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대체 : 8일 밤 9시 20분]
여당의 쇄신 논의 흐름이 본질을 벗어났다는 내부 비난에 부닥쳤다.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 변화인데 당 대표 퇴진 여부에 매몰돼 간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야당은 물론 당내에서까지 이런 '회의론'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서 쇄신 논란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측은 박희태 대표가 건의한 '대통령·의원간 간담회'도 "여당의 쇄신안 논의부터 정리된 뒤에 만나는 게 적절하다"며 미뤘다.
'지도부 퇴진론'에 쇄신론이 파묻히는 형국이 되자,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며 활동을 중단했던 쇄신특위는 한발짝 물러서 "지도부 거취를 포함한 쇄신안을 마련하겠다"며 활동을 재개했다. 박희태 대표는 이날 원희룡 쇄신특위 위원장에게 "화합 전대를 만들어달라"며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나서도록 방안을 제시하라고 주문했으나, 박 전 대표가 나설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결국 논의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조기전대' 늪에 빠진 여당 쇄신론
애초 여권 쇄신의 본령은 이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민심을 벗어난 정책 기조를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서거정국'을 거치면서 민심도 힘을 실었다.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선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정적인 평가가 57.7%(한겨레), 61.1%(MBC)로 나오는 등 과반을 훨씬 웃돌았다.
쇄신론에 불을 지핀 개혁성향의 초선모임 '민본21'도 쇄신특위 구성을 주장하면서 "특위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한 조기전대 개최, 공천제도 개혁, 상임위 중심의 원내정당화, 실질적인 당 화합 방안에 대한 전권이 부여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쇄신논의를 주도한 '쇄신파'는 초점을 전당대회 조기 개최 여부에 맞췄다. 이 바람에 국정운영 개혁 주장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여기다 박희태 대표가 쇄신파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면서 쇄신론은 '지도부 퇴진'이란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꼴이 됐다.
이런 흐름에 당내에서조차 거센 비판이 터져나왔다. '친박'인 이성헌 의원은 8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근원적인 문제는 대통령과 청와대"라며 "본질은 그대로인데 당 대표가 바뀐다고 해서 큰 변화(쇄신)가 온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일갈했다.
이 의원은 "그간 행정부와 여당이 견제관계가 아닌 일방적인 관계로 흘러 온 것이 문제"라며 "대통령이 당에 대해 가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쇄신은 어렵다"고 꼬집었다.
'친박' 이성헌 "당 쇄신 본질은 정당 민주화-정책·노선 변화"
이 의원은 이런 생각을 글을 통해 이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선 여러 지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의 핵심은 당헌·당규에 규정된 '정당 민주화'와 '당정분리' 등의 기본 원칙이 실종됨으로써, 우리 당이 주체적이며 능동적으로 정국 운영에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당 쇄신은 철저하게 '정당 민주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정책과 노선'에 대한 근본적 성찰도 우선돼야 할 과제"라면서 "그러나 '쇄신'을 핑계 삼아 스스로의 책임을 호도하거나 권력싸움의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고약한 몸부림만 빈발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기 전당대회로 지지층이 돌아오고, 국민적 신뢰가 깊어지며, 당의 주체성과 능동성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냐"며 "헌 부대에 헌 술을 담는 것이 쇄신이라고 우기는 것과 뭐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또 다른 친박 의원도 "(민심이반의) 책임은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있는 것 아니냐"며 "본질은 어디로 가버리고 마치 박희태 대표의 퇴진을 건 싸움으로 비화됐다"고 꼬집었다.
중립성향의 의원들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인적쇄신 문제는 (비선 권력으로 문제가 됐던) 이상득 의원이 '2선 후퇴'하면서 정리된 것 아니냐"며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문제제기 할 것이 아니면 쇄신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본21'을 향해서도 "당초 쇄신논의를 시작할 때에는 국정기조 문제를 지적하더니 지금은 오로지 대표 하나를 교체하느냐 마느냐에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국민들은 조기전대 개최 여부엔 관심도 없다"며 "민심의 동력도 없이 '정풍운동'을 한다고 하기엔 명분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쇄신특위 "활동 재개" 진로 선회... 숨고르기 들어가
쇄신논의가 고비에 부딪히자 쇄신특위는 진로를 선회했다. '박희태 대표의 즉각 사퇴-조기전대 실시' 주장을 접고 활동을 재개키로 한 것이다. 원희룡 위원장은 이날 전체회의 뒤 기자 간담회를 통해 이달말까지 ▲국정운영 ▲당정 관계 ▲국회 운영 ▲당 운영 등에 대한 구체적인 쇄신안 및 정치일정을 지도부에 제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 위원장은 "정치일정에는 지도부 거취까지 다 포함돼 있다"며 "박 대표가 ('지도부 사퇴-조기전대 실시'를) 조건부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위원장에 따르면, 박 대표는 이날 오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원 위원장에게 "당의 근원적 화합을 위해 직을 걸고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 쇄신특위도 화합 전당대회를 위한 정치일정을 포함해 쇄신안을 빠른 시간 내에 최고위로 넘기면 전폭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 진영을 당의 전면에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찾으란 주문이다.
이를 위해 박 전 대표를 당 대표로 추대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박 전 대표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원 위원장은 "계절이 바뀌기 전까지 달라진 지도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당내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당내 쇄신파도 '집단행동' 유보
한편, '민본21', '7인모임' 등 쇄신론에 가세했던 당내 의원들도 박 대표의 태도를 '시한부 사퇴'로 풀이하면서 집단행동 돌입을 보류했다. 민본21은 이날 오후 긴급 회의를 통해 "지도부의 시한부 사퇴론을 조건부로 수용하되 그 시한은 6월말까지여야 한다"며 "화합적 전당대회의 관건은 대통령이 국정동반자적 관계를 확립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지도부의 노력이 실패하면 지도부는 바로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견을 통해 지도부 퇴진론을 공개 주장한 7인모임의 김용태 의원도 "내부 격론 끝에 일단 당 쇄신 요구를 위한 연판장 작업은 잠정 중단키로 했다"며 "다만 쇄신 흐름이 지지부진하거나 당 지도부의 협조가 없을 경우 즉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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