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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 그것이 싸움의 규칙이다. 전선(戰線)은 비교적 명확하다. 여러 갈래가 있지만, 결국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귀결될까?

 

어부지리를 즐겨온 한나라당

 

한나라당의 뿌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이다. 이른바 보수들이 요즘 이승만 찬양에 열을 올리는 것이 그 증거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독재자이고, 이른바 사사오입개헌(1954년)으로 우리 초기 정치사에 오점을 남겼다. 사사오입개헌은 절차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헌법에 위배되는 헌법개정이었고, 이후 3·15 부정선거를 있게 했고, 뒤이어 4·19혁명으로 현직 대통령이 쫓겨나는 비극적 역사를 창출했다.

 

그 다음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회창, 박근혜, 그리고 현재의 박희태로 이어지는 한나라당 계보는 폭력과 금력과 권력으로 얼룩졌다. 선거 때마다 중앙당에서 내려 보낸 돈을, 아내며 자식들이며, 가까운 가족들이(소문나면 좋지 않으니까) 밤새 봉투에 나눠 담아 선거구민에게 돌린 경험은 과거가 아니다. 왜냐하면 차떼기 파동은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차떼기로 받은 돈을 나눠 쇼핑백에 담아 들고 갔다는 그들이 지금 한나라당 중심세력이다. 그들은 차떼기돈 출구조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질색하여 들고 일어났었다. 이것이 한나라당 내력 요약이다.

 

보수언론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그 성명을 기왕의 것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한,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기는 쉽지 않다. 궁지에 몰리면 갈아다는 문패, 그래봤자 내용물은 같다. 그야말로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지 않는다. 그 동네 이른바 소장들은 노장들 때문이라 하여 무슨 정풍 운동 같은 흉내를 내는데, 지금 노장들이 소장 시절에 모두 해본 장난들이다. 자정(自淨)이나 쇄신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쇄신특위 위원장 감투를 쓰게 된 원희룡이 요즘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쇄신이 가능하다면 쇄신 필요성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2004년 노무현의 '첫 번째 덫'(이렇게 표현해두자)에 걸렸을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그때는 박정희의 맏딸 박근혜가 종아리 걷어붙이고 매 맞는 흉내나, 멀쩡한 건물 놔두고 천막치고 나서는 연극 정도로 극복해낼 수 있었다. 국민을 홀린 마법은 그만큼 완강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두 번째 덫'(이렇게 표현해두자)은 아무래도 달라 보인다. 한나라당의 침몰이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 문단에서 살펴보려는 바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은 언제나 민주당의 삽질 덕분에 부귀영화를 만세토록 누릴 수 있었다. 어부지리, 이것은 한나라당에게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한나라당은 그냥 구럭을 메고 바닷가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면 된다. 그렇게 하고서도 저녁에 돌아올 때면 살진 물고기들을 구럭 가득하게 담아 올 수 있다.

 

딱 두 차례의 예외가 있었다. 한 번은 이인제의 모반 때문이었고, 다른 한번은 당시로서는 정치에 갓 발을 들어놓은 신출내기 정치인이었던 유시민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지략 때문이었다. 그밖에는 천하세는 언제나 한나라당 것이었다. 한나라당은 천운을 타고 났다.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 다음 문단에서 증명될 것이다.

 

삽질 전문 민주당

 

한나라당의 천하세를 극복해내지 않고는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민주당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뜻밖으로 많다. 민주당의 염치없는 삽질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다. 1955년,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항거하는 세력들이 모여 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출발부터 민주세력, 양심세력의 정치적 결사체였다. 그 사이에 사이비도 허다하게 끼어들었으나, 민주당의 줄기찬 지향만은 부패와 독재에 저항하기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절호의 기회를 자주 물 말아 먹으면서, 국민을 배반했고, 역사를 망가뜨렸다.

 

이른바 보수 정당의 족보는 요즘으로 치자면 친박연대니 자유선진당이니 하는 곁다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큰 줄기만은 자유당,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신한국당, 그리고 한나라당,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꿰어볼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 족보는 민주당 사람들 자신마저 쉽사리 손꼽아 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이합집산을 수없이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 염치없어 보이는 이합집산, 그 하나하나는 결정적인 이적 역할을 했다.

 

4월혁명(1960년) 뒤,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신구파 싸움 끝에 분당하여 정국을 극도의 혼란 상태에 몰아넣음으로써 박정희를 불러들였고, 이른바 서울의 봄을 누빈 3김 가운데 중추였던 김대중과 김영삼의 세 싸움은 전두환이 탱크를 밀고 들어올 수 있는 터 닦기가 되었으며, 골수 민주당 출신 유치송은 어용야당을 만들어, 전두환의 관제 민주주의 구색을 갖추어 주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6월항쟁 덕분에 쟁취한 직선제, 그 첫 번째 대통령선거(1987년)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어이없는 적전분열을 일으켜, 노태우를 벙긋 웃게 했고, 김영삼은 더 나아가 자기 휘하의 사람들을 대동하고 노태우에게 투항하여 그로 하여금 고종명의 복을 누리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박, 전, 노, 우리 역사에서 야료를 부린 이 세 괴물을 존재하게 한 것은 전혀 민주당의 삽질 탓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고전한 것은, 후단협과 탈당파를 포함한, 비노, 반노 세력의 참 염치없는 이적행위 때문이었고, 국민들이 지금 가장 가깝게 기억하고 있는 2004년, 노무현의 첫 번째 덫 덕분에 마침내 탈환한 의회권력, 그것을 아주 간단하게 물 말아먹은 것도 물론 민주당의 삽질이었다. 원 구성에만도 몇 달이 걸렸고, 제대로 관철시킨 법안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허구한 날 계파 싸움이나 일삼고 있던 그 지리멸렬을 국민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민주당이다. 두루, 두루두루, 그러니까 민주당은 국민을 향해 자랑할 게 하나도 없다. 석고대죄가 온당하다.

 

국민들이 등을 돌린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국민들이 믿지 못하는 것도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은 또 다시 민주당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왜냐하면 피할 수 없는 전투를 위해 어쨌거나 민주당을 다독이고 북돋우어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키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분열은 결국 한나라당의 만수무강을 돕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민주당을 향해 눈길을 돌린 것이다. 민주당도 국민들의 그 눈길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물 말아먹은 가능성은 90% 이상이다.

 

그들은 또 세 조각,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 싸움박질을 하다가 이 절호의 기회를 또 물 말아먹을 것이다. 국민들은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비빌 언덕이라고는 아무리 둘러봐도 그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다. 여기서 또 분열할 경우에는 자신들이 목도한 저 거대한 조문 물결이 자신들을 향한 분노의 폭풍이 되리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또 분열을 감행할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그들을 향해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민들의 가련한 입지다.

 

한나라당이 필승하는 길

 

정치적 선진국이라면 정당의 승패는 정책에 의해 좌우되겠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정책은 기껏 정치적 프로파간다 역할이나 한다. 정치적 승부에서 정책은 절대적 승부수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흑색선전 같은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길 수 있는 길은 쉽다. 미국 CIA가 후진국 정부 전복 공작을 하듯이, 민주당 분열 공작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제 흥에 겨워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죽기살기로 싸움판을 벌일 가능성이 크니까 굳이 공작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고인의 뜻'이라는 이전에 없던 채찍도 있고, 또 이번에마저 분열할 경우, 이 땅에서 그 성명을 보전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니까, 쉽사리 싸움판을 벌이지 못할 듯도 하다.

 

그러므로 하여튼 공작을 할 필요는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거물급 의원들을 대거 빼내온 경험도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합법적'으로 해낼 수 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이를테면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접근할 수 없는 무슨 장치 같은 것을 강구할 필요도 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의 태도가 차츰 더 한나라당에 대해 불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무현의 호화 요트나 봉화 아방궁을 창출해낸 조중동 프레임이 더욱더 잘 가동되도록, 반대급부 같은 것을 조금 더 확실하게 안겨주는 것도 중요하다. 뻔한 논조지만 그래도 대중은 넘어간다. 이른바 좌파 언론이 제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조중동을 비롯한 이명박 직계가 장악하고 있는 언론의 화력을 당해낼 수는 없다.

 

민주당이 필승하는 길

 

분열 대신 화해와 통합을 이룩한 상태만 유지된다면,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 길도 쉽다. 한나라당으로서 구사해볼 수 있는 전략이 민주당의 분열 정도인 반면에, 민주당으로서는 다양한 전략이 가능하니까, 더욱더 유리하다.

 

역시 '노무현 때문'에 최근 민주당은 제법 일사불란하다. 정세균도 모처럼만에 대장답다. 그 영(令)이 먹혀들어가고 있는 듯한 것으로 보아 그렇다. 조문 국면 대응도 반듯했고, 6·10 항쟁 22주년 투쟁도 잘 이끌었다. 또 정세균은 다른 인사들에 견줘 노무현에 대한 부채감이 적은 처신을 해왔기에 이른바 친노 세력과의 관계에서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시 다른 인사들에 견줘, 민주당 내 여러 계파와의 역학 관계도 원만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정세균은 또 외유내강형으로, 우리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인품 같은, 인간적 향기도 엿보인다. 그런 면모는 대중 흡인력이 될 수 있다. 그의 한나라당 쪽 상대역과 견줘보면 이 점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두루 역대 어느 대표보다도 더 대표답다. 더 나은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노무현 효과를 부정할 수 없는 민주당으로서는 더 좋을 수 없다. 이런 체제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다음 전략은 어렵지 않다.

 

요점은 상대방의 삽질 유도다. 삽질로 망했으니, 이제 상대방의 삽질로 한번 흥해보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명박들, 김동길류, 또는 안상수나 홍준표나 주성영이나 전여옥류가 독설조 발언을 되풀이하도록 격려할 것(격려금이라도 지급할 것), 이명박이 주례 라디오 연설이 아니라 텔레비전 연설을 정기적으로 하도록 적극 추진할 것(이명박이 입을 더 벌리고 얼굴을 더 보일수록 민심 이반은 가속되니까), 노무현의 죽음을 욕보이려는 세력을 키울 것, 서울광장을 전경 버스가 둘러쌀 수 있는 조건을 자꾸 만들 것, 보수 단체들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시위를 하도록 유도할 것, 친이와 친박의 싸움을 부채질할 것, 마스크 쓰면 잡아간다는 따위의 법을 자꾸 만들려 하도록 독려할 것, 그러면서 대국회, 대여당, 대청와대 관계에서 태도를 분명히 할 것, 죽어야 할 자리에서는 죽는 시늉만 지어 보일 게 아니라 확실하게 죽을 것…, 그러면 민주당은 필승할 수 있다. 문제는 분열이다.

 

분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누누이 되풀이하는 이야기지만 민주당의 망조는 분열로부터 비롯되었다. 

분열을 막지 못하면 민주당은 또 자멸한다.

 

지금 민주당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정동영이다. 정동영 자신이 아니라, 정동영이라는 계수가 살짝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민주당의 균열은 시작될 수 있다. 국민들이 민주당을 향해 코를 핑 푸는 표정이 되고, 마침내 등을 돌렸던 이유 가운데 정동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정동영은 노무현에 대해 참 못할 짓을 했다. 노무현 사후, 정동영의 지난 모습은 더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 정동영 자신도 잊지 않고 있다.

 

정동영이 진실로 '당과 국민을 사랑한다면', 민주당을 현재 그대로 용납해주어야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고 정동영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선다면, 그 시간부터 민주당의 붕괴는 시작되고, 지금 민주당을 향하고 있는 국민들의 성원은 삽시간에 분노로 바뀔 것이다. 당명에 불복하면서, '동작구에 뼈를 묻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으로서, 정동영은 이미 제2의 이인제가 되었다.

 

이인제가 아직도 논산 사람들의 정서에 기생하듯이, 정동영도 전주, 덕진 사람들의 정서에 기생하여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그 이상을 바랄 경우, 정동영은 그야말로 역사에 큰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인제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그 똑똑한 사람이 왜 저 꼴이 되었는가. 얼마나 측은해 보이는가. 

 

민주당의 분열을 막는 두 번째 고려 사항은 계파의 무력화다. 현재의 계파가 현재 상태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한, 화해와 통합은 불가능하다. 노무현 유산과 친노를 젖혀둔 채 민주당은 존재할 수 없다. 노무현이 떠난 뒤, 민주당이 처한 생존환경이 그렇다. 현재의 계파가 곧이곧대로 작용하는 한, 친노가 발붙일 여지는 없다. 밀려난 셈인 친노가 발길을 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정지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 쪽에서도 계파 무력화는 긴요하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해볼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 가운데 하나는 각종 선거 후보를 뽑는 경선 규칙의 변경이다. 계파 계수가 기능하기 어려울 만큼 여론조사 비중을 높일 경우, 계파는 무력화될 수 있고, 당원 명부 조작이니 하는 장난질을 방지할 수 있으며, 당이 필요로 하는 화해와 통합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고, 더불어 친노를 비롯한 범민주세력과 함께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출 수 있다. 정당의 승패는 의석수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고, 당선 여부는 결국은 여론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으니까, 경선에서 여론조사 비중을 높이는 것은 실용적 실천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후단협이니 탄핵 주도 세력이니 하는 것들, 또는 노무현의 유덕을 기리기에는 어쩐지 떳떳치 못한 전력의 소유자들…, 그 모든 전비들은 잊어야 한다. 잊지 않아 득 될 게 없기 때문이고, 차 떼고 포마저 떼내고 나면 장기판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1급수가 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이를테면 유시민에 대한 일부 계파의 괜한 적의 따위, 스스로 가소로워 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 잊고, 양해하고, 함께 용광로 안에 들어가 함께 녹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노무현의 유지를 실현하여, 이른바 보수가 만든 악과(惡果), 한나라당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길이다.

 

잘만 다독이고 북돋우며 정돈하면, 민주당은 이승만 독재에 저항하여, 1955년 출범 이래, 가장 강력한 민주세력 구현체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신망만 획득하는 한, 의석수의 열세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6·10 투쟁 때, 민주당에 대한 시민의 태도가 지난 해 촛불 때와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민주당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더도 말고, 2009년 5월 23일 이후, 오늘까지 보여주고 있는 일체감을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그러면 투쟁력도 나오고, 대국민 설득력도 갖출 수 있다. 반면에, 여기서 또 삽질하게 될 경우, 민주당은 아마도 지금 살아 있는 민주당 사람들의 생전에는 기회를 다시는 잡아보지 못한 채, 언제나 소수 정당의 설음을 감수하며, 스스로 한심해 하는 계파 다툼이나 줄기차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절대적 기로에 서 있다.

국운이 그들에게 걸려 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後記 - 흰 나비, 흰 비둘기, 그리고 오색 채운

 

국민장 닷새째인 5월 27일, 봉하마을 분향소에 안치되어 있는 고인의 영정, 오른편 눈에 흰 나비 한 마리가 오랫동안 앉아 있다 사라졌다. 29일, 이른 아침, 발인제를 지내는 동안 난데없이 새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나타나 영구차 주위를 5분 정도 맴돌다가 뒷산 쪽으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그토록 새하얀 비둘기는 처음 본다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서울광장에서 치러진 노제 중에,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 하늘에 느닷없이 이루어진 오색 채운(彩雲)이었다. 서울 하늘에서 그런 채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고인의 넋이라 생각했다. 설화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게 아니다. 그 나비, 그 비둘기, 그 채운을 노무현의 현현이라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이런 상실감은 우리 현실에서는 극히 드물다.

 

그의 죽음, 애달프다. 그를 죽인 현실, 노엽다. 그 애달픔과 그 노여움이 나로 하여금 객쩍기 짝이 없는 이런 글을 불쑥 시작하게 했다. 끝내기까지 몹시 거북했다. 거북해하고 있는 동안 노무현에 대한 제대로 된 글 하나를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목도 정했다. 쓰게 될 것인가? 알 수 없다. 제목에 대한 애착 때문에라도 꼭 쓰고 싶지만, 역시 알 수 없다. 무력감, 그만큼 크다.

 

영혼이 있는가? 잘 모르겠는데, 만일 있다면, 내가 굳이 명복을 기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왜냐하면 들은 대로라면 영혼은 전지전능하니까, 그가 자신의 사후,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환히 살펴, 주먹을 불끈 쥔 채 지켜보고 있을 것이므로, 그래봐야 신통력도 없는 나의 기원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애달프고, 노엽다. 그를 죽인 자들의 실로 후안무치한 적반하장이 나를 더 노엽게 한다. 작별인사 삼아, 내가 때로 흥얼거리는 노래'불가능한 꿈(The Impossible Dream)'을 불러주고 싶다. 그가 떠난 뒤, 분명해졌는데, 이 노래는 마디마디가 그를 묘사한 것 같다. To dream the impossible dream/To fight the unbeatable foe/To bear with unbearable sorrow/To run where the brave dare not to go….


#노무현#민주당#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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