잡아오거나 심지어 덩치 큰 청설모까지도 잡아왔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칭찬은커녕 예쁜 다람쥐나 청설모는 잡지 말라고 잔뜩 야단을 맞지만 그때뿐 카사는 계속 그들을 잡아왔다. 카사는 이따금 새 새끼도 잡아왔다. 그럴 때는 아내에게 아주 크게 야단을 맞아도 그는 쥐는 잡아도 되지만 다람쥐나 청설모, 새 새끼는 왜 잡으면 안 되는 지 그 영문을 모른 듯했다. 내가 지난 3년간 카사가 잡아온 쥐나 다람쥐 청설모 새 새끼 시체를 뒷산에 묻어준 게 수십 번은 된 듯하다.

새 새끼를 물고 있는고양이 내 집 고양이 카사가 어린 새 새끼를 물고 있다.
새 새끼를 물고 있는고양이내 집 고양이 카사가 어린 새 새끼를 물고 있다. ⓒ 박도
오늘 아침, 내 글방 바깥에서 카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잡아 왔으니까 봐주세요"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5년 넘게 한 집에서 같이 살다보니 이제는 그가 부르는 소리로 "배가 고파요" "심심하니까 같이 놀아주세요" "내가 무엇을 잡아 왔으니까 봐주세요" 라는 정도는 구별이 된다.

후딱 마당으로 나갔더니 카사는 아직도 주둥이가 노란 어린 새 새끼를 물고 있었다.

"카사!, 놓아 줘!" 고함을 치자 물었던 새 새끼를 놓았는데 새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연전에는 마당에서 카사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갔더니 다행히 새 새끼가 살아있어서 제 어미한테 돌려준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새 새끼를 삽에 담아 뒷산으로 가 양지바른 곳에다 묻어주고는 그의 명복을 빌었다. 막 집으로 돌아오자 죽은 새 새끼의 어미아비인 듯한 멧새 한 쌍이 집 언저리를 돌면서 애끊는 울음소리로"찍 찍"거리며 새끼를 찾고 있었다. 애비 새인 듯한 놈은 전신주 높다란 곳에서 망을 보며 "찍 찍"거리고, 어미인 듯한 멧새는 겁도 없이 카사 언저리를 맴돌면서 "찍 찍"거렸다. "야, 고양이 놈아, 천금보다 소중한 내 새끼를 돌려 줘!"하는 울부짖음 같았다.

멧새들 삶도 녹록치 않구나

겁도 없는 멧새 고양이에게 새끼를 내놓으라고 울부짖는 멧새
겁도 없는 멧새고양이에게 새끼를 내놓으라고 울부짖는 멧새 ⓒ 박도
나는 어미 새에게 빌면서 말했다.

"미안하다. 이미 새끼는 숨을 거뒀기에 내가 뒷산에 묻어줬다. 앞으로 가능한 다른 새끼는 내 집 근처로 못 오게 해라."

"아저씨, 아저씨도 자식 키워보셨지요. 애들이 부모 말을 잘 안 듣잖아요. 글쎄 그 녀석이 아저씨네 카사가 위험하다고, 오늘 아침에도 저와 아비가 번갈아 단단히 일렀는데도, 부모 말은 듣지 않고 아저씨네 마당으로 가더니 기어이 일을 저질렀네요. 흑 흑 …아이고, 불쌍한 것, 이제 알에서 깨어난 지 두 칠도 지나지 않았는데…. 제 딴은 세상구경한다고 갔다가…."

어미 멧새는 겁도 없이 계속 카사 언저리를 맴돌면서 울부짖었다.

"얘, 너까지 위험해. 이제 그만 멀리 가거라."

"자식을 잃으면 눈에 봬는 게 없지요. 내가 카사란 놈 코를 콕 쪼아주고 싶어요."

"알았다. 내가 너희 대신 카사란 놈을 흡씬 때려주마."   

하지만 어미 아비 멧새는 내 집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지붕이나 전깃줄로 옮겨 앉으며 내내 울부짖었다. 그들 한 쌍의 '찍 찍'거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하루 종일 내 마음을 울렸다.

"미안하다. 멧새야, 어쩌면 좋을까? 그렇다고 카사를 내 집에서 내쫓을 수도 없고. 너희 멧새들 삶도 사람들 못지않게 녹록치 않구나."

"일찍이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은 불쌍하다'고  하셨지요. 강자에게 잡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슬픔이지만 이 순간만은 눈에 봬는 것도 없고,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네요."

"알겠다. 너희의 아픔을. 사람도 자식을 잃어버린 아픔을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고 하지. 곧 눈이 찔리는 듯한 큰 아픔이라고 하지. 거듭 거듭 너희의 슬픔에 내가 대신 깊이 사죄드린다."

"잘 았았습니다, 아저씨. 정말 세상 살기 힘드네요."

"그럼,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오죽하면 사람도 스스로 자기 목숨조차 끊겠니."

"어머 사람도 그래요? 저흰 사람은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아마도 사람이 너희보다 더 살기도 힘들고 근심걱정도 많을 거다."

"정말 사람도 그러세요. 이제 마음이 쬐금 풀리네요. 저희 그만 갈게요."

"그래, 잘 가라 멧새야. 안녕!"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멧새 내 집 전깃줄에 앉아서 새끼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멧새내 집 전깃줄에 앉아서 새끼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 박도
싯다르타 태자가 열두 살 되던 해 봄, 아버지 슛도다나 왕은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들에 나가 '농민의 날' 행사를 참관하게 되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왕궁 밖 전원 풍경이 그지없이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농부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을 보자 그들의 처지가 자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을 본 싯다르타의 어린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쟁기 끝에 파헤쳐진 흙 속에서 벌레가 꿈틀 거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난데없이 새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그 벌레를 쪼아 물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같은 광경을 보게 된 어린 싯다르타는 마음에 심한 충경을 받았다.

그는 그곳에 더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방금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서 일행을 떠나 숲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며 괴로운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 동국대학교 역경원 발간 <불교성전> 7~8쪽

애타게 자식을 찾는 멧새  예사 때는 좀처럼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멧새지만, 자식을 잃자 두려움도 없는 듯 카메라의 접근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애타게 자식을 찾는 멧새 예사 때는 좀처럼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멧새지만, 자식을 잃자 두려움도 없는 듯 카메라의 접근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 박도

덧붙이는 글 | '또 하니의 가족, 반려동물' 응모



#카사#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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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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