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짱 영혼 달랠 길은 다음 선거 뿐…. 민심(民心) 일동.'
13일 오전 김해 봉하마을에 붙여 있는 글귀를 본 50대 아주머니가 말했다. 따가운 날씨 탓에 챙이 긴 모자를 쓴 아주머니는 "누가 써 놓았는지 말 한 번 참 잘해 놓았네, 옳지 맞는 말이지"라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잘 잊어버리는 게 문제야"라며 "제발 잊지 말아야 할 것인데"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조문객들이 빼곡히 붙여 놓은 '추모의 글'을 차례차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 맞는 말이네,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라고 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네 번째 주말을 맞은 13일에도 많은 추모객들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았다. 김해시와 봉하마을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만 5000여명이 조문했으며, 오후까지 수만명이 다녀갈 것으로 보인다.
봉하마을 입구에서 추모객 숫자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오전보다 오후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이런 추세로 가면 내일까지 수만명이 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충일(6일)이 끼었던 지난 주말에는 10만명 이상이 다녀갔다. 평일에도 평균 하루 1만명 이상이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13일 오전부터 대형버스는 봉하마을에 들어갈 수 없으며, 버스를 타고온 조문객들은 마을에서 1.5km 가량 떨어져 있는 본산공단에서부터 걸어야 한다.
경찰이 봉하마을 곳곳에 배치되어 교통통제를 하고 있는데, 이날 오전 11시경부터 마을에 들어오는 차량은 일방통행만 하고 있다. 한 경찰관은 "교통지도를 위해 경찰관 20여명이 배치되었다"면서 "상황을 봐가면서 마을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삼거리에서부터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차장에 있는 분향소에는 조문하기 위해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꺼번에 10여명씩 분향하고 있으며, 이들은 향을 피운 뒤 재배했다. 국화 꽃다발을 준비해 와 영전에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날 오전엔 한 군인이 국화꽃 다발을 들고 와 영전에 바친 뒤 거수경례했다.
일부 추모객들은 분향한 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앞을 지나 봉화산 정토원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추모객들은 봉하마을 인근 김해나 창원, 부산뿐만 아니라 대구, 광주, 나주,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오고 있다.
대구에서 왔다고 말한 50대 아줌마 4명은 "오늘이 49재 중 삼재를 지내는 줄 알고 왔는데, 어제 지냈다고 한다"라며 아쉬워했다. 이들은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는데 그렇게 파헤치더니 사람을 죽게까지 만들었다"면서 "이건 독재지, 민주주의라 할 수 있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형버스를 타고 나중에서 온 단체도 있었다. 그 중 한 아저씨는 "우리는 다른 데 가는 게 목적이 아니고 봉하마을에 오기 위해 나주에서 왔다"면서 "다들 꼭 한 번은 와야 한다고 해서 왔는데 오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추모객들은 공사장 가림막과 건물 외벽 등 곳곳에 붙어 있는 '추모의 글'을 읽기도 했다. 추모객들은 "쥐박이를 뽑은 국민이 죄인입니다"거나 "이곳을 민주화 성지로 만들어 나갑시다-무명씨"는 글을 써놓기도 했다.
봉하마을에선 자원봉사자 수십 명이 추모객 안내와 방명록 서명 등을 돕고 있었다. '노사모'와 '시민광장', '자치21' 회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
최상영 (사)자치21 사무처장은 "지난 주말에는 10만명 이상이 다녀갔는데, 이번 주말에도 4~5만명은 다녀갈 것 같다"면서 "추모객들은 분향한 뒤 부엉이 바위를 거쳐 정토원까지 성지 순례하듯 다녀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는 최근 봉하마을에 간이화장실 1개를 지원했다. 추모객들은 더운 날씨 탓에 물을 필요로 하지만, 김해시는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물은 별도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마을 주차장 한 켠에 '음수대'를 설치해 놓고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최상영 사무처장은 "추모객들은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물을 많이 찾는데, 지원받지 못하다 보니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하는 수 없이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갖고 온 물을 나눠주었는데,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김해시에서 물이라도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봉하마을 곳곳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 및 공개청문회 청원 천만인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서명용지는 한 장에 10명씩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도록 해놓았는데, 많은 추모객들이 줄을 서서 적고 있는 상황.
서명용지에는 "검찰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 시행"과 "검찰, 국정원, 국세청 관계자를 청문회에 소환하여 공개 심문할 것", "법무부 장관을 탄핵할 것", "검찰총장, 대검 중앙수사부장, 수사기획관을 즉각 파면할 것" 등 요구사항이 적혀 있다.
한 서명자는 "대통령이 억울하게 죽었으니까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마음에 서명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을 위해 서명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영두 위원장(민주당 김해갑)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래도 좀 사는 딸보다 그렇지 못한 딸이 땅을 치며 통곡하고 울듯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못 미치니까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 더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분향소에 많은 추모객들이 다녀가는데, 지금도 우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추모객들이 편안하게 조문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봉하마을 주민들은 주말에도 농사 준비에 한창이다.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즐겨 썼던 밀짚모자(노무현 모자)를 사서 쓰기도 했다. '노무현 모자'를 팔고 있는 마을 주민은 "모자를 찾은 사람들이 많은데, 주말에는 하루 300~500개 정도 팔린다"고 말했다.
봉하마을 주민들은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지난해부터 '오리농법'으로 벼를 경작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오리농법 경작 면적을 더 늘렸다. 봉하마을 들판에는 모내기가 이미 끝난 상태이며, 마을 주민들은 14일 오전 오리를 논에 풀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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