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쯤 전이다. 바다낚시를 가서 잡아온 우럭을 가지고 생선회를 뜨는데 칼이 너무나도 잘든다. 일식집에서 사용하는 칼은 저리가라다. 포를 뜬후 생선살을 써는데 너무도 수월하게도 반듯반듯하게 썰렸기 때문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집안에 있는 칼은 몽땅 그 칼날이 뭉그러져 칼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칼로 무우를 썰라치면 써는 게 아니라 무우를 짓이기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숫돌이 있기는 했지만 갈아도 간 것 같지가 않아서 포기 하다보니 칼마다 뭉그러진 날을 자랑했던것.
하지만 이날 만큼은 달랐다. 바로 얼마전 지하철 행상이 팔고 있던 작은 숫돌을 사용해 그 행상이 말하던 사용법대로 칼날을 작은 플라스틱 숫돌에 갈았더니 신기하리만큼 칼날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방에 있던 아내를 불러내 칼날이 날카로워진 것을 자랑했다. 아내도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다. 즉석에서 당근을 꺼내 썰어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떻게 한 거야?""흐흐. 내가 칼날 가는 비법을 터득했다는 것 아니냐!"
지하철로 이동중 자주 구매해 주는 '기아바이'의 물건들출퇴근할 때나 일을 보려 다닐때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다보니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하철의 불청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하철 행상 즉 '기아바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지하철 역마다 그리고 지하철 구내방송을 통해서 까지 공사측에서는 이들 행상들의 물건을 구입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필요하다 싶으면 구매를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 이런 구매족들에 나도 그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구매를 해주는 스타일이다. 지하철 행상들이 선전하는 물건들중 필요하다 싶은 물건이면 아낌 없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얼마전 구입한 플라스틱으로 감싼 작은 숫돌도 그렇게 해서 구입하게된 물건이다. 양쪽으로 플라스틱이 감싸고 있고 가운데 숫돌이 들어 있는데 한 손으로 숫돌을 쥔채, 또 한 손으로는 가운데 나있는 홈 사이를 왔다 갔다 반복동작만 하게 되면 칼을 갈 수 있다는 말에 주저않고 지갑을 열었었다.
한 개에 2,000원 이었던 것 같다. 담배갑 반만한 크기의 이 소형 숫돌은 구입했다지만 가방안쪽 한 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불과 며칠전 가방을 뒤적거리다 발견해 주방에 꺼내 놓았던 물건이다.
마침 생선회를 뜰 기회가 생겨 이 숫돌을 이용해 칼날이 뭉그러져 있던 식칼을 갈아보았다. 처음에는 생각만큼 안된다. 두어 번 시도를 한 후 그 요령을 깨달았다. 숫돌의 한면에 칼날을 밀착한 후 갈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번 시도해 본 후 강하게 간후 종이를 썰어보니 신기하게도 칼날이 되살아나 있었다. 날카로움이 잘벼른 일본도를 연상하게 했다. 어쨓든 그렇게 해서 이날 생선회를 일식집 수준으로 썰어서 맛있는 식도락을 즐길 수 있었다. 지하철 행상이 판매한 물건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기아바이', 물건 어떤것은 "꽤 쓸모가" 또 어떤 것은 "영 아니올시다"경제가 어려울수록 서민들이 쉽게 손 댈 수 있는 업종중의 하나가 바로 행상일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아바이'라고 부르는 지하철 행상이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자주 보곤하는데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이들 행상들의 물건을 자주 구입 한다.
그 가운데 꽤 쓸모가 있다고 판단한 물건 몇 개를 꼽아 보련다. 그 첫째가 전기면도기였다. 중국산인데 지난 몇 달동안 아주 잘 써먹고 있다. 가격은 만 원이었다. 대형마트에서 보통 4~5만 원 이상 나가는 가격을 생각한다면 가격대비 너무나 만족스러운 물건이었다.
그전에도 5천 원인가 하는 작은 면도기를 구입한 적 있다. 그렇지만 이 면도기는 엉터리였었다. 면도기를 사용하다 보면 면도를 하는 게 아니라 수염을 뽑는 수준이라서 두어 번 사용한 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하지만 이번 전기면도기는 지난 몇 달동안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으니 만 원 한장이 전혀 아깝지 않다.
3000원인가에 구입해 왔던 세면기 뜷는 플라스틱도 꽤나 유용했다. 세면기 물 내려가는 부분이 머리카락 등으로 막히곤 하는데, 이 플라스틱 뻥뚫어(?)는 세면대 물 내려가는 구멍에 넣고 쑤시게 되면 머리카락이 딸려 올라오는 물건이었다. 이 물건도 당시 제대로 물이 내려가지 않던 세면기를 뚫는데 꽤 유용하게 써먹었고 앞으로 쓸 경우를 대비해 화장실 유리장 위쪽에 고이 보관중이다.
이와 반해 2000원 짜리 구두약은 영 아니였다. 당시 행상이 한 번만 사용해도 구두 광내는 가격이 빠진다며 구입을 권해 지갑을 연바 있다. 액체 구두약이 스폰지에 묻어 있어 그 상태 그대로 구두 표면을 문지르면 되는 물건이다. 하지만 스폰지가 밖으로 빠져 나오는 바람에 구두을 닦는 게 용이하지 않았다. 실패작이다.
또 대표적인 구입해 실패한 물건으로는 밤 깎는 가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무리 밤을 깎아 보아도 행상들처럼 매끄럽고 쉽게 깎이지 않아 두어 번 사용한 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기아바이', 생활의 최전선 그들과 함께 할 수는 없을까?지하철 행상을 뜻한다는 '기아바이'는 굶주림이라는 뜻의 '기아(飢餓)'와 판매상 '바이(Buy)'의 합성어라고 한다. 이들 기아바이들에게 물건을 자주 구입해주면서 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과연 내가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렸을때 이들처럼 물건을 메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서서 물건을 구입하라고 외칠 자신이 있는가를 말이다. 자신없다. 그들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이들 기아바이들이 모이는 장소중 한 곳인 지하철 1호선 금정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보면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럴때면 이들이 동료 기아바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귀를 세우고 엳듣곤 했다.
기아바이에 뛰어들기전 이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고 나름 엄격한 영업구역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 잡상인을 단속하는 공익근무요원들에게 단속이라도 될라치면 며칠간 노력이 벌금으로 사라진다는 사실도 엿들을 수 있었다. 이들의 주된 대화내용이 무슨 물건이 요새 히트를 치고 있는지와 함께 단속이 어느 노선에서 이루어지는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다. 지하철 공사측으로서는 엄연히 불법인 이들 행상들을 단속할 수밖에는 없을테고 또 생계를 매달고 있는 이들로서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지만 그 생업을 중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정책적으로 이들을 제도권으로 흡수할 수는 없는가를 상상해 보았다. 이들 행상들을 지하철 공사에 등록을 시켜 합법화 하는 방법이다. 등록후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다른 직업으로 전직을 유도하고, 당장 생계가 막막한 이들은 합법적인 틀 내에서 보호해주는 그런 제도를 말이다. 또한 이들 행상들이 판매할 수 있는 시간 등을 규제하고 승객들이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나만의 상상이었다.
머리좋은 지하철 당국이나 관계 당국이 고민할 문제이기는 하겠지만 단속하는 사람과 단속받는 사람의 그 형편을 서로 헤아려 볼 필요는 있지 않는가 한다. 어쨓든 내 개인적으로는 지하철 당국에서 이들 행상들로부터 물건 구입을 하지 말라고 권유한다고 해도 앞으로도 자주 지갑을 열 것 같다.
어차피 필요한 물건이라면 어디서 사든 사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하철에서 이동중에 이들 행상들로부터 파는 물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필요하다고 느껴 구입하는 것은 내 개인 마음이 아닌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