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법학교수 165명이 8일 촛불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의 행동을 헌법유린행위로 규정하고 탄핵소추를 요구했다. 앞서 전국 26개 고등·지방 법원 중 17개 법원의 판사 495명이 "신영철 대법관의 당시 행위는 재판권 독립을 침해했다"고 결의한 바 있다.
이번에 전국 법학교수들은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에 대한 법학자 선언' 발표를 통해 그간 촉구해온 '자진 사퇴'를 넘어 더 분명하고 단호하게 '국회의 탄핵 소추'를 요구했다. 이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신 대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를 발의할 계획을 밝힌 상황이다.
"헌법이 명령한 사법권 행사 침해 행위... 마땅히 탄핵 소추해야"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 개입을 통해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했다"며 "신영철 대법관의 탄핵소추와 사법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신 대법관이 자신의 행위를 '사법행정권' 행사의 일환으로 변명한 것에 대해서도 "헌법이 명령한 '사법권의 행사'를 '사법행정'과 동격의 가치로 취급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들은 "헌법은 국민의 사법권의 행사를 위임한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도록 명령하고 있다"며 "이러한 헌법적 명령의 이행과 재판에 '부수'되는 집행업무인 사법행정이 동격의 가치로 취급될 수 있는 여지가 없음은 자명하다"고 비판했다.
또 "(사법행정권 행사가) 일반 추상적인 제도 개선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특정한 부류의 사건들을 '행정'적 차원에서 처리하는 것은 재판의 독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 판사들이 판사회의를 통해 한결같이 신 대법관의 행위를 명백한 재판권 침해로 확인한 데에 대하여 우리 법학자들도 그 뜻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법학자들은 "재판개입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이 시점에도 당사자인 신 대법관은 자진 사퇴를 거부하고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장의 대응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며 "드디어 국민들은 법관이 어떤 외부의 간섭도 없이 공정하게 자신의 사건을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법관의 외압에 따라 재판할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이와 같은 상황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뿌리째 뒤흔드는 중대한 헌정위기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하루빨리 헌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해소되어야 한다"며 "국회는 마땅히 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권을 발동하여 국민대표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근본 원인은 '사법부의 관료화'... 척결 없다면 제2의 신영철 대법관 사태 발생"
이들 법학자들은 또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사법부의 관료화'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불합리한 법관인사제도의 개선을 비롯하여 사법부의 관료화를 척결하기 위한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없이는 제2의 신 대법관 사태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대법원은 그간의 사법파동과 이번의 판사회의를 통해 제기된 법관들의 요구 및 국민들의 사법부 개혁의 열망에 대해 지금이라도 겸허한 자세로 해결의 의지를 표시하고 실천적으로 답하여야 하며, 국회도 또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률의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끝으로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사법권의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서 ▲ 국회의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 ▲ 법관인사제도 개혁 및 대법관 인적 구성의 다양화를 위한 법원조직법 등 법률정비방안 제시 ▲ 대법원의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 제시 등 3가지 항목을 요구했다.
"탄핵 소추하지 않은 국회도, 직권남용죄 수사권 발동하지 않은 검찰도 문제 있다"
이번 선언에 참여한 정태욱 인하대 교수는 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신영철 대법관 사태는 법학 교수의 입장에서 굉장히 심각하다, 법질서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면서 "인권위 수호 모임 등이 중심이 돼 교수들의 동의를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판사들도 일관되게 신 대법관의 행위를 재판 개입 행위라 비판하는데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신 대법관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 5일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감내하기 힘들 것'이라고 한 것은 사퇴하라는 말 아니냐"고 반문했다.
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신 대법관의 행위는 재판권을 정면으로 침해한 중차대한 문제로 이렇게 흐지부지될 문제가 아니다"며 "이에 동의하는 몇 분 교수님들이 지난 주 몇몇 교수들에게 개인적으로 동참 의사를 묻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대부분이 동의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외로 많은 교수들이 참여해주셨다, 아마 전국 법학 교수들 전체의 의사를 물었다면 (참가 숫자는) 더 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승환 전북대 교수(한국헌법학회 회장)는 "재판 개입은 사법권 침해이고 이는 법치국가 원칙을 침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신 대법관의 행위는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를 뒤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이에 대해 헌법 수호 책무를 지닌 국회는 신 대법관을 탄핵 소추하지 않는 등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고, 직권남용죄를 저지른 신 대법관에 대해 수사권을 발동하지 않은 검찰도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며 다른 국가기관들의 책임도 물었다.
그는 또 "법원 징계위원회의 최고 징계 수위는 정직 3개월이다, 그 정도로 법관의 신분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은 그만큼 사법권 독립에 대한 책임이 크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버리고 재판권 행사를 위임한 국민의 신뢰를 깬 신 대법관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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