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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순서

① 희망청 사람들: 토양 구분하기

② 희망청 사람들: 희망청 소개글

③ 희망청 사람들: 희코에서 인턴으로, 몽상가 이야기

④ 희망청 사람들: 희망청 대표 모험 이야기

⑤ 희망청 사람들: 노리단 공연팀장 씨앗 이야기

 

모험에게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이냐는 질문에 '치즈케이크를 사주시는 어른들'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하면서도 뒤이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사주면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대고는 방긋 웃는다. 실은 치즈케이크를 전제로 요청한 인터뷰였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 탓에 일단은 먹음직스러운 치즈케이크 사진 두 장으로 면책하려 한다(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사진을 찾으려고 꽤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ㅎㅎ).  헤어질 때 '희망청에 또 놀러와요'라고 말하며 웃는 그녀에게 조만간 정말 맛좋은 치즈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정말 희망청에 '놀러' 가봐야 할 것 같다.

 

 모험을 위한 치즈케이크
모험을 위한 치즈케이크 ⓒ 김윤하

 

모험의 이름이 모험인 이유

 

 - 희망청의 대표로서 희망청에 대해 짧게 소개한다면. 

  "20대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놀기도 힘들잖아요. 돈도 많이 써야하고, 공간도 없고, 친구도 만들어야 하고. 허들(장애물)을 낮추면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 같아요."

 

 - 자신이 희망청에서 맡고 있는 몫은?

  "현재 희망청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일이 전부 다 희망청이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희망청에서 진행하고 있는 행사에 20대들을 초대하면서 그것들을 희망청의 일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 처음부터 대표로 시작했나? 희망청의 초창기 모습은?

 "명분상의 대표일 뿐 직책에 큰 의미는 없었어요. 희망청은 함께 일하는 재단이 청년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만들었어요. 만약 재단이 장애인을 돕고 싶다면 복지관에 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는데 청소년 문제에 있어서는 딱히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이 없었대요. 이런 이유에서 희망청이 탄생했고 이곳을 전문적으로 운영할 친구들을 모집 한거죠. 이 때 저를 포함해서 <88만원 세대>에 영향을 받은 친구들이 많이 모였어요. 그리고 2008년부터는 노리단이 희망청을 위탁 운영하고 있구요."

 

 - 하자센터와의 인연이 깊은 것 같은데.

 "처음 하자센터를 찾게 된 건 고등학교 때 학교 밖 세상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였어요. 그 때부터 학교 끝나면 곧장 하자센터로 가게 되었죠. 10대 문화기획단도 하자센터를 통해서 만들게 되었고, 거기서 친구들과 책도 많이 읽었어요. 무언가 한다고 하면 같이 해보자가 할 친구들이 많은 곳이예요. 좋은 풀(pool)이죠."

 

- 해외 여행도 많이 다닌 것 같은데, 희망청을 운영하는 과정에 특별히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희망청을 시작하게 된 것이 세계여행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20살 때는 배낭 매고 무턱대고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이후에는 '성공회대-피스보트 지구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108일 동안 배 안에서 세계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함께 세계 곳곳의 NGO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그 프로그램 안에 있는 지구대학 수업이라는 것을 이수하면 한 학기가 인정되는 코스에요. 그런데 이 때 만난 사람들로 인해서 제 문제의식이 바뀌었어요.

 

예를 들면 그들 질문이 그 나라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을 역으로 묻더라구요. 역사, 과거청산 등의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현재 어떠냐는 식으로요. 그 때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무지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지구 한 바퀴 돌고 한국에 와보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곳부터 출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아니면 내가 발 담글 수 없을 것 같은 청년 문제에 부딪혀보자 한 거죠. " 

 

- 희망청의 해외 교류 계획은 없나?

 "희망청의 해외 교류 계획은 별로 없어요. 지금 진행 중인 포럼을 통해서 현재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필드를 소개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희망청이라는 필드를 소개하고 희망청에 찾아온 사람들의 필드에 부딪혀보고 하는 것처럼요. 스스로의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진짜 교류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한 방문교류나 사례탐방은 인트로에 불과한 수준인 것 같아요. 아마도 희망청은 손님들과의 필드접촉 작업에 집중할 것 같아요. 단순하고 뻔하게 접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방향으로요." 

 

 - 우석훈 교수와의 인연은?

 "교수님께서 밥 사주셨어요(웃음). 어떻게 실업과 얽힌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88만원세대>라는 좋은 책이 타이밍 좋게 나온 것 같아요. 상징적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요. 교수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많은 조언해주셔요. 잠적을 잘하시는 분인데도 희망청이 여는 포럼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고요. 희망청뿐만 아니라 교수님께서 알고 계신 다른 20대 조직들과의 네트워킹도 해주고 그러세요."

 

 - 2008년부터 88만원을 받고 희망청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실험 결과는?

 "나름대로 잘 살았어요.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가지 삶의 방식이 있으니까요. 88만원을 받고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문제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 집에서 친구 셋이서 같이 살거나 하는 식으로 88만원에 맞는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1000원으로 밥상차리기처럼 약간 억지스럽기는 했지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지에 대한 요령이 생겼어요. 근데 힘들긴 힘든 것 같아요. 88만원 받고 하기 싫은 일 하라고 했다면 못했을 거예요."

 

- 또 다른 시니어 네트워킹이 있다면?

 "하자센터 어른들, 함께 일하는 재단, 노리단, <보노보 혁명>을 쓰신 유병선 선생님 등이 있어요. 유병선 선생님께서는 '할 수 있는 것만, 즐거운 것만 해. 돈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문제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아야 된다.'는 등의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희망청은 문제 투성이이자 20대 사회 데뷔의 입구

 

- 메이데이 때 왔던 아마미야 카린을 포함해서 일본과의 교류가 특히 활발한 것 같은데.

 "아마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닐까요(웃음). 가깝고 싸기도 하고요. 메이데이 이야기를 하자면, 카린이 일본에서 주도하는 인디메이데이와 희망청이 준비했던 메이데이는 성질이 다른 것 같아요. 우리의 경우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일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구요. 그 때 행사를 준비하면서 느낀 건 의외로 노동절 자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였어요. 사람들 각자가 일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보는 행사도 의미있었구요."

 

- 희망청에서 기획하는 각종 행사들이 다양하다. 자체 기획과 외부 의뢰가 있을텐데 그 비율은? 기획 기준이 있다면?

 "반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일은 어디에나 존재하는데 희망청이 제로부터 만들어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누가 시작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중요한 것 같지 않구요. 대부분의 일은 같이 하는 것이 많아요. 기준이라고 하면 이 일이 희망청 멤버들이 할 수 있는 일인가, 20대를 많이 만날 수 있나,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가 이지요."

 

- 희망청의 과거와 현재 비교

 "작년에는 사회적인 의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당사자 집단으로써 이런 일을 해야 된다, 저런 일을 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올해부터는 청년실업 해결에서 역할분담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희망청을 20대들이 자유롭게 왔다갔다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스스로 역할분담을 한거죠. 못하는 건 하지 말자 이런 심보로요(웃음). 멤버들이 늘면 늘수록 희망청의 모습도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오픈시켜놓으니까 허들도 낮아지구요."

 

- 희망청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나?

 "힘들었던 점은 수많은 자기계발서 매뉴얼 중에 3명에서 일하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상사없이 회의하기 등 희망청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에요. 직접 매뉴얼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점이 참 힘들었지요. 그래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이외에는 희망청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인지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 20대 온-오프라인 소통 네트워크, 희망 코디네이터의 아이디어는 누가냈는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나?

 "희코 아이디어는 제가 냈구요, 작년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희망청이 그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일들을 소개 하고, 키워낼 수 있게요. 단순히 기업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아니라 희코를 통해서 서로의 협력자를 많이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해요. 개인적으로는 20대에 속하면서도 청년의 실체가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직접 만나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희코 친구들을 보면 굉장히 반응도 좋고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 희코 네트워크 계획은?

 "오늘 이렇게 포럼에 초대하는 것이 네트워크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희망청에 우연히 왔다가도 파트너를 많이 만나고 갔으면 좋겠어요. 다양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파트너, 그리고 조언자를 많이 만났으면 해요. 1000명이 모여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다면 다 같이 모이고 각자 해결할 문제가 있다면 각자 해결하고. 협력을 강요하지 않는 그런 네트워크가 되었으면 해요."

 

- 희망청이 사회적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개인적으로 사회적 기업가는 못될 거 같아요. 하고 싶지도 않고요. 사회적 기업가가 되려는 친구들을 서포트 해줄 수는 있는데, 하고싶은 욕심은 없어요. 제가 대표로 있는 이상 희망청이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겠네요(웃음). 20대의 네트워킹 센터로써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희망청을 통해서 사회적 기업가들을 20대에게 소개시켜주는 그런 기능을 하면서요.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하면은 정부에서 돈을 지원해주기는 하는데 준비할 게 상당히 많아요. (전환 이후 생길) 시선도 부담스럽고요. 어느 순간 타협해야할 때가 오겠지만, 바람으로는 희망청 안에서 사회적 기업가가 나왔으면 한다는 거에요."

 

 - 희망청을 한 마디로?

 "문제투성이. 해결해야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곳."

 

- 미래의 희망청은 이런 모습이었으면 한다?

 "계속 이렇게 있었으면 해요. 지금과 같은 규모로. 커지면 해야 할 일도 많아지니까요. 20대들이 가진 사회의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자리도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희망청이 사회적 기업가이든, 일반 기업이든 어떤 일을 시작하려는 친구들에게 입구 정도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것을 책임지는 것은 20대 사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희망청#NPO#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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