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토요일 늦은 아침에 남편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화에 머리가 하얘졌다. 전날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옴에, 늦잠자는 마누라가 미워 장난치는 줄 알았다.
"장난치지마!!! 나 일어났거덩!!!""……….""TV 틀고 속보 봐라!" (띡---)'그가 죽었다니.'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설마 설마 했다. 병원에서 응급조치 중이란다. "휴~ 다행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몇 분 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먹먹함과 서운함, 분노 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 복잡하게 얽혔다.
☞ [엄지뉴스 바로가기] [▶◀ 재택추모] 눈물의 작은 새여2002년 서울의 국민 경선에 참여하였다. 국민 경선 선거인단에 뽑혔을 때 너무 기뻤고, 그리고 노무현에게 한 표를 행사하였다. 노란 손수건을 흔들면서 난 정말 그때 오래간만에 좋아서 울었다.
노무현이 꿈꾸는 가치가 나의 마음속에 크게 울렸고, 그가 꿈꾸는 세상에 공감하였다. 상식, 정의, 형평성, 탈권위 이런 것들이 노무현과 나를 연결시켜주었다. 다소 거친 말, 꾸밈없는 말, 막힘 없는 말은 나에게는 매력이었다.
그러나 대선 직전 정몽준과의 야합(물론 결렬되었지만)과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보여주었던 이라크 파병, 탄핵 정국 이후 여대야소 속에서 벌어진 열린우리당의 지리멸렬함, 한미 FTA 추진은 여는 정치인과 같아 보였다.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다.
그날 밤 덕수궁 앞에 가서 4시간을 기다려 분향을 했는데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상황들에 화가 났다. 주위에서 울고 있는 분들에게도 말하고 싶었다. 울지 마시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되 지치지 말고 힘내자고….
지난 5월 29일 큰아이는 체험학습 보고서를 내고 우리 가족은 시청으로 갔다. 행사 내내 남편도 울고 나도 울고, 우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아이들은 그것이 슬펐는지 등과 어깨를 안아주며 우리를 달랬다.
"혁주야 혁규야 이날을 절대 잊으면 안 돼.""왜?""왜냐면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 너희들 다음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 돌아가신 날이거든."과거의 청산 없는 독립국가라는 것이, 왕을 처단하거나 쫓아내지 못하고 이룬 공화국이란 것이, 유신 독재자와 그 잔당들, 그 잔당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 촉수들을 그대로 둔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없는 허약한 체질이라는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 난 답답하고, 허망하고, 분노하고, 슬펐다.
대학 시절의 민주화 운동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탄생에 작은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만으로 자라나는 내 새끼들에게 내가 사회적으로 할 것은 다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던가.
남편에게 한국을 떠나자고 했다. 떠나고 싶다.
의로운 사람보다는 이로운 사람을 찾는 사회,
욕망의 덩어리들이 춤추는 사회,
불의가 날뛰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사회,
극우 꼴통들이 필봉을 날리고 조중동이 확대재생산하는 사회,
노동자가 단돈 30원 올리려고 자신의 몸을 태우는 사회,
경찰들이 용역업체와 합동으로 철거민을 몰아내고 태우는 사회.
국가와 시민을 사유물로 생각하는 꼴통들. 난 그럼에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떠나야 할 이유이기도 하지만 싸워야 할 이유이니깐. 물론 또 남편한테 술 먹고 또 꼬장부리면서 떠나자고 하겠지만….
☞ [엄지뉴스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제가 올린 카페 사진을 보고 쥔장 언니가 너무 좋아하셨네요. 얼마 전에 동네에 조그맣게 생겼는데 제목(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이 맘에 들어 종종 들려 커피 마시면서 쥔장언니랑 친해졌구요. 장례식 때도 가고 싶은데 못 가겠다고 하는 걸 꼬시고 꼬셔서 문 닫고 같이 가자고 했더니 오셨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