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싱그럽다. 초록이 참으로 좋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눈에 들어오는 주변은 온통 초록이다. 어디를 보아도 싱그러움이 넘쳐나고 있다. 앞으로 보아도 뒤로 보아도 마찬가지다. 고개를 들어도 들어오는 것은 굴참나무의 향기다. 자연이 얼마나 오묘하고 경이로운지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초록이 펼쳐내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고불총림 백양사.
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하고 있는 산사로서 대한 조계종 제 25 교구 본사다. 내장산 국립공원의 일부로서 고승대덕들이 많이 배출한 도량이기도 하다. 불교의 깊은 도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니, 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산사에 들어서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아마도 스님들의 수련과 주변 풍광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쌍계루가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실제의 누각이 진짜인지 아니면 물속의 누각이 진짜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만큼 물속에 비추인 누각의 형상이 사실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 곳은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지상의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다.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느냐에 따라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으면 눈으로 보는 세상은 사라진다. 그렇다고 하여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눈을 감고 있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세상은 그대로 존재한다. 단지 볼 수가 없을 뿐이다. 눈으로 보는 세상은 마음으로 보는 세상과는 다르다. 눈으로 보는 세상은 손가락을 볼 뿐 본래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지 않은가?
염화시중의 미소.
마음을 전하는데 말은 필요가 없다. 말로 표현하게 되면 필요 없는 군더더기를 늘릴 뿐이다. 말이나 문자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 진실을 표현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연못 속의 쌍계루를 바라보면서 말이란 참으로 구차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을 열면 모든 것이 다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리를 건너니, '이 무엇고?'라고 써진 탑이 압도한다. 화두다. 화두는 선을 하는데 붙잡고 참구하는 물음이다.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물음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를 향해 걸어각 있는 것일까? 의문은 이어지는데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사천왕문을 지나니,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반겨준다. 초록의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에는 연록의 보리수 열매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열매를 바라보면서 나를 바라본다. 나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하나일까? 아니면 수많은 분신이 있는 것일까? 얻을 수 없는 답에 답답함은 산이 된다.
어찌 보면 강한 것처럼 생각도 되고 어찌 보면 한 없이 약해지기도 하다. 또 어느 순간에는 한없이 착하가다가도 어는 순간에는 그렇게 악할 수가 없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분명 나는 하나인데, 어는 것이 참 나인지 알 수가 없다. 서 있는 나가 진짜 나인지조차 분간하기가 어려워진다.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부처님을 바라본다.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무아를 말씀하셨는가 보다. 진짜의 나는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잠시 인연 따라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 인연이 다하면 소멸한다고 하였다. 소명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데 무슨 욕심을 부린단 말인가? 탐욕은 허망한 바람일 뿐이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앞마당에 작은 연못이 만들어져 있었다. 연못에는 수련이 심어져 있었고 하얀 꽃이 피어져 있었다. 노란 암술에는 어디에서 찾아왔는지, 작은 벌레들이 분주하게 꽃가루를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한가로운지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한 없이 앉아서 취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하였다. 몽테뉴의 말이다. 과거의 일이 아무리 화려하도 사소한 오늘과 비할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나가버린 일이기 때문이다. 한갓 그림자일 뿐이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 또한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미래는 오늘의 행동에 의해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닌가?
오늘을 성실하게 채워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을 대충 보낸다면 미래 또한 대충 만들뿐이다. 그렇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낮 미물인 벌레가 꽃에서 열심히 날갯짓을 하면서 일을 하는 것도 바로 내일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꽃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나를 찾아보았다. 진한 초록의 향에 취해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염된 도시의 공기에 찌든 허파가 보약을 먹는 것 같다. 싱그러운 산소로 인해 쇄락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 얼마나 좋은가? 초록의 자연 속에서 거닐고 있으니, 신선이 된 것 같다. 바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좋았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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