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전도사'로 불리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18일 "북한은 앞으로도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몇 번씩 더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 전 장관은 이날 저녁 동국대 문화관에서 연 한겨레평화강좌 '한반도는 어디로? 회담주역들에게 길을 묻는다' 강연에서 "북한의 의도는 핵과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킨 뒤 협상가격을 올려 대미협상에서 임하려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처럼 과학기술 능력이 높았어도 한두 번 실험으로 핵무기를 완성하지 못했다"면서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을 보고 '아직 멀었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예고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에 대해서도 "사거리뿐 아니라 대기권 재진입 때 고열을 이겨내고 원하는 지점에 보내는 기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미국의 전문가들은 이것도 다 알면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대미협상 가격 올리겠다는 것"
그는 이 같은 예상의 근거로, '북한의 대미협상 정책의 변화'를 들었다.
지금까지 북한은 6자회담 프로세스 즉 '비핵화를 통한 대미 관계정상화'를 추구해왔지만, 비핵화협상에서 진전이 없었다는 판단 아래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로 정책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임 전 장관은 "북한은 (1994년) 제네바협정을 지켜왔는데 부시 행정부가 한 번에 파기했고, (2005년) 9.19공동성명도 지켜왔는데 에너지 지원은 70% 수준만 진행됐다는 점에서 미국에 속았다고 본다"면서 "이것은 내가 아니라 북한과 접촉이 많은 미국 전문가의 이야기"라고 전했다.
임 전 장관은 이어 "북한은 지금까지는 6자회담이라는 틀 안에서 점진적 접근을 시도해왔지만, 이제는 '2012년 강성대국'이라는 목표를 위해 일괄타결이라는 신속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북한의 의도를 "미국과 관계정상화가 되면 핵무기를 포기하고, 아니면 핵보유로 간다는 생각"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이런 시각에서 미국도 한국도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임 전 장관은 최근 대북강경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그는 후보 때부터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북한의 지도자와 직접 만나 해결할 용의가 있다', 특히 '북한에 빌미를 제공해서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피동적으로 끌려다니는 과오를 범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요즘은 끌려다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과 긴밀하게 협의해서 북한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인데, 대북정책 검토도 끝나지 않은 집권 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일본 아소 다소 총리가 똑같은 소리를 하고, 북한은 장거리로켓과 핵실험을 하니까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따라 간 것 같다"면서 "하지만 냉각기를 거치면 국면전환의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는 낙관을 나타냈다.
"MB는 한번 읽어보기나 하고 남북기본합의서 말하나"
임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지난해 3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남북관계에 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보면 그가 기본합의서나 한번 읽고 그런 말을 했는지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그는 "남북기본합의서의 핵심은 남북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상호인정하자는 것인데, 현 정부 들어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6.15선언은 한미공조만 잘되면 남북관계는 저절로 된다는 외세 의존적 자세가 아니라 남북이 힘을 합치면 미국도 협조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민족자결 정신이 어디로 갔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임 전 장관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2년 6.15선언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비판에 무게가 실린다.
그는 또 현 정권을 김영삼 정권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주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임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관계 타결을 위해 우선 6.15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지난해 7월에 중단된 금강산관광사업 재개와 개성공단 노동자 합숙소건설, 인도적 대북지원 재개를 제안했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해서도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한편,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한겨레 평화강좌'는 이날 임 전 장관의 강연을 시작으로 25일 박철언 전 의원(북방정책과 특사회담의 교훈), 7월 2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남북장관급 회담과 남북관계 해법), 7월 9일 이종석 전 장관(북핵협상과 남북관계), 16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10.4선언의 의미와 전망) 순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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