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2일) 아침 모 일간지에서 테헤란에서 유학중인 학생이 현지의 시위상황과 분위기를 전하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CNN을 통한 방송이 아니라 현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라 좀 더 신뢰감이 갔습니다.
CNN이나 CNN을 그대로 카피한 우리나라 방송을 통해서 보면 마치 이란에 내전이라도 일어난 것 같고 온 국민이 독재자에 맞서 다 들고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학생을 통해 들은 현지 분위기는 좀 달랐습니다.
시위는 주로 잘사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가난한 사람들은 현 대통령인 마무드 아마디 네자드를 지지하기 때문에 시위에 동참하지 않고 있으며 지식인이나 좀 사는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즉 테헤란 남부, 올드 시티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이곳은 대체로 조용하고, 북부는 부촌인데 그 중간지역인 상업지대에서 주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지역은 주로 빌딩지대로서 가난한 사람이나 문맹자는 꿈도 못 꿀 지역입니다. 화이트칼라들이 점령하고 있는 곳이지요. 즉 시위는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주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드네요. 불만을 갖는다면 당연히 가장 가난한 사람이 사회에 불만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가난하다는 말은 현실에서 가장 소외되었다는 뜻인데 이 사람들이 나서서 현 상황을 뒤엎으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정작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 대통령인 아마디 네자드가 통치했던 방식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고, 오히려 혜택을 누리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부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작 가만히 있고, 왜 좀 사는 사람들이 시위를 할까요? 다르게 질문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왜 현 대통령을 지지하며 왜 현실에 불만이 없을까요?
한 달간의 이란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찾아봤습니다. 내가 찾아낸 답이 일방적이고 왜곡됐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작 한 달 이란을 다녀왔으니 그 나라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고 봤으면 얼마나 봤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미 익숙한 사람보다 처음 본 사람이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는 말에서 자신감을 얻고 나름대로 답을 찾아봤습니다.
지난겨울 이란을 한 달간 여행하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이란은 없는 사람들이 참 살기 좋은 나라다' 입니다. 그러니 그때 내가 가졌던 생각과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금의 이란 상황이 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그럼 이제부터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서민의 주식이 싸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야 맛있는 것 골라먹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맛을 떠나서 배를 채우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러니까 배를 채워줄 기본 음식이 저렴하면 가난한 사람이 살기엔 좋은 환경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란에서는 우리나라 쌀에 해당하는 난이라는 주식이 정말 쌌습니다. 이렇게 싸니까 굶는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서민의 주식인 난이라는 빵은 백 토만에 열 장 정도했습니다. 백 토만이면 우리 돈으로 120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120원으로 네 식구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서민들이 점심으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햄버거인데 크기가 우리나라 햄버거의 두세 배는 되는데 가격은 천토만 정도 했습니다.
이 가격만 놓고 보면 이게 싼 것인지 잘 모르지만 슈퍼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이 우리나라처럼 500토만 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 음식들이 현저하게 싸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을 먹기 위해서는 잼이라던가 요거트 등 발라먹을 게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의 가격도 정말 싼 편이었습니다.
반면에 주식이 아닌 것의 가격은 비싼 편이었습니다. 과자라던가 아이스크림 값은 절대로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싸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비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시장에서 옷값을 물어봤는데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더 비쌌으며 자동차는 가난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싼 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생활에 꼭 필요한 생필품은 많이 싸고 조금 더 사치를 부리려고 하면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테헤란 시민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에는 좋다는 뜻이고 어중간한 중산층이 살기에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물가였습니다.
그리고 음식만큼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부담되는 게 이동경비인데, 이 또한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쌌습니다. 몰론 이것은 이란이 산유국이니 당연한 결과겠지요. 기름은 예전에는 공짜로 배급을 해줬다고 하는데 지금은 1리터에 100토만 정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15배 정도 싼 가격이지요. 그리고 버스비는 20토만으로 우리 돈으로 30원 정도 했고, 지하철도 150토만 정도 했습니다.
반면에 택시는 지하철 비용의 10배는 비쌌습니다. 이렇게 물가 면에서 보면 모든 정책이 가난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고, 중산층이나 부자들은 좀 불리한 입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현 대통령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은 지지하고 중산층은 불만을 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난한 사람이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 결정적인 근거는 모금함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회나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모금함이 이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습니다. 우체국에 가도 모금함이 있고, 현금지급기에도 모금함이 달려있고, 식당에서도 보이고 정말 모금함이 없는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모금함이 이란 전역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이란 율법에서는 부자가 자신의 수입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져야 하는 게 종교적인 의무라고 지정했는데, 이 모금함은 부자들의 의무이자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테헤란 역에서 본 어떤 여인의 모습은 아직도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 여인은 모금함에 돈을 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절에서나 교회에서 우리가 기도할 때 헌금이나 보시금을 넣는 모습처럼 마음을 담아 공손한 모습이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자선냄비를 만나거나 동냥을 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푼돈을 집어던지면서 급하게 도망간 적이 있는데 나의 그런 과거를 부끄럽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자선냄비에 집어넣은 것은 차표를 끊고 남은 푼돈이었는데 그녀가 모금함에 넣은 돈은 결코 푼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꽤 많은 돈을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모금함에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돈은 이 돈을 관리하는 종교 단체에서 정말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쓰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란에서는 거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울을 놓고 저울을 달아주면서 돈을 받는 할아버지들이 유일하게 가난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조차도 눈빛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로부터 도움 받는 건 부끄럽거나 초라한 일은 아니라는 게 사회분위기로 정착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진리가 이 나라에서는 말로만 하는 헛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내가 본 이란은 가난한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