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의 <아우어뉴스>에서 진중권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기사를 올리고, 변희재의 <빅뉴스>와 <미디어워치>에서 그 기사를 전재하기 일주일쯤 전. 그러니까 올 3월 12일에 한 대학생이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다음과 같이 글을 하나 올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그 학생이 변모로부터 들었다는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것으로 보아, 그 학생이 없는 얘기를 지어낸 것 같지는 않다.
"대학에서 사회적 명사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듣는 1학점짜리 수업이 있습니다. 뭐, 학점 부담도 없겠다, 이정재 같은 사람들 강연도 들을 수 있겠다 싶어서 들었지요. 근데 처음부터 나온 '명사'가 무려 변희재...쿠궁 나오시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386세대 비난, 비방으로 일관하시더군요. 그러시더니 '진중권 그 사람만 감옥가면 참 좋겠어요, 일하기가 참 편하겠단 말입니다. 두고 봐요, 오늘 저녁에 그 인간이 S대 미학 동창들이랑 미술계 비리를 저질렀다는 기사가 뜨고 감옥 갈 거예요'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뭐,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진교수가 무슨 비리를 저질렀다는 기사는 보지를 못했는데 말이죠. 변희재씨 진 교수에 대한 증오가 도를 넘어서서는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건가요?"- http://www.joysf.com/3865015 2009.03.12 21:45:40대학에 '특강'을 나가 이런 소리나 늘어놓는 자를 '사회적 명사'라고 추천한 주체는 대체 누굴까? 아무튼 이 글이 올라온 지 일주일 후, '인미협'이라는 단체에 소속된 매체들에서 일제히 한예종의 비리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그 보도에 발이라도 맞춘 듯 곧 한예종에 대한 문화부의 감사가 시작됐다. 인미협과 상관없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 하나, 이번 감사는 유례없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저인망식 감사였다. 아무튼 문화부 감사와 더불어 인미협의 위협은 매우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이 드러난 순간, 보수우파시민사회에서는 황지우 총장, 심광현 교수, 진중권씨 등을 검찰에 고발할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인미협 성명서 2009/03/26) 감사결과가 나오기 전인데 이들은 머릿속으로 벌써 나를 "검찰에 고발할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예종을 털고 또 털다 보면, 검찰에 고발할 정도의 비리는 찾아낼 수 있으리라 굳게 확신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장장 6주에 걸친 저인망 감사로도 나오는 게 별로 없자, 변모는 이제 문화부의 감사를 넘어 아예 검찰의 수사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BBK 때처럼 한예종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저희가 협조해드리겠습니다. 또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문광부 감사가 완료되면 저희가 바로 황지우 총장, 심광현 교수, 그리고 진중권씨 등에 대해서 검찰 고발을 검토하겠습니다. (<빅뉴스> 2009/04/12) 여기서 국립예술학교는 졸지에 BBK와 같은 대형 비리의 온상이 되고, 거기서 가르치던 진중권은 졸지에 김경준 신세가 된다. 하지만 기다리던 감사결과는 그들에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러자 그 동안 자기들이 내게 퍼부어댔던 명예훼손과 인신공격의 법적 책임이 걱정됐나 보다. 부랴부랴 한예종을 방패막으로 삼는다. 내가 자기들을 고소하면, 한예종 전체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넌지시 시사한다.
BBK 사례에서 보듯 진중권이 검찰에 인미협을 고소하는 순간, 한예종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진중권이 절대 인미협을 고소하지 못할 것임에도, 검찰고소 운운하는 것은 3류 정치인들이나 하는 저질 협박에 불과하다 (<프리존뉴스> 2009/05/21)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화부의 감사가 끝났다. 예상했던 대로, 문화부의 감사관은 비공개로 해야 할 감사결과를 슬쩍 언론에 흘렸다. 하지만 그렇게 흘러나온 처분결과 속에도 이렇다 할 비리의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비리'가 안 나오면, 당연히 '부실'로 몰아가야 한다. 하지만 '부실'로 검찰에 고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자 그는 이제 슬쩍 말을 바꾸기 시작한다.
솔직히 수차례 강조했지만, 진씨는 한예종 비리의 깃털이었기 때문에 조용히만 있었으면 크게 걸릴 것도 없었다. (<빅뉴스> 2009/06/07) "솔직히"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지 않은가? 이제야 "크게 걸릴 것도 없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런데 그 동안 매체들 총동원하여 그 난리를 쳤단 말인가? 이로써 감사 건은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그냥 물러설 그가 아니다. 그는 내게 다시 그 동안 "조용히" 있지 않은 죄를 묻는다. 이번엔 허위사실 유포라나?
일단 윗선의 지시로 인미협이 나섰다는 부분, 추부길씨와 공모했다는 부분 등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 인미협이 먼저 진중권씨를 고소하겠다. 그리고 진중권씨가 한예종을 변명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100건이든 1000건이든 모조리 민형사상의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빅뉴스> 2009/05/25)나의 퇴출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에서는 살벌함과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나는 절대 진중권 등 권력형 386세대를 용서할 수 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켜버릴 것이다. (<빅뉴스> 2009/05/31) 도대체 이 타오르는 증오의 근원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변모에게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개종을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전생에 그 친구에게 무슨 큰 죄를 지었던 모양이다. 저 타오르는 비이성적 증오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패러다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불교적 세계관밖에 없다.
인격살인, 여론재판, 특별감사, 수사의뢰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어떻게 인미협의 변모가 감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내가 "감옥에 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유인촌의 문화부가 예술적 이견을 해소하는 데에 사용하는 독특한 방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국회 문방위의 민주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유 장관과 문화부가 "내쫓을 사람에 대해 인격살인과 여론재판을 진행하고, 특별감사를 통해 뒤를 캐서 먼지를 털고, 반항하면 소송이나 수사 의뢰를 해서 괴롭히는 방식"으로 예술가들의 인격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2009/06/08) '인격살인'과 '여론재판'은 인미협이 하고, '특별감사'는 문화부가 하고, '소송이나 수사의뢰'는 인미협이나 문화부가 '협조'하고. 환상의 역할분담이요, 절세의 찰떡궁합이다. 이 깊고 넓은 공감대를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인미협의 변모가 뜬금없이 "검찰 수사" 운운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BBK 사례에서 보듯 진중권이 검찰에 인미협을 고소하는 순간, 한예종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 BBK 때처럼 한예종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저희가 협조해드리겠습니다. 국가의 공공기관인 검찰조직을 자기 맘대로 갖다 쓸 수 있다는 이 드높은 자신감. 우익매체들의 그 보잘 것 없는 매체력에 비해, 이 권력의지는 너무 과도하지 않은가? 검찰마저 자신들의 시녀처럼 부릴 수 있다는 이 기고만장함은 대체 어디서 얻은 것일까?
지난 3월부터 인미협 소속의 우익매체들은 이른바 '진중권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에 발맞추어 문화부는 감사과정에서 나를 비롯한 "특정인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료를 요청"했다고 한다.
문화부가 한예종에 대한 감사를 시작할 무렵 일부 보수 인터넷 언론에 감사 내용의 일부를 흘려 한예종 교수들이 큰 비리를 저지른 집단인양 매도하며 황지우 총장, 심광현 교수, 진중권 객원교수 등 특정인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료를 요청했고 (...) (<피디저널> 2009/06/09)이는 내가 학교에서 들은 바와도 일치하고, 내가 직접 겪은 것과도 일치한다. 한예종에는 수백 명의 교수가 있는데, 그저 1년짜리 계약직을 맡은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료를 요청했단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내가 겪은 바에 따르면, 나에 대한 문화부의 감사는 철저히 인미협의 보도에 따랐고, 감사처분결과 역시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 심지어 이 두 주체는 나의 객원자격에 시비를 거는 과정에서 한예종의 '객원교수채용규정'을 놓치는 실수까지 동일하게 범했다. 이 해프닝에 대해 변모는 이렇게 둘러댄다.
반면 학칙외 규정은 한예종에서 알아서 정하고 바꿀 수 있다. 인미협이 취재하면서 학칙외 규정에서 객원교수 규정을 별도로 인용하지 않았고,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이를 중시여기지 않은 이유이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정한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이다. (<독립신문> 2009/06/08) 누가 봐도 이는 사후정당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변모의 말대로 이게 사실이라면, 그때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생각해 보라. 문화부에서 객원교수규정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인지하고도 무시했는지 자기가 어떻게 아는가? 또 문화부에서 객원교수채용규정을 중시하지 않은 이유를 자기가 어떻게 아는가? 저 문장을 읽어보면, 거의 '문화부와 인미협은 한 마음, 한 뜻이예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진중권 그 사람만 감옥가면 참 좋겠어요, 일하기가 참 편하겠단 말입니다. 두고 봐요, 오늘 저녁에 그 인간이 S대 미학 동창들이랑 미술계 비리를 저질렀다는 기사가 뜨고 감옥 갈 거예요'자객을 쓸 요량이라면 정품을 쓸 일. 칠칠맞게 이런 말이나 흘리고 다니며 장관님 얼굴에 먹칠이나 하는 짝퉁 말고, 정연한 논리와 올곧은 윤리와 세련된 미감으로 나를 제압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닌자를 데려와라. 보수우익 바닥에는 요강에 눈 코 입 그려 머리라고 달고 다니는 사람들 말고는 인물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오죽 인물이 없으면, 고작 변모가 에이스 노릇 하겠는가.
누가 그리스처럼 카잔스키를 장관 시켜달라 그랬나, 프랑스처럼 앙드레 말로를 장관시켜 달라 그랬나. 명색이 문화부 장관이라면, 교양까지는 몰라도 상식은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용식이 말고, 일용이나 응삼이만 됐어도, 내가 이런 허접한 일로 글 쓰느라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른 곳을 털면서도, 자꾸 내 이름을 거론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몇 년 전의 강연까지 열심히 뒤져대는 모양. 털어봐야 쓸 데 없을 것이다. 진중권은 민주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지지자로, 문화판보다는 운동판에서 놀았으니까. 장관 하나 잘못 만나 고생들이 심한데, 어떤 극단적 상황에서도 중립을 지킬 여지는 항상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나치 정권 하에도 쉰들러가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용돈이 필요하면, 차라리 내게 달라 그래라, 줄 테니까. "니들, 과자 사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