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기자의 분석이 옳다면, 변희재의 진중권에 대한 법적대응은 이명박을 끼고 들어가는 완장펀치다. 변희재가 붙잡은 동앗줄이 튼튼하건 아니건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건 줄을 잡은 사람이 판단하면 될 일이고, 변희재는 원래 줄을 잘 바꿔타는 버릇이 있으므로 우리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변희재 깜냥의 한계
만약 진중권이 한예종을 끼고 들어오는 문화관광부의 공격에 놀란 것이라면 변희재를 향한 그의 공격은 불필요했다. 변희재가 별 영향력없는 그만의 매체들을 총동원해서 한예종 사태를 부풀리고 과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변희재에게는 한예종 사태로 진중권을 무너뜨릴 물리적 억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변희재가 소문을 퍼뜨릴 수는 있지만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문화관광부다. 한예종을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것은, 그리고 한예종 사태로 여론의 눈치를 보는 곳은 문화관광부이기 때문이다. 이는 변희재가 진중권을 허위사실유포죄와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물론 이해 당사자가 아닌 변희재가 문화관광부를 대신해 고소를 한다는 사실도 우습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실 이런 공격은 의미가 없다. 진중권이 신경쓰고 있는 것은 문화관광부를 끼고 들어오는 1700만원짜리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는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봉급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진중권은 성실히 객원교수직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그를 공격하는 권력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진중권에게 명예훼손이니 허위사실유포니 하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터, 변희재는 한예종사태에 대해 더 이상 꺼낼 카드가 없으면 이제 진중권의 눈에 밟힐 상대가 아니다.
진중권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물론 나는 그에게 충분히 대학 강단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변희재나 자칭 좌파회의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보수들처럼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박사학위라든가 어떤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평가의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면 가르치는 일도 실력으로 뽑으면 되는 일이다. 계급장 떼고 제대로 평가받으면 되는 일이다. 여기에 박사학위니 뭐니 하는 간판은 장애가 될 뿐이다. 오늘 <와인 미라클>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사실와인이 맛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 블라인드테스트에서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프랑스산 와인을 누른 것은 심사위원들이 눈을 가렸기때문이다.
간판과 졸업장을 따지는 한국의 문화는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가 없다는 데서 비롯되는 사태다. 간판과 졸업장보다는 이력서와 추천서, 그리고 면접이 훨씬 좋은 시스템이다. 문제는 형평성이겠지만 간판 떼고 계급장 떼고 진검으로 승부하는 그런 세상은 변학사에게도 좋을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변학사는 진중권이 유학 실패자네 뭐네 하는 치사한 이야기는 스스로에게도 독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그런 치사한 공격은 좀 멈출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진중권의 진짜 적(敵)과 적(籍)
진중권은 중앙대에 적을 두고 있다. 그는 언젠가부터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의 겸임교수라는 타이틀로 소개되고 있다. 실상 한예종은 진중권의 투잡이다. 결국 진중권이 밥벌어먹고 사는, 그리고 간판이 중요한 한국사회에서 진중권에게 최소한의 권위를 주는 자리는중앙대에서 마련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중앙대가 좀 이상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앙대의 이사장이자 두산중공업의 회장인 사람이 중앙대를 구조조정하려고 한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는 전국토가 공사판으로 변모되는 현실을 실감했다. 두산중공업 사장도 대학을 제대로 된 공사판으로 만들 생각인 듯 하다. 그는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 대학은 문제가 있다"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다. 현재의 단과대 학과를 전면 개편하는 일에 착수하고 있으며, 교수들과의 한바탕 전쟁도 불사한다는 후문이다.
그는 회계, 한문, 영어처럼 사회에 나가 쓸 수 있는 걸 가르치는 게 대학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총장직선제는 환자가 의사를 뽑는 일처럼 바보 같은짓이라고 믿는 분이다. 진중권은 이처럼 대학을 취업준비소로 믿는, 아니 그걸 넘어 이런 대학개혁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이사장밑에서 가르치는 교수다. 게다가 이사장은 전쟁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나는 중앙대의 이사장이 미학을 어떻게 생각할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아마 진중권은 더 궁금할 듯 싶다.
문화부와의 싸움은 차라리 법리적으로 흑백을 가리기 쉬운 싸움일지 모른다. 하지만 부당해고당한 시간강사와 교수들과 대학 간의 싸움은 역사적으로도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이다. 오죽하면 수학을 전공한 분이 판사에게 석궁을 들이밀었겠는가. 진중권은 이번싸움을 이겨도 또 한판 큰 싸움을 치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밥그릇과 대학의 의미를 건 그 싸움이 진중권에게는 더욱 의미있고 중요한 싸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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