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국세청 직원을 파면한 것을 두고, 민주당 등 정치권을 비롯해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까지 반발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광주지방국세청은 지난 12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지난달 28일 내부통신망에 한 전 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나주세무서 김동일(47·계장)씨에게 결국 파면 결정을 내렸다.
국세청 고위관계자는 15일 "김 계장에 대해선 확정되지 않은 사실 등을 유포하는 등 국세공무원으로서 품위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파면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안다"면서 "곧 본인에게 이같은 사실을 서면으로 통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늘(15일) 오후에 국세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징계위 결정 내용을 서면으로 통보 받았다"면서 "이미 알려진 대로 품위손상 등의 이유로 파면 결정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같은 징계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인사소청심사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번 결정의 부당함을 위해 적극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정부 공무원노조 "권력의 치졸한 복수극"
김씨에 대한 국세청의 최종 파면 결정이 알려지자, 참여연대를 비롯해 행정부 공무원노동조합 등은 성명을 내면서 "정부의 파렴치한 징계를 즉각 중단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행정부 공무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에서, "용기있는 공직자가 단지 정당한 비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공무원 신분 박탈당한 것은 물론, 퇴직금과 연금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면서 "이같은 결정은 일말의 정당성도 찾을 수 없는 권력의 치졸한 복수극"이라고 지적했다.
공무원노조는 이어 "이는 권력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공직자의 양심과 비판마저 재갈을 물리려는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폭력일 뿐"이라며 국세청의 결정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 단체는 또 "김 계장에 대한 징계는 공직자를 전체 국민과 국가의 봉사자가 아니라 권력의 노예, 정권의 사병으로 만들려는 거대한 음모의 일부"라며 "부당한 폭력과 비열한 협박으로 공직자의 양심을 마비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국세청이 표적 세무조사에 대해 반성은커녕, 내부 문제를 비판한 직원에게 보복 파면을 한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처사"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어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린 행위는 파면과 같은 중징계 사유가 될 수 없다"면서 "그럼에도 무리하게 국세청이 김씨를 파면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국세청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이용섭 전 국세청장 "의혹을 해소해야할 국세청이 오히려 의혹 키워"이와 함께, 민주당 등 정치권의 반발도 계속됐다. 민주당은 이미 징계위가 열리기 전인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국세청의 징계가 부당하다고 밝혔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15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세청과 검찰 등의 권력기관이 해도해도 너무한다"면서 "국세청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고 직원을 파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검찰이) 국세청장에 대해선 서면조사하고, (국세청은) 내부 게시판에 건강한 주장을 편 직원을 파면한 행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정부 시절 초대 국세청장을 지냈던 이용섭 민주당 의원도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김 계장이 올린 글 중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국세청은) 국민들에게 사실을 당당하게 알리고 의혹을 해소해야지 파면이라는 강경한 방법을 택함으로 인해서 오히려 의혹만 키웠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국세청장이 지금 공석인데, 국세청장이 있었다면 이런 속좁은 결정을 안 했을 것"이라며 "(김 계장의 글이) 다소 내용이 거칠고, 비판적이었다면 주의나 경고로 경각심을 주면 되지, 가장 엄정한 파면 결정을 한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품위손상이라면, 예를 들어 유부녀와 정을 통해 간통죄를 저질렀다든지, 어디서 술을 먹고 사고를 쳤다든지 하는 이런 것들"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 것을 품위 손상이라면 모든 국민 또는 모든 공직자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픈 구석이 있다고, 치부가 있다고 그것을 말하는 자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해 가혹하게 파면까지 한다는 것은 권한남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전남 나주세무서에서 근무하던 김동일씨는 지난달 28일 국세청 내부통신망에 "나는 지난 여름에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박연차 게이트의 단초가 된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비판했었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 글에 대해 국가공무원 품위손상 등의 이유를 들어 지난 8일 직위해제 했고, 12일 오전 광주지방국세청에서 징계위원회를 열어 최종적으로 파면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