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아래 삽 한 자루 되는 작은 텃밭에는 고추와 토마토, 오이와 호박과 가지, 그리고 상추와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고추와 토마토는 내 키만큼 클 정도로 잘 자랐다. 오이와 호박과 가지와 옥수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참외는 전반적으로 깜깜 무소식이다.
그네들 모두는 한 달하고도 달포 가량 앞서서 심고 뿌린 것들이다. 사실 그 텃밭조차도 케케묵은 데다 똥과 오줌으로 냄새나는 땅이었다. 종종 아래층에 사는 개들이 그곳을 화장실로 여긴 탓에 맘껏 싸고 내질렀던 것이다. 그 땅을 개량할 요량으로 삽 한 자루를 들고 갈고 엎어서 똥을 치우고 풀을 뽑았다. 그리곤 작은 돌들을 치워내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었다.
명색이 그럴듯한 텃밭을 만든 셈이었다. 차차 이랑을 따라 장터에서 사 온 고추와 토마토 모종들을 심었다. 세 그루 아니면 네 그루가 다였다. 가장자리 건너편 쪽으론 오이와 호박과 가지를 한 그루씩을 심었고, 맞은편 가장자리 쪽으로는 옥수수와 상추와 참외 씨를 차례로 심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것들을 돌보았다. 때로는 산에 올라가 떠온 약수도 부어 주었다. 장터 나가 퇴비를 사서 뿌려 주기도 했다. 잡초가 나올라치면 앞서 뽑아 주었다. 그저 작고 여린 것들을 돌보듯 내 손이 가지 않는 게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듯, 잘 자라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웬걸 녀석들은 한결같지 않았다. 15일쯤 되니까 고추와 토마토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잠잠하던 오이와 호박은 30일쯤 지나서야 순이 오르기 시작했다. 상추는 씨앗을 뿌린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새싹이 올라왔다. 옥수수는 그 다음에 새싹이 나왔는데 지금은 오이를 따라 잡을 정도로 쑥쑥 뻗어가고 있다.
내 속이 타는 것은 참외 씨앗이다. 녀석이 이제서야 새싹을 내놓는가 싶다. 그런데도 15개 정도 되는 씨앗을 뿌렸는데 단 두 개만 올라왔을 뿐이다. 어찌해야 좋을지 도통 고민이다. 이전에 뿌린 씨앗들을 한 번 뒤집어 엎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그것들을 무시한 채 새로 얻어다가 뿌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참외 씨는 다른 것보다 제일 늦게 나오는 법이죠. 기다려 보시죠."
"호박과 오이도 이젠 제법 줄기가 올라오고 있는데, 왜 그건 늦는 거죠?"
"다 때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외 씨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어떤 분이 해 준 이야기였다. 그 말 한 마디에 녀석 때문에 응어리졌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녀석의 잎이 터져 나올 때까지 그래서 나는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비단 그것은 참외 씨만 그런 것은 아닐 터다. 우리의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번 제대로 엎고 뿌린 씨앗은 각 씨앗의 특성마다 다르게 나오듯이, 인생이 터지는 때도 마찬가지이 싶다. 고추와 토마토처럼 빨리 올라오는 인생도 있을 것이고, 참외처럼 도무지 때가 보이지 않는 인생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내 억지로 헤집는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요, 뽑아 올려본다고 올라올 것도 아니지 않겠는가. 도무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선한 마음을 품고 최선을 다하면, 때가 되어 잎을 내고 열매를 내 놓을 것이다. 기다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