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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에서 보듯이 叚(가)는 언덕(厂)에서 옥석(二)을 양손(爫 + 屮)으로 캐는 모양이다. 우리의 역사는 자연에서 광석이나 화석연료를 캐내어 이를 활용한 역사이기도 하다. 석기→ 청동기→ 철기→ 자본주의(화석연료)→ 원자력(방사능 물질)의 흐름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겠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흙과 그 안에 들어있는 물질을 이용해 살아왔다. 대지는 우리를 낳았을 뿐 아니라 우리를 길러주고 마지막엔 우리를 덮어줄 어머니인 셈이다.

 빌릴 가의 금문(청동기에 새겨진 문자)과 소전(통일 중국 진나라가 통일하면서 사용한 문자. 그래서 소전은 하나)
빌릴 가의 금문(청동기에 새겨진 문자)과 소전(통일 중국 진나라가 통일하면서 사용한 문자. 그래서 소전은 하나) ⓒ 새사연

살가도의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1986년에 찍은 사진인데, 현대에도 이런 참담한 노예노동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한편 살가도의 작가 정신인 노동자와 약자에 대한 휴머니즘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탐욕스러운 자본이 어머니 대지를 약탈하고 그 대지의 자식들인 인간을 약탈하는 모습이 담긴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빌리다, 거짓'의 뜻을 가진 叚·假(거짓 가, 빌릴 가)·暇(틈 가) 계열의 영상이 떠올랐다.

 브라질의 쎄라 뻬라다 금광에서 노동자들이 금을 채굴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
브라질의 쎄라 뻬라다 금광에서 노동자들이 금을 채굴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 ⓒ 새사연

인디언 수콰미쉬족 추장이었던 시애틀(미국의 도시 이름 시애틀은 그의 이름을 본따 지었지만, 그가 죽은 후 얼마 안 지나 시애틀에는 인디언이 살 수 없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의 연설을 조금 인용하겠다. 백인들이 땅을 자신들에게 넘기고 보호구역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하자 그에 맞대응하여 한 연설의 일부분이다(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서)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들들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거미줄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사람이 땅을 파헤치는 것은 곧 그들 자신의 삶도 파헤치는 것이다. 대지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에게 속해 있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 판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인간은 자연의 하찮고 우연한 일부이다. 돌이나 물, 나무와 새와 마찬가지로 대지의 자식들이다. 진화의 긴 여정에서 사소한 해프닝만 있었어도 인간은 이 지구 위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라는 진화의 진보적 도식은 허구라고 한다. 진화의 테이프를 다시 돌렸을 때 인간이 똑같이 출현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스티븐 제이 굴드의 <Wonderful Life>에서). 따라서 성서가 이야기하듯이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는 잘못된 표현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필요한 물건을 <잠시> <빌릴> 뿐이다. 자연을 해치지 말고,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잠시 빌려 쓰고 제 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마치 자신이 이 대지의 주인인양 마음대로 자연을 약탈하고 변화시키고 파괴한다. <잠시> <빌려> 쓰기로 한 자연과 약속을 어기고 <거짓>을 행하고 있다.

그래서 叚에 사람 亻을 덧붙인 假(가)는 '잠시', '빌리다', '거짓'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假飾(가식), 假借(가차)

시간을 의미하는 日(일)을 덧붙인 暇(겨를 가)는 '잠시'라는 의미를 강조하여 쓴 것이다. 休暇(휴가)

구슬을 뜻하는 玉(옥)을 덧붙인 瑕(티 하)는 옥을 갈고 닦기 전의 티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막 채굴한 옥을 이른다. 瑕疵(하자)

'가다'는 의미를 갖는 辶(착)을 덧붙인 遐(멀 하)는, 잠시 동안의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멀리 저 세상으로 간다는 의미로 보인다. 昇遐(승하)

다시 이 정권이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대운하 건설을 추진하려고 한다. 물고기를 비롯 온갖 수중 생물이 사는 강바닥을 파헤치고 보를 만들고 물길을 바꾸려 한다. 짐 좀 나르겠다고 한반도의 생태계를 파괴하려 한다. 제발 모두가 어우러져 사는 이 산하를 해치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입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4대강정비사업#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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