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이 결국 법정으로 넘어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전현준)는 지난 18일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와 관련된 제작진 5명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측은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에 참여한 작가 김은희씨의 개인 이메일 내용도 함께 공개했다.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정병두 1차장은 작가 김은희씨의 이메일 공개에 대해 "내부 고민도 많이 했고 회의도 거친 결과, 이들을 기소하면서 범죄 성립의 주요 요소인 악의 또는 공평성 상실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고 판단했다"며 "이메일 내용 중 의도를 추정할 수 있는 부분만 발췌해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PD수첩 측의 광우병 보도에 작가의 정치적인 의도가 포함되었고, 이것이 해당 방송의 공평성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김씨측은 수사팀과 자신의 이메일 내용을 보도한 언론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어디서 봤다 했더니...
검찰이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했으니 무죄인지 유죄인지는 이제 법정에서 정해질 일이다.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싶으면서도 기사를 보는 필자의 눈은 어느새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검사의 얼굴에 맞춰져 있었다. 유난히 익숙한 얼굴이다.
"저 검사 어디서 봤는데…어디서 봤더라…."법조계에 인맥 한 점 없는 필자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나 되는 고위 공무원과 개인적인 안면이 있을 리 없다. 인터넷에 접속해 이름을
검색해봤다.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검사 정병두 ▲ 경남, 부산동고 · 서울법대 졸업 ▲ 사시 26회(사연 16기), 올해 48세다.
익숙했던 이유는 그가 최근 몇 년간 가장 빈번하게 언론에 노출된 검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정병두 검사가 처음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6년 '3.1절 골프'사건과 '황제테니스'사건을 맡으면서다. '3.1절 골프사건'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황제테니스 사건'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관련된 사건이었는데 두 사건 모두 정 검사가 수사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 다음으로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뉴스는 2007년 12월 30일. 정병두 검사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법무, 행정분과 전문위원으로 임명됐다. '황제테니스'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가 인수위원회 위원이 되니 관심을 받았던 모양이다. 2007년 12월 31일 서울신문의
'이재오, 대운하TF 상임고문에' 기사에서 정병두 검사(당시 대검 범죄기획관)는 '눈길을 끄는 인물'로 분류되어 있다.
정 검사와 PD수첩이 맺은 본격적인 인연은 2009년 1월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검사였던 그가 용산 참사 수사본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검찰이 참사 현장에서 사망한 농성자들의 시신을 유족의 동의 없이 부검한 것이 논란이 되었는데 정 검사가 이에 대해 무표정으로 "(부검) 동의서 필요 없습니다"라고 답하는 화면이 PD수첩을 통해 방송돼 화제가 됐다.
정병두 검사가 용산참사의 수사본부장을 맡자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이 점은 당시 언론 보도에도 드러난다. <프레시안>은 2009년 1월 21일
"'MB인맥' 검사가 '용산 참사' 수사본부장"이라는 기사에서 "정 검사는 작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고, 최근 단행된 검찰 인사에선 검사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며 "일각에서는 이 같은 '특수관계'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검찰 측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대검찰청 측은 이 보도가 나온 다음날인 22일 ""
MB인맥 검사", "(이명박 대통령과) 특수관계" 등으로 보도한 것은 유감"이라는 뜻을 <프레시안> 측에 보내왔다.
그러나 우려는 맞아 떨어졌다. 2월 9일 검찰이 발표한 용산참사 수사 결과의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참사 책임은 모두 농성 철거민들에게 있으며 경찰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대다수 국민이 바라보는 용산참사와는 정반대편에 있는 결과였다.
검찰 수사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같은 날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의 '경찰 무혐의' 결정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55.4%, '불공정 수사'라고 응답한 사람은 61.9%에 달했다.
그리고 그다음이 바로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방송에 대한 명예훼손 건이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 들어 터진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정병두 검사가 지휘한 셈이다. 그리고 이 사건 역시 적지 않은 잡음을 내며 지난 18일 제작진 5명의 불구속 기소로 법원에 넘겨졌다.
김 작가에게 씌운 논리, 검찰 스스로 돌아봐야이번 PD수첩 수사발표에서 검찰 측이 김은희씨의 이메일을 공개하며 내세운 논리는 확실히 이색적이다. 그리고 그 논리는 수사를 지휘한 정병두 검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만약 검찰의 발표대로 "이메일에 나타난 김은희씨의 개인적인 성향이 PD수첩 방송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면, 역시 같은 논리로 "그간 맡았던 사건의 기소 결과에 나타난 정병두 검사의 개인적인 성향이 PD수첩 기소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몇몇 발빠른 누리꾼들이 정병두 검사의 약력을 거론하며 "PD수첩 수사 역시 전형적인 정치수사", "그럼 그렇지" 등 수사 결과에 대해 불신을 표현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검찰에 PD수첩에 대한 수사의뢰서를 접수한 것이 2008년 6월. 수사 도중 처음 사건을 맡았던 임수빈 형사2부장검사가 사표를 제출하며 제작진에 대한 형사처벌에 반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때 수사의 정당성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소를 마쳤으니 어쨌든 공은 검찰에서 법원으로 넘어간 셈이다.
검찰 측은 발표에서 김은희씨의 이메일 내용을 재판의 '중요한 요소'로 판단했기 때문에 공개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한 검찰의 손을 들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