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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민주당선언'이 발표되었다. 지난 5월 19일 뉴민주당비전위원장 김효석 의원은 '뉴민주당선언'(이하 선언) 초안을 발표하면서, 작년 10월부터 준비해서 꽤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했다. 또한 스스로 '고뇌와 모색의 시간'이라고 하면서 2년 전, 대통합과정에서 한 '처절한 반성과 치열한 혁신으로 다시 일어서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다. 아무튼 '선언'은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려고 하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며, 집권을 위한 정당으로 출발점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선언'에서 제시하고 있는 '민주당 운영의 현대화'를 보면, 민주당이 새로운 희망의 대안으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멀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당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당을 현대화한다고 하면서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 민주당이 처해있는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이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아야 하고, 지금 현재 서 있는 그대로를 다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국 노동당의 현대화 과정은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노동당은 1979년 총선 참패 이후, 무려 18년 동안 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다. 거듭되는 4차례의 총선 패배과정에서 당의 이념과 정책, 조직노선의 개혁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94년, 41세의 토니 블레어가 새로운 총재가 되면서 본격적인 당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블레어는 노동당의 '현대화'를 주장하고, 낡은 정당에서 기회의 당, 희망의 당으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미국의 클린턴의 신민주당(New Democrat)이라는 구호를 차용해 와서, 노동당을 신노동당(New Labour)이라고 대중에게 호소했다. 신노동당으로 당명까지는 변경하지는 못했지만, 당의 로고에서 두드러졌던 붉은 색을 약화시키고 대신 하얀 바탕에 '아름다운 붉은 장미'를 당로고에 등장시켰다. 로고만 바꾼 것이 아니라, 당의 비전과 정책을 국민의 뜻에 맞추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당헌 제4조를 바꾸었다. 35년 동안 어떤 총재도 감히 나서지 못했던 일, 노동당 당헌을 개정한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개혁과 변화를 추구한다면, 적어도 영국 노동당의 모범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집권정당이 되고자 한다면 이 정도의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 민주당은 어디에 서있는가?

 

민주당을 구성하는 핵심 지지 세력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당의 주요한 기반세력이 일부의 '전통적 지지세력'으로 복귀되고 있다. 한마디로 당이 '호남화'하고 있다. 김대중 총재시절에는 외부 인사들을 집단적으로 또는 개인 자격으로 민주당에 합류시켜왔다. 재야라든가, 노동운동가, 여성, 청년 등을 끊임없이 충원해왔고, 2000년 총선을 앞두고는 유명한 386 '젊은 피'를 수혈하기까지 했다. 그에 앞서 97년 대선에서는 승리하기 위해 유신본당인 '자민련'과 공동정부를 구성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민주대연합노선'에 따라 플러스 알파(+α) 역할을 해 왔던 세력들이 민주당과 화학적 결합에 실패하고 이제는 당 밖으로 분리되는 단계까지 왔다. 세칭 친노의 일부와 영남 민주화세력, 그리고 영입되었던 시민사회세력까지 당을 떠난 상태다. "민주당은 호남지역당"이라는 지적이 빈말이 아니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로운 정당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전국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은 단순히 지역차별을 해소하려는 목적보다도 더 큰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 되려고 하는 기본 전제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를 1차로 넘어서야 진정한 국민의 정당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민주당의 당원들은 향우회 조직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민들이 정당을 바라보는 것과는 견해차가 있다. 이들은 최고의 선거운동원으로 선거운동 시기에 열정과 성실성은 따라올 사람이 없다. 어려운 시기에 상경하여 지역사회에서 자영업을 하면서 서로 도와주는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기에 당원이라는 생각보다 더 큰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의식 속에는 김대중 총재시절부터 형성된 민주화의식과 운명공동체 의식이 함께 한다. 하지만, 87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이들도 구세대의 범주로 포함되기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당원과 지지자 구성에서 이질적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의 당내투쟁은 자해행위에 가까웠다. 개혁당 출신들이 근본적이고 융통성이 없고, 지역사회에 인적 네트워크가 적더라도 정당원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젊은 미래 세대였다. 그러나 젊은 미래세대가 당에서 추방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민주당의 지역위원회가 활기차게 작동을 하지 않는다. 대의원 선출을 지역위원장이 임명하고, 일반적 당원은 참여의 기회나 내용을 가질 수가 없다. 원래 개혁은 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민주당은 밑으로부터 당원의 개혁적 요구가 올라올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당 현대화 선언은 당 관료들의 책상머리 작품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인정하기도 싫고 가슴도 아프겠지만, '지역정당의 한계'를 혁신의 과제로 분명하게 인식할 때, 민주당의 혁신은 시작된다.

 

한국의 민주당이 지역정당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영국 노동당은 또 다른 측면에서 편향된 정당이었다. 노동당은 사실 노동조합의 정당이었다. 영국 노동당은 유럽의 진보정당 중에서는 독특한 정당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노동당의 탄생과정에서 페이비언협회와 노동조합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면서 노동조합의 당이 되었다. 노동조합회의(TUC)는 당 재정의 2/3를 감당하고 있었고, 국회의원의 1/3 정도의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의 주요한 투표에 노조는 블록투표(Block vote)라는 형식으로 권한을 행사했다. 투표권의 90%를 노조가 행사하고 있었고, 특히 3대 산별노조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노동조합원의 자격을 가져야 당의 국회의원 후보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니 블레어조차도 처음에 운수노조 조합원으로 등록한 후에 입후보했다.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연계는 당의 최대의 강점이지만, 동시에 약점이기도 했다. 당은 노조에 끌려 다녔다. 노조가 당에 자금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노조의 힘을 제어하려는 법안이 유권자 사이에서는 매우 인기가 있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랬지만, 노조의 블록투표를 폐지하고 1인 1표제로 바꾸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노동당을 개혁하려는 닐 키녹과 존 스미스 총재의 오랜 기간을 거처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블록투표 폐지를 잠시 유보하는 기간에 있었던 당총재 선거에서 존 스미스는 노동조합의 블록투표의 위력에 혼쭐이 나서 간신히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는 그 험난한 과정에서도 당 현대화 작업의 임무를 완수해 나갔다. 당의 개혁추진, 당의 변화라는 지상명령을 실행하려면 결정적 시기에는 신중함보다는 신속함을 무기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실천했다. 1인1표제를 1년간 유예했다가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에게 재결집할 시간을 허용했던 존 스미스의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당헌 제4조의 개정과정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의 블록투표에 종지부를 찍었다. 비로소 1인 1표제(one man one vote)가 정착되었다. 노동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직시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개혁의 끈을 움켜지고 계속 전진함으로써 집권정당의 길을 열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당의 현대화를 위하여 "당원과 지지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참여, 네트워크정당'을 지향하며, 주요 공직후보선출과정만이 아니라 당의 주요 의사결정과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 참여 기회를 확대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 문구를 그대로 해석한다면, 민주당은 '지지자 중심 정당'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 정당사에서 정당모델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한 당이 있었다.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당원 중심의 정당이냐? 지지자 중심의 정당이냐? 하는 논쟁 때문에 당이 망가졌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격렬한 당내 투쟁이 있었다. 애초에 설계한 당원제도는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끊임없이 수정되었고, 창당 5년 동안 9차례의 당헌개정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개혁과 실용논쟁은 권력투쟁의 또 다른 형식이었다. 양대 세력은 타협을 몰랐고, 그야말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앞으로 돌진했다.

 

2002년까지 한국의 정당 대부분이 당원이 없는 정당이었다. 명부상에 존재하는 당원이 아니라,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이 없었다. 그때는 정당모델을 떠나서 정당의 기초를 이루는 자발적 당원이 절실했다. 모든 정치학자와 시민단체가 '진성당원'이 있어야 정치개혁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2002년 개혁당의 창당, 그리고 2003년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의 시대가 비로소 열렸다. 바로 '기간(基幹)당원제도'였다. 하지만, 기간당원제가 당내 권력투쟁의 표적이 되었고, 기간당원의 존재가 공직후보자의 선출과정에서 유리한지 불리한지 계산하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제도적 장점을 살리지도 못하고 열린우리당 해체와 동반하여 폐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나라당에는 약간의 변형된 형태로 '책임당원제'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결과적으로는 어떤 당원제도가 적합했는지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논쟁의 과정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당원제도라는 것은 현실 정치세계에는 없다. 다만 지금의 정치상황에서 더욱 발전시켜야할 민주적 원칙과 절차에 구성원의 공유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앞으로 당원과 국민에게 개방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철저히 국민 참여를 배제한 공천을 실시했다. 대다수의 국회의원 후보를 밀실의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결정했다. 국민참여경선이 이루어 진 곳이 거의 없다. 공천만 보면, 2000년 이전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당원이나 지지자에게 권리를 돌려줄 가능성이 별로 안 보인다. 그런데 선언은 정반대로 가겠다고 한다.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총선에서 각 당은 어떻게 하면 승리할 것인가 하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다. 총선이 있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예비경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등록을 며칠 앞두고 공천하는 현상 앞에서 국민참여경선은 불가능하다. 현실은 철저히 상대후보에 승리할 수 있는 대항마를 고려하여 공천하는 정치공학으로 총선에 임하면서 대국민 선언에서는 아주 원칙적으로 정책결정과정까지 개방하고 참여하게 하겠다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 지 자문자답을 할 필요가 있다.

 

영국 노동당도 치열한 당내투쟁이 있었다. 바로 당헌 제4조 '국유화 조항' 또는 '공공 소유제' 조항이었다. "육체 또는 정신노동자를 위해 생산, 분배와 교환수단의 공공 소유제의 기초위에서 가능한 한 노동의 전 과실과 가장 공정한 분배를 담보한다."는 당헌은 1918년 시드니 웹이 기초하고 1926년 개정된 것이다. 그동안 신성시되던 거의 모든 낡은 조항이 폐기된 1994년 개정 후에도 제4조는 모든 노동당 당원증 뒷면에 의연히 남아 있었다. 제4조는 원래 1917년 소련혁명 이래 볼셰비즘과 레닌 독재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상쇄하기 위한 영국 우익 개량주의의 산물이었으나, 이제 좌파에게는 영속적인 사회주의적 가치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었다.

 

토니 블레어는 "모든 공약은 실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와 국민 사이에 맺어진 새로운 계약의 첫째 장 첫째 줄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최소한 한번 이상 평당원들에게 연설하는 전국순회 강연을 시작했다. 한주에 2건씩 12주간에 걸친 전국일주를 마무리함으로써 3만 명의 평당원과 직접 접촉하였다. 당헌 개정 명령장을 획득하려면 운동원들 너머 평당원들에게 직접 호소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영국 전역 441개의 지구당에서 대의원을 보냈는데, 단 3군데만이 조항 유지에 투표했고 나머지는 모두 개정 조항을 지지했다. 당시 노동당 표결 방식은 1인1표제가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조가 전체 투표권의 70%를 그리고 지구당이 30%를 행사했다. 지구당 부문에서는 85%의 지지를 받았고, 노조 부문에서는 54.61%의 지지였는데 전체 65.4% 찬성에 34.77% 반대로 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서야 겨우 개정할 수 있었다. 블레어는 특정의 이념을 고수하고 유지하려고 하기보다는 국민의 바람과 요구에 신속하게 응답하려는 정치를 보여주었다.

 

과거 한국의 정당 내에서 소수파는 늘 복종을 강요당했다. 다수파는 수적 우위로 당헌 개정을 강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당 현대화의 선언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하나의 정당운영의 원칙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고, 작은 실천들 속에서 신뢰가 쌓여야 한다. 영국노동당은 당원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10여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1인 1표를 도입하고, 당헌 4조를 개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것은 관용과 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공화적 운영이 기본 정신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3. 어떤 당을 만들 것인가?

 

선언에서 민주당은 '대안정당'으로 정책생산능력을 배양하고, 새로운 리더를 발굴하고 당의 조직을 재설계하고 당원육성을 위해 당의 교육기능을 강화하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밀착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또한 민주당이 자랑하는 2000년, 세계 최초 전자투표 도입, 2002년 한국 정당사상 최초 국민참여경선, 2007년 세계 최초 모바일투표 도입으로 정당 현대화를 선도해온 정당이라고 했다. 선언에서 말하는 대로 위대한 전통을 계승한 민주당의 현대화 과업이 성공하여 국민의 신뢰를 받는 유능한 정당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는 당이 되려면, 야권통합의 단일정당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실제로 단일정당의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집권당에 맞서려면 야권은 대통합을 해야 한다는 통설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이러한 야권통합의 단일정당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2003년 11월 11일에 창당된 '열린우리당'을 뛰어넘기 어렵다.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을 선도하는 전국정당, 민주정당, 전자정당을 표방하고 만든 당으로 한나라당 탈당파 5인(독수리 5형제라고 불렸다), 개혁당, 시민사회와 자치분권활동가 그리고 민주당 탈당파가 만든 선거연합정당이었다. 구성원의 형식은 선거연합정당이었지만, 정치개혁을 선도하는 개혁정당이었다. 창당 6개월 만에 헌정사상 최초로 민주개혁세력이 원내 과반수를 넘는 역사적 경험을 하였다. 그런데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해산되었다.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과거의 역사에서 실패의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민주당 운영의 현대화는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기 위해 철저한 평가가 기초되어야 한다. 따라서 당분간 야권통합 단일정당은 요원해 보인다. 지난 경기도 교육감선거에서 보여주었듯이 '연합정치'의 가능성이 넓어지고 있다. 민주당 역시 80여 석의 국회의석을 가지고는 과거처럼 민주대연합을 앞세운 패권정당이 될 수 없다. 민주노동당도, 창조한국당도, 진보신당도 당파적 이익만을 앞세우는 정치를 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내년 지방선거는 야권모두에게 '연합정치'의 시험장이 될 것이다.

 

선언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후반기에 나타났던 진보개혁세력의 분화현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정부의 평가에서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가치, 이념, 정책의 대충돌을 고민한 흔적이 없다. 특히 곧바로 이어진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의 후신으로서 냉정한 자기반성이 결여되어 있다. 민주당의 현대화는 여기에서 어떻게 달라지는 지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가치 중심보다 대통합에 목숨을 걸었고, 진영과 진영의 대결에서 참패했던 과거를 제대로 평가 반성하지 않으면 새로운 갈 길을 알 수 없다. 그래서는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 또한 당의 개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의 문제가 중요하다. 영국의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를 만나서 당의 개혁과 집권을 이룰 수 있었다. 새로운 리더를 키우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새롭고 젊은 지도자가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여주어야 한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모범을 창출해야 한다. 구체적 실천계획(액션 플랜)을 차후에 제시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지만, 뉴민주당 선언에서 당의 현대화를 보여주려면 구체적 실천계획이 포함된 선언이 나와야 설득 가능할 것이다.

 

4. 혁신의 출발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블레어는 구세대의 관심사로부터는 자유로운 정치, 정치논쟁거리였던 이념의 짐을 벗어버린 전후 그리고 냉전 직후 세대였다. 그는 철의 장막 너머에서 사회주의가 실패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성장한 신세대다. 또한 새로운 논쟁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정치에 입문한 신세대 정치인으로 과거 당 지도자들의 전통과 뿌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실이 그의 젊음이나 현대성보다 더욱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언에서도 자랑한 민주당의 전통, 전통주의와 단절할 필요가 있다. 전두환, 노태우에 대항해 민주주의의 최전방에서 용감하게 맞서 싸운 이야기를 가슴에 훈장처럼 달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시절을 잊어야 한다. 2007년 대참패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있는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역사의 고비마다, 새로운 당의 창당이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국민의 관심과 잠재적인 지지는 결코 적지 않았다. 왜 새로운 당의 출발이 인기가 있는 지, 새로운 지도자나 대권후보에 국민의 눈길이 가는 지를 민주당은 철저히 반성해 보아야 한다.

 

블레어는 클린턴의 신민주당 구상으로부터 '빈민의 정당, 과거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의 이미지를 포기함으로써 성공한다는 교훈을 배워왔다. 당시 영국의 노동당 좌파들은 이러한 블레어의 당 현대화 노선을 '노동당의 클린턴화'라고 비아냥댔지만, 집권을 위한 희망의 정당으로 변모시켰다. 토니 블레어의 당총재 출마 선언문을 통해 '국가 개조'를 줄기차게 주장하면서, 노동당이 역사를 1979년 이전으로 되돌릴 수도 없으며, 되돌리려 해서도 안 된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노동당이 기회의 당, 희망의 당이 돼야 하며, 국민의 여망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닐 키녹과 존 스미스가 시작한 여행을 마무리하고, 항의의 정치에서 통치의 정치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그리고 때때로 영국에 암흑기였던 오랜 야당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영국 국민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영국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비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며, 의도적으로 보지 않는 희망의 비전입니다."


태그:#민주당, #노무현, #정치개혁, #뉴민주당선언, #지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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