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한 동반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
한국, 호주, 일본, 북한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한국은 17일 저녁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8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후반 36분 박지성의 감각적인 동점골로 1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은 이미 조 1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한 상황에서 이란과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이란전에서의 승패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한국 대표팀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 진출 자격이 주어지는 조 2위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에게는 최종예선 B조 마지막 2경기 한국-이란, 북한-사우디아라비아 간 경기 결과가 본선 진출의 운명을 가르는 문제였다.
결국 이란전 1대 1 무승부로 한국은 최종예선 무패(4승 4무 승점 16)를 기록했고, 2승 5무 1패 승점 11을 기록한 이란은 한국과의 결전이 끝나고 5시간 후에 열리는 북한-사우디아라비아 간 B조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결과를 초조한 심정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조 2, 3, 4위의 엇갈리는 운명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나란히 3승 2무 2패로 승점 11점을 기록하고 있던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경기에서 어느 쪽이든 승리할 경우 이란은 조 3위로 월드컵 본선 진출의 희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양 팀이 비기지만 않으면 이란은 본선 진출의 꿈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북한은 한국이 이란과 비겨줌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와 최소한 비기기만 해도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게 됐다. 최종전을 앞두고 승점이 같았으나 북한이 골득실에서 +2로 사우디아라비아(골득실 0)를 앞서고 있었다.
골득실 경쟁에서 북한과 이란에 뒤진 사우디아라비아는 북한전에서 이겨야만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비길 경우에는 이란을 밀어내고 조 3위가 돼 아시아 각 조 3위팀과 오세아니아 1위 팀에게 배정된 마지막 1장이 걸린 플레이오프에 도전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북한에게 질 경우에는 그 험난한 마지막 1장의 기회조차 이란에 양보해야만 한다.
북한 웃고, 이란 울다
한국-이란전 결과로 인해 세 팀 중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라있던 북한은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최종전에서 90분 내내 철벽수비로 사우디아라비아와 0대 0 무승부를 기록하며 44년만의 본선 진출 꿈을 이뤘다.
북한은 최종성적 3승 3무 2패 승점 12점으로 골득실에서 뒤진 사우디아라비아를 조3위로 밀어내고, 이란의 본선 진출 마지막 꿈을 좌절시켰다.
17일 밤, 18일 새벽 사이에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축구의 운명이 갈렸다.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두 개조 1,2위에게 각각 본선진출권을 부여하고 각 조 3위와 오세아니아 1위 팀간 최종예선에 또 한 장의 본선티켓을 부여하는 방식 때문에 조 2위와 3위, 4위의 운명이 제각각이다. 국제축구연맹이 정한 룰의 타당성 문제를 떠나서 월드컵축구 아시아 지역 예선이 이런 방식 때문에 재밌게 진행된다.
중동축구의 발목 잡은 호주와 북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경과하면서 그 동안 한국, 일본에 필적할 만한 실력으로 아시아축구에서 강호로 군림해 온 중동 축구에 빨간 불이 켜졌다.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중동축구의 강호들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힘겨운 길을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한 국가는 한국, 호주, 일본, 북한이다. 각 조 3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은 본선 진출을 위해서 우선 양 팀 간 대결에서 이겨야 하고, 그 다음에 오세아니아 챔피언 뉴질랜드와의 마지막 플레이오프에서도 이겨야 한다.
석유의 힘과 함께 성장한 중동축구가 오늘과 같이 비참한 상황에 이르는 것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호주와 북한이다.
아시아 대륙의 국가도 아니면서 이번부터 아시아지역 예선에 참여하게 된 오세아니아 대륙 축구 강호 호주 때문에 중동축구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에게까지 아시아지역 예선이 보다 험난해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한국, 일본에 조금씩 밀리고 있는 중동의 입장에서는 호주의 아시아지역 예선 참가가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급성장은 의외의 일격이다. 한국도 북한도 아닌 조선 국적의 스트라이커 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와 미드필더 안영학(수원 삼성블루윙즈)의 북한 대표팀 가세가 공격력을 한 차원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홍영조, 문인국 등 북한 대표 축구 공격수들의 기량도 기대치보다 높다는 것을 이번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은 이명국 골키퍼의 계속된 선방과 함께 안정된 수비 능력까지 보여줬다.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올린 북한이 지금의 기세를 계속 이어간다면 아시아축구 지도는 중동-한일 양대 산맥 지형이 아닌 태평양 연안 단일 산맥 지형으로 다시 그려져야 할 판이다.
월드컵 본선 남북한 동반 진출과 이명박
한국의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과 함께 남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란히 오른 것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18일 아침을 들뜬 기분으로 맞이했다. 지금 이런 분위기가 제일 어색할 것 같은 한국 사람은 북핵 위협에 대응해 한반도 핵우산 보장을 포함한 '확장된 억지력' 내용을 담은 '한미동맹 공동비전'을 채택하고 오늘 귀국하는 이명박 대통령일 것이다.
축구는 스포츠일 뿐이고 외교는 정치 영역일 뿐이지만 월드컵 본선 남북한 동반 진출의 환희에 한반도 평화공존의 꿈이 오버랩 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이명박 정부가 일본 우익과 손잡고 대북 외교를 대화가 아닌 갈등으로 풀어가고,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라는 동북아 전체를 위협하는 초강경 모드로 이에 대응할 때는 공공연하게 남북한이 곧 전쟁이라도 불사할 것 같은 적대적 관계로 여겨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 보장을 대단한 성과물처럼 가슴에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미처 귀국하기도 전에 정치가 아닌 축구가 한국 국민들의 마음에서 한반도의 진실,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정한 염원을 일깨웠다. 한국 사람들이 남북한의 월드컵 동반 진출에 기뻐하는 이유는 마음 깊이 원하는 것이 전쟁이 아닌 평화, 공존, 남북한의 공동번영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