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등 당 지도부들은 지난 7일부터 매일 오후 4시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삼보일배를 진행 중이다. 벌써 6일째 삼보일배를 진행 중이지만, 그들의 최종 목표인 청와대까지는 '경찰'이라는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어 목표달성이 쉽지 않다.
이승헌 민주노동당 조직대협실 실장은 "청와대 인근에 위치한 정부중앙청사 창성동별관이 경찰의 최후 저지선"이라며 "고작 몇 명이 삼보일배를 하는데 수백 명이 와서 막으니 별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장면 ① : 오후 4시 40분] 평화로운 출발... 20분 만에 경찰 200여 명 투입
12일 오후 4시 20분 덕수궁 대한문 민주노동당 농성천막 앞. 무릎보호대를 착용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이 시민들 앞에 섰다. 강 대표는 시민들에게 "삼보일배가 이명박 대통령의 오기와 독선 정치를 바로 잡아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시작은 평화로웠다. 강 대표와 곽 의원이 세 발자국을 걸은 뒤 절을 하면, 당직자 20여 명은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걷는 형식이었다. 특히 곽 의원은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던져가며 삼보일배를 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서울광장에서부터 출발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찰 200여 명이었다. 경찰은 시청역 4번 출구 앞을 가로막은 후 두 의원만 통과시켰고, 나머지 20여 명의 민노당 관계자들을 방패로 막아섰다. 일명 '꼬리자르기'식 진압이었다.
민노당 관계자들은 정치적 구호도 외치지 않았고, 어떠한 퍼포먼스도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의원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경찰이 이들을 막은 이유는 삼보일배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 뿐이었다.
몇몇 시민들은 "고작 2명이 삼보일배를 하는데 200명이 막는다"며 경찰을 비판했다. 또 길을 가던 한 50대 여성은 이 모습을 보고 "소란 피우는 것도 아닌데 경찰이 이렇게 많이 와서 막네, 쯧쯧"이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장면 ② : 오후 4시 55분] 채증 카메라만 10대... 국회의원도 채증
두 의원과 10여 명의 민노당 관계자는 계속해서 삼보일배를 이어갔다. 경찰들의 저지에 의해 나머지 10여 명의 관계자들은 따라오지 못한 상태였다. 몸이 불편한 곽 의원은 삼보일배를 중단하고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잠시 평화로운 듯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동아일보 앞에서 다시 한 번 민노당 관계자들의 주위를 둘러쌌다. 이 과정에서 곽 의원도 경찰에게 포위를 당했다. 이 상황은 10분이 넘도록 지속됐다.
많은 시민들이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게 어디 있어? 이것까지 막으면 어쩌라는 거야."
"경찰들 충성심이 대단하네."
"저러니까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발길을 멈추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박아무개(55)씨는 "대한민국 법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며 "천신일에게 그렇게 관대하더니 왜 이럴 때만 엄격해지냐"고 울분을 토했다.
또한 경찰은 포위망 바깥쪽에서 10여 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민노당 관계자들의 채증을 시도했다. '채증을 왜 이렇게 심하게 하느냐'는 민노당 관계자의 항의가 있었지만 경찰은 이를 묵살했다. 또 한 경찰이 곽 의원을 채증하자 곽 의원이 "어떻게 된 게 국회의원도 채증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장면 ③ : 오후 6시 30분] 여전히 두터운 경찰 벽... 청와대 150m 앞서 막혀
두 차례 진압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삼보일배를 뒤 따르던 민노당 관계자들의 수가 5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경찰의 감시는 줄어들 줄 몰랐다. 광화문역을 지나 경복궁역에 도착할 때까지 100여 명의 경찰이 번갈아가며 이들의 모습을 감시했다.
강 대표와 민노당 관계자들이 정부중앙청사 창성동별관 앞에 도착하자 경찰 200여 명이 일렬로 늘어서 길을 막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 의원들에게도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정부중앙청사 창성동별관을 넘어가면 청와대 경비 구역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강 대표와 민노당 관계자들은 이날도 청와대의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철수해야만 했다.
강 대표는 "작년에는 30여 명이 청와대 앞 분수대까지 들어가 기자회견을 했다"며 "1년이 지난 올해, 더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막는 것을 보니 MB독재가 작년보다 더 심해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의원은 "우리는 정부와 똑같이 불법과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삼보일배로 평화로운 행진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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