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녀는 가고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뭘 했던 사람인가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냄새에 관해서는 그녀와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고 안녕하기 때문에 우연한 냄새이야기 공모를 기회삼아 적고 싶다.

그녀는 가족도 아니고 지인도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가면 항상 먼저 나와서 아이들을 정돈시키고 책상에 담요를 깔아놓았다. 그렇다고 나를 보조하는 선생도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깔끔했다. 그리고 비실비실한 내가 아침햇빛을 뚫고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오는 것을 항상 고마워하고 내 건강을 염려해 주었다.

이 은은한 향기는 뭐지?... 그녀에겐 냄새가 났다

그러던 그녀에게서 어느 날 은은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몰랐지만 손을 씻고 나면 저절로 손을 코에 대고 맡게 되는 그런 비누냄새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 비누냄새를 두어 번쯤 맡았을 즈음에, 그녀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껌을 살짝 살짝 꺼내 씹었다.

'갑자기 웬 껌일까? 왜 나는 주지 않고 혼자만 먹을까?' 잠깐 의아스러웠고 궁금했지만 수업을 마치자 마자 곧바로 줄을 서서 식판에 밥을 먹고 가속기를 줄기차게 밟고 다시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생각의 울타리에 머물 겨를이 없었다.

한낮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하행운전을 하다가, 천하장사보다 더 큰 힘으로 내리깔리는 눈꺼풀을 감당 못할 즈음이면 모든 것들이 태어나는 땅이라는 '잉홀'이라는 순 우리말이 붙은 음성의 어느 마을 초입에 있는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아래서 등을 기대고 10여 분간 눈을 감고 명상인지 살짝 드는 토끼잠도 들었다.

그렇게 잠깐 눈을 감고 뜨면 한낮이 아닌 새 세상의 드밝은 아침같은 기분이라 비누냄새며 껌냄새며 모두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 주일을 보내고 다시 어김없이 달래강을 건너서 그리로 갔다.

이번에는 그녀에게서 또 다른 냄새가 난다. 향수를 쓰지 않아 향수 냄새인지 아니면 가끔 퀴퀴한 차 안에 뿌리는 방향제 냄새인지, 아카시아꽃과 밤꽃과 장판밑의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런 냄새가 났다.

'왜 갑자기 향수를 쓸까?' 하는 궁금증이 저번의 껌냄새에 대한 궁금증처럼 살짝 일어났다가 다시 바쁜 일상의 흐름에 휩쓸려 아스라하게 묻혀졌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진해져가는 그녀의 향수인지 아니면 무슨 중국향인지 뭐인지 모를 복합적인 냄새를 매주 한 번씩 맡았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서 나는 아예 그녀의 냄새를 잊었다.

개학이 되고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냄새는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그녀가 필요해서 생각이 났다. 왜냐하면 3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다양한 아이들은 이 구멍을 두드리면 다시 저 구멍에서 솟는 들쥐방망이 게임처럼 한 아이를 지도하면 다른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까불었고, 무거운 벼루들과 담요들을 혼자 정리하기가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그녀가 왜 안 나오는지 그녀의 동료에게 물어보았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못나온다고 하며 얼버무렸다. 그래서 '아! 배탈이 나신건가 보다…' 그냥 그렇게 혼자 생각했다.

병실에서 만난 그녀,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 주도 그 다음주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얼버무리지 않고 대답을 해줄 나이 지긋하고 오랫동안 잘 아는 분에게 물었다. "갑자기 급성****암으로 진단되어 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어요!"  뭔가 누가 내 어깨를 마구 잡아 흔드는 것 같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연애 한 번도 안하고 그냥 그렇게 정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인데….

그리고 불현듯 옛날 암투병을 오래하시고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간호할 때 들은 이야기가 났다.

"암 중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암이 있어. 장본인은 모르고 옆에 사람만 아는 냄새인데 안 맡아본 사람은 절대 그 냄새가 어떤 건지 몰라!"

작은 별빛은 큰 별빛이 나타나면 보이지 않는다. 큰 별빛은 달빛이 강하면 또한 비치지 않는 이야기 생각이 났다.  '아! 그랬구나! 그녀는 혹시 자기에게서 혹시 어떤 냄새가 날까봐 그 냄새를 감추려고 그렇게 향기가 강한 비누, 껌, 향수 등을 썼구나!' 그리고 어떤 냄새인지 꼭 짚어낼 수 없던 냄새는 그 모든 것들이 합해진 냄새였구나 싶었다.

자신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자신에 대한 자존심과 타인을 위한 배려로 그녀는 그렇게 평생을 씹지 않던 껌도 씹고 순한 우유비누에서 강한 향기의 비누도 쓰고 방향제도 옷에 뿌리곤 했던 것이었다.

서울에 올라간 김에 시원한 합죽선에 산 속에서 향기가 아주 오래 가는 맑은 홍란을 그려서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친정엄마가 수년 동안 입원하고 장례도 모신 병원이라 그 병원은 무척 친숙했다. 그녀는 긴 머리를 자르고 여고생처럼 단발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맑은 웃음으로 나를 맞은 그녀에게서 비누라든가 향수라든가 하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냥 해맑게 웃으면서 "아이들 봐주는 척 하면서 사실 선생님에게 글씨를 배우고 싶었는데 좀 아쉽네요…" 하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고운 사람의 진솔한 향기만 그렇게 진하게 남았다.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우리는 그녀에게 불시에 찾아온 병 이야기도, 수술 이야기도, 냄새 이야기는 더더욱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를 울리고 웃기던 꼬맹이들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배꼽을 잡고 웃었으며, 헤어질 때 짤막한 평화를 위한 기도만 나누었다.

그녀에게 나던 복합적이던 여러 냄새들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 흔적이 없어 사라졌지만, 그녀가 고단한 한 청각장애여성에게 나눠주었던 친절함과 진솔함의 내음새는 언제나 안녕하다.  

덧붙이는 글 | 냄새에 얽힌 사연 공모



# 인간의 냄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과의 소통 그리고 숨 고르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