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던 지난 달 23일,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은 사표를 냈었다. 하지만 법무장관에 의해 즉각 반려되었다.
그로부터 12일 후, 지난 3일 다시 사표를 제출했다. 그동안 그는 노 전대통령의 서거로 인하여 평상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양심의 문제였든 역량의 문제였든 더 이상 자리를 지키기 힘들었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사표는 반려되었다. 임 총장은 '이제 더는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며 직원들과 고별 식사까지 마쳤다.
그러자 청와대는 사표수리를 하루 미룬다고 했다. 청와대가 왜 그토록 끈질기게 임씨를 붙잡고 늘어져야만 했는지 그 내막이 아무것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사표는 다음날인 5일에서야 어거지로 수리되었다.
임 전 총장은 퇴임 직전 기자간담회와 퇴임석상에서 '이 자리는 정권교체기에 있어서 치욕일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없이 흔들렸다'고 다시 불편했던 심기를 토로했다.
일종의 양심 고백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안된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바보가 아니라면 임 총장이 그간 얼마나 정권 핵심으로부터 압력에 시달렸는지, 아니라면 어찌어찌 뗄 수 없는 커넥션에 얽혀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임채진 전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 및 측근 인사 모두를 소환 조사해야만 했던 행위는 그와 유사한 다른 경우에 비해 매우 악질적이었다.
아무리 법률로 사람을 기소하는 입장에 있다 하여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행위는 임 총장으로 하여금 인간적 배신 아니면 변절행위 형태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를 이처럼 곤혹스럽게 한 배경은 무엇일까? 의문부호를 찍을 필요도 없이 그것은 청와대라고 국민은 믿는다. 그러므로 그 시골 동네에까지 일주일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다녀갔던 것이고, 지난 달 29일에 있었던 영결식을 보기 위하여는 AP통신 추산으로 80만명이 운집했던 것이다.
이를 부정할 수 없는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노무현의 진실'을 비로소 알았고(물론 아는 척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에 따라 여야 구분없이 '쇄신'이니 '반성'이니 하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는 게 아니던가.
이제 간명해졌다. 현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노무현을 잡기 위하여 얼마나 여러 갈래의 복합적 방법이 동원되었는지 국민이 알게 되었고, 정치권이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은 그처럼 '알게 된 것'과 '인정하게 된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헌법 제 1조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제 2조대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에 살고 있으며 민주주의 방식으로 나라가 굴러가야 한다는 당연한 권리를 주장한다.
임채진 전 총장은 타의에 의하여 '노무현' 관련 수사를 반도덕적 행태로 진행해온 것이다.
그것이 청와대의 압력이나 조중동 등 극보수적 언론의 진실 호도성 보도에 의하여 빚어진 결과라 한다면 더욱 말할 것없이 반민주적, 나아가서는 민족에 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었던 것이다.
이에 임채진씨는 '평정심'을 찾기 위하여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위하여도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대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도 그간 청와대 라인이 가해온 압력,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끼친 수사상의 영향,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선언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임씨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인간적 법률적 국가적, 그리고 역사적인 빚을 조금이라도 털어내는 길이 될 것이다.
힘들겠지만 속히 양심선언을 결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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