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민주 통일을 위해 삶을 불사른 민족의 큰 별, 늦봄 문익환 선생께서 서거하신 해입니다. 30대에 접어든 저는 그 해 '늦봄'이 저물었던 것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없습니다. 중학생 신분으로 학업에만 열중해서 그랬는지, 그저 영화배우 문성근의 아버지가 문익환 목사였다는 사실만 남아있을 뿐이지요.
1994년 이전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서부터 동네 교회 앞마당을 오갔지만 문익환 선생의 행적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이런 제가 늦게나마 봄을 맞이하게 된 계기는 '문익환 평전' 때문입니다. 그것도 스무 살이 넘어서요.
문익환 평전을 통해 알게 된 선생의 이야기는 뒤통수를 '탁!' 치는 듯했습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큰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는 충격, 출생지부터 낯설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광활한 만주 벌판 북간도 명동이란 곳입니다. 이 낯선 땅은 일제치하의 어두운 그늘이 한반도에 드리웠을 때 민족교육의 큰 뜻을 품은 '선각자'들이 잡은 터이지요.
문익환 선생은 그들의 2세대요, 그의 출생은 민족해방과 민족교육의 꿈을 향해 떠난 이들의 결실인 셈입니다. 그곳에서 문익환 선생은 윤동주, 장준하 등 우리 현대사를 빛낸 이들과 함께 찬바람에 맞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자랐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선생이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지기'로 지냈음을 문익환 평전을 통해서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간 우리 근현대사에 얼마나 무지몽매했던가! 잠들어 있던 정신을 '탁!' 깨치는 죽비소리가 귓등을 스치는 듯합니다.
역사의 질곡 앞에서 거침없는 생을
평전은 계속해서 문익환 선생의 출생, 성장과정을 풀어갑니다. 문익환 선생의 인생을 따라가노라면 일본의 한반도 통치와 해방, 남과 북의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을 만날 수 있지요. 그는 그렇게 온몸으로 역사의 질곡을 받아 안으며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익환 선생이 민주화와 통일운동으로 투신하여 '늦봄'을 만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를 흔들어 깨운 이는 청년 전태일인데, 바로 전태일의 숭고한 죽음이 한창 성서 번역에만 몰두해 있던 문익환 선생을 깨운 것이지요. 선생은 전태일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주도아래 모인 청계피복노조와 함께했다고 합니다. 밥을 사 먹이고 격려의 말을 해주고 밑바닥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성육신 한 것이지요.
동주는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살다가 한 점 부끄럼 없이 죽었습니다.
준하는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는다"며 살다가 우리 모두의 자랑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동수군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벗어버릴 수 없는 부끄러움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이미 뒤집어쓴 부끄러움을 빨리 얼마나 빨리 벗어버리느냐는데 있습니다. <옥중에서 어머님께 보내는 편지 중에서>
문익환 선생은 분단과 독재의 현실 앞에서 결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늦게 봄을 맞이한 그는 활활 타올랐지요. 비민주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 통일을 향한 걸음. 선생이 몰고 온 불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 정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지만 주류세력에게는 눈에 가시였나 봅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활활 타오르는 늦봄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거침이 없었지요. 상대가 누구든 바르지 않은 것에 대해 바르지 않다고 말하였고, 국가보안법의 그늘 속에서도 통일을 위해 방북을 불사했습니다. 그런 선생의 걸음 앞에 놓인 것은 여섯 차례의 옥고였습니다.
1994년 심장마비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선생은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불을 지폈습니다. 그렇게 그는 활활 타오르다 가셨지요. 미처 몰랐습니다. 선생의 이야기를, 삶을, 1994년을. 평전을 읽기 전에는 언론에 의해, 교권에 의해 간단하게 재단된 '빨갱이 목사 문익환'의 모습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익환 평전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시대의 큰 별 늦봄 문익환 선생의 삶과 죽음을 정직하게 들려주고 나아가야 할 걸음을 깨우쳐 주니까요.
삶과 죽음이 던지는 의미, 그 무게 앞에서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다시금 문익환 평전을 펼지며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의미를 곱씹어봅니다. 그리고 두 분의 죽음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냅니다.
권력 앞에서 자기 목숨 하나 구하고자 하는 자세로 살지 않았다는 것, 권력에 의해 그들의 삶이 간단하게 재단되었지만 결국에는 진실한 삶이 소리쳐 많은 사람들을 깨우쳤다는 것, 그 깨우침은 그들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동일하게 우리 시대의 울림으로 남아있다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 평전도 머지않아 나오겠지요.
늦봄의 삶과 죽음이 던지는 의미, 그 무게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주어진 삶의 몫을 잘 분별하는 것이 살아있는 자의 자세이겠지요. 꿈을 꾸어야겠습니다. 군사독재, 갈라진 땅 위에 서서 "통일은 이미 됐어"라고 외친 문익환 선생처럼 말이지요. 연일 날아오는 갑갑한 소식들이 있더라도, 전경차들이 숨통을 죄는 듯이 서울 광장을 가로막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래도 가야겠지요. 문익환 평전을 읽으며 마음으로 말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의 삶과 죽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